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그 좁디좁은 우물
페친들 사이엔 영화 《세계의 주인》이 화제다. 좋은 영화라는 평과 함께 리뷰가 올라오고 나도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한강 작가의 소설과 비교하는 내용으로 영화의 리뷰를 쓴 적이 있다. 그런데 며칠 전 관객 수를 찾아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금까지 누적 관객이 90,005명(2025년 11월 11일, 영진위 KOBIS 기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주변 언급이 적었던 브래드 핏 주연의 《F1 더 무비》의 누적 관객수는 자그마치 5,213,111명(영진위 KOBIS 기준)이었다.
개인적으로 '올해의 책'이라고 할 만큼 잘 썼던 김효선 작가의 『오춘실의 사계절』은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권하고 다녔고 실제로 읽어 본 사람마다 리뷰가 전부 다 좋았다. 그런데 그제 김효선 작가가 '이제 3쇄를 찍었다'라는 글을 포스팅한 걸 보고 좀 서글펐다(그것도 책발전소에서 한 쇄를 통매입해 줘서 그렇게 되었다고 작가는 고마워했다). 지금 쯤이면 적어도 10쇄는 넘겼을 것이라 짐작했던 아내와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네트워크가 얼마나 좁은 세상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던 것이다.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엔 '끼리끼리는 과학이야'라는 창희의 대사가 나온다. 비슷한 애들끼리 모여서 논다는, 약간은 멸시투로 쓰이는 이 말은 페이스북이나 밴드 등을 거론할 때 딱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늘 잊거나 착각하게 되는 게 SNS의 한계다. 대선 때마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와 그렇지 않은 후보의 득표율이 아슬아슬하게 차이가 났던 것도 페이스북 바깥의 현실이 내 인식과 얼마나 다른지 알려주었던 증거인데 그런 건 이상하게 금세 잊어버린다.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주인이나 점원에게 "김** 작가 책 있나요? 어, 이** 작가를 모르신다고요?'라고 외치면 ""잘 몰라요. 저 페이스북 안 해요"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이럴 땐 정말 딴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 같은 기분이 든다. 페북에서는 그렇게 유명한 작가들인데 실제 서점에서는 이렇게 '듣보잡'이라니.
내 친구들은 거의 다 아이폰 사용자이지만 국민의 80퍼센트는 안드로이드폰을 쓰는 것처럼 정치·문화 분야는 물론 다른 인생관이나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은 엄연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 당장 보령을 보라(네네, 장동혁이 보령 출신이에요). 그래서 역으로 반성한다. 정치가들은 일반인보다 에너지가 충만하다. 보다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하고 불합리나 다른 취향을 견딜 수 있는 포용력 또한 가져야 하니 말이다. 음,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SNS는 좁디좁은 우물이다. 가까운 지인들과의 소통은 물론 개인적인 책 광고나 글쓰기 강연 공고 등도 모두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의지하는 주제에 SNS를 하지 말거나 줄이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온라인 커뮤니티 바깥에 나와 다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이건 페친인 당신께 하는 말이지만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세계는 넓고 페이스북은 좁다. 잊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