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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라면을 안 먹는 이유

신제품 '삼양1963' 출시에 붙여

by 편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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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군대에서 병장 제대를 앞두고 있던 1989년 11월, 일주일에 두 개씩 나오던 컵라면이 하루 두 개씩 지급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라면 업계에 '공업용 우지 파동'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렇다고 군인들에게 컵라면을 무한 공급하는 게 말이 되느냐, 우리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냐...... 이렇게 항의하며 라면을 거부했어야 맞는 일이지만 자존심은 밥 말아 드신 지 오래인 수도군단 공병대 장병들은 낄낄대며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었다. 근무 시간엔 숨어서 몰래 먹고 밤에는 관물대에 짱박아 놓은 소주를 따라 안주 삼아 먹었다. 군발이는 공업용 먹어도 돼, 하면서 먹었다.


‘몇몇 기업이 비식용 우지를 썼다’는 익명의 투서가 검찰에 날아들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농심 또는 농심의 친구들(예를 들면 김기춘 안기부장)이 벌인 공작 같았다. 당시 검찰은 삼양식품, 삼립유지, 서울하인즈, 오뚜기식품, 부산유지 등 5개 식품 회사가 미국에서 비식용으로 구분되어 있는 우지를 썼다며 이들 회사 대표와 관계자 10명을 구속했지만 농심은 쏙 빼놓았기 때문이다. 사회적 불매운동이 일면서 30%대였던 삼양라면의 시장점유율은 10%대로 추락했고 덕분에 농심은 라면 업계 부동의 1위로 등극할 수 있었다.

1989년 11월 말 정부가 우지 사용 제품은 인체에 무해하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우지파동은 잠잠해졌지만, 혐의를 벗기까지는 8년이 넘게 걸렸다. 삼양식품은 1997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때는 이미 대세가 농심으로 넘어간 후였다.


서울법대를 나와 유신헌법의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브레인(?) 김기춘은 농심과 매우 친한 사람이었다. 공업용 우지 파동 때 삼양에 대한 수사를 선두지휘했던 검찰총장도 김기춘이었다. 그는 독재 정권 때 수많은 간첩단을 조작해 공을 세운 사람이기도 하다. 국정원의 간첩 조작 의혹을 파헤친 최승호 PD의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을 보면 공항에서 최 PD와 마주쳐 반갑게 인사를 하다가 간첩단 조작에 대한 질문을 받고 싸늘해지던 얼굴이 기억난다. 그는 평생을 비양심적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세월호 침몰 당일 박근혜의 비서실장이었던 그는 대통령의 동선을 묻는 청문회 질문에 "대통령이 아침에 일어나서 주무실 때까지가 근무시간이고 어디 계시든 있는 곳이 집무실이다"라고 한 말은 유명하다. 안기부 시절 그는 고문 장면이 다 보이는 CC-TV를 앞에 두고 아들에게 생일 축하 카드를 썼다는 일화도 있다. 끔찍하다.


삼양식품은 2025년 11월 3일 서울 중구 보코서울명동 호텔에서 신제품 '삼양1963' 출시 발표회를 열었다. 이날은 우지 파동이 일어난 1989년 11월 3일로부터 정확히 36년이 되는 날이다. 나는 요즘 오뚜기 진라면을 주로 먹지만 당분간은 삼양라면 1963을 먹을 생각이다. 신라면이 맛있긴 하지만 오랜 전부터 농심라면은 안 먹고 산다. 농심의 비상근 (출근 안 하는) 고문변호사였던 김기춘이 떠올라서다.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난 농심라면이 징그럽다. 어사 출도 전 변사또의 생일잔치에서 이몽룡이 쓴 시를 패러디해 말해 보자면 '농심라면의 국물은 삼양의 핏물이요, 농심라면의 수프는 삼양의 뼛가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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