매거진 보령 생활

스마트폰 찾아주고 기분 잡친 이야기

세상이 내 마음 같지 않아요

by 편성준

어젯밤 글쓰기 줌 수업이 끝나고 배가 고파 아내와 함께 택시를 불러 타고 동대동누나네에 가서 박대구이에 소주를 두 병 마셨다. 첫 수업이고 오랜만에 줌으로 PPT를 공유하며 하는 수업이니만큼 긴장했고 작은 실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글쓰기 강연을 들으러 오신 분들이 내 얘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인생의 컨셉 정하기'라는 강의 주제에 맞게 자신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해 주셔서 보람이 있었다. 아내와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시고 한 25분 정도 걸리는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갈 때는 허기가 져서 택시를 탔지만 올 때는 배가 부르니 천천히 걷고 싶어졌던 것이다. 한내대교를 건너 대천초등학교로 꺾어지기 전 대로에서 아내가 지갑처럼 생긴 스마트폰을 주웠다. 열어보니 스마트폰 옆 지갑엔 운전면허증과 현금, 영수증, 명함 등이 마구잡이로 꽂혀 있었다. 면허증을 보니 나랑 동갑인 아저씨였다. 파출소나 우체통이 있나 찾았으나 우리가 걷는 길엔 전혀 그런 게 없었다. 아내와 나는 내일 아침 시청 갈 일이 있으니 그 길에 경찰서에 가져다주면 되겠다 하면서 스마트폰을 들고 집으로 갔다.


새벽에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아이폰만 써봐서 안드로이드는 통화 버튼을 어떻게 눌러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가까스로 마루에서 전화를 받았다. '발전소동상'이라는 이름이 떴다. 중부발전소에 다니는 후배가 스마트폰 잃어버린 형님에게 전화를 걸어주는 것 같았다. 가까스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성준) 여보세요?

남1) 사장님, 그 전화기가 어딨죠?

성준) **카페 아세요?

남1) 그 대천동에 있는......

성준) 네, 맞아요.

남1) 그럼 제가 그 근처 가서 제가 다시 전화드리면 될까요?

성준) 네. 그러세요.


다짜고짜 전화기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건 아침 일찍이라 경황이 없어서 그런 거겠지, 했다. 내가 통화를 마치고 다시 침대로 가니 아내는 "당신은 왜 통화를 하면서 그렇게 소리를 질러? 할아버지처럼."이라며 핀잔을 줬다. 아마 억지로 통화 버튼을 누르느라 헤매다가 통화가 되니까 반가운 마음에 흥분해서 내 목소리가 좀 커진 모양이었다. "그럼 속삭여? 여보세요..... 이렇게?" 아내가 웃었다. "그럼. 그래야지"


새벽 6시 조금 넘은 시간이므로 다시 침대에 몸을 눕혔다. 십여 분 뒤 다시 스마트폰이 울렸다. 이번에도 통화 버튼이 잘 안 눌러졌다. 나는 어쩌다가 텍스트로 받기' 버튼으로 변한 버튼을 제대로 누르는 데 실패했고 폰은 계속 울려대기만 했다. 아내가 혀를 차며 자신이 받아보겠다고 했지만 그럴 경황이 없었고 차라리 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 게 낫겠다 싶어 얼른 반바지를 꿰어 업고 밖으로 나갔다(혹시 몰라 명함도 한 장 챙겼다). **카페 밑에 어떤 남자가 보이길래 "여기요!"라고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남자 옆에는 작은 트럭이 한 대 시동을 건 채 서 있었다.


남1) 사장님.

성준) 네. 오셨어요?

나에게 말을 건 사람이 발전소 동생이고 트럭에 탄 사람이 스마트폰 주인인 것 같았다. 나는 폰을 트럭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건넸다.

남2) 아이고. 이거 트럭에서 내려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성준) 네.(내려야 한다면서 왜 안 내리세요?)

남2) 아이고. 고맙습니다.

성준) 아니에요. (고마우면 시동 끄고 내려서 인사를 하세요)

남1) 형님. 출근하세요.( 이 분도 예의가 없네)


나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트럭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건넸다. 눈이 나쁜지 눈살을 찌푸리며 명함을 보았다. 한지 위에 볼펜으로 '작가 편성준'이라 쓰고 전화번호만 있으니 좀 생소해 보이는 것 같았다.

남2) 편......씨면 저기 **동에......(뭔가 근방에 있는 편 씨 집성촌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성준) 아니에요. 저는......(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난감했다) 저는 작가예요. 글 쓰는.

남1) 작가...... 아, 네. (작가가 뭔지 모르는 분 같았다. 아니면 작가를 만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우리가 만난 장소는 카페 올라가는 길이라 얼른 비켜야 했고 트럭 엔진 소리가 요란해서 더 이상 대화도 불가능했다. 나는 남자가 왜 내려서 얘기를 안 할까 궁금했지만 그걸 따지기도 뭐해서 그냥 엉거주춤 서 있었다. 트럭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말을 했다.

남1) 형님, 출근해유. 지도 갈게유.

남2) 이, 그려....... (나를 쳐다보더니) 들어가셔유.

성준) 네. 가세요.

폰 주인이 나에게도 들어가라고 인사를 하는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돈이나 대가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왠지 기분이 더러웠다. 저렇게 예의를 모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의, 그것도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50대 후반 남성에게 그런 걸 바라는 건 사치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으로 들어가 아내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을 하다 보니 더 부아가 났다. 아내는 "솔직히 우리가 그 전화기 안 찾아줘도 되는 거야. 택시운전사들은 스마트폰 주우면 대놓고 돈 달라고 하느데."라며 혀를 칬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좋은 일을 한다는 마음이 들어 상쾌했는데 새벽에는 무슨 봉변을 당한 기분마저 들었다. 폰 주인에게 명함을 줬지만 나중에 연락이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나라면 트럭에서 내려 정중히 인사를 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세상이 참 내 마음 같지 않다. 나라도 기본적인 예의 지키며 살자고 속으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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