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과 오늘의 같은 점과 다른 점
아침에 제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뜬 5년 전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첫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내고 출간기념회를 하느라 보타이를 매고 책에 사인을 하는 장면이군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책들이 놓인 테이블 위에 천으로 만든 필통도 있습니다. 지금 바로 제 앞에 있는 이 필통 말입니다. 이 필통은 그전 해 5월쯤 대학로 마르쉐에 갔다가 은곡도마 이소영 대표를 처음 만난 날 구입했습니다. 글의 초고를 작성하거나 떠오른 생각을 메모할 때, 또는 독서 노트를 쓸 때 연필, 볼펜 등 여러 가지 필기구를 사용하는 습성이 있는 저에게 필통은 아주 중요한 소도구입니다. 이 필통에 들어있는 펜들을 이용해 그동안 다섯 권의 책을 썼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강의안을 만들어 글쓰기 강의도 했고요. 그동안 제가 쓴 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
『읽는 기쁨』
『내가 살린 문장, 나를 살린 문장』
첫 책이 독자들께 과분한 사랑을 받는 바람에 계속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었습니다. 일 년에 한 권은 써야 한다, 는 아내이자 기획자인 윤혜자 씨의 의견에 동조하며 계속 책을 썼습니다. 일이 바쁘거나 여의치 않을 땐 한 해를 건너뛰고 그다음 해에 두 권을 내기도 했습니다. 『읽는 기쁨』과 『내가 살린 문장, 나를 살린 문장』 이 그런 경우죠. 앞의 책은 작년 5월에 내서 금방 5쇄를 찍었고 뒤의 책은 12월에 냈는데 계엄령이 발동되는 바람에 책 홍보와 판매에 철퇴를 맞았습니다. 그래도 고정 독자들 덕분에 2쇄를 넘겨 다행입니다. 저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죠.
제가 자부하는 것 중 하나는 다섯 권의 책 중 부끄러운 책은 한 권도 없다는 것입니다. 한 권 한 권 다 열심히 썼고 적어도 책을 읽어본 분들에게 실망감을 드리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올해 아직 새 책의 원고를 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5년 전과 오늘의 같은 점은 똑같은 필통(비록 색이 바랬지만)을 앞에 놓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점은 새로 쓴 책이 없다는 것이군요. 변명을 하자면 보령으로 이사를 했고, 집을 사서 수리했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가까웠던 사람들과 멀어졌고, 그 와중에 '인문학 여행' 시리즈 등 새로운 기획을 하느라(근심하고 고민하고 희망에 젖느라) 쓰지 못했습니다. 물론 써야 할 책의 주제는 두세 가지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획만 가지고는 소용없죠. 써야만 글이 되고 책이 된다는 단순한 진리 앞에 머리를 숙입니다.
이제 서서히 시동을 걸어야겠습니다. 내년엔 당신께 더 좋은 책으로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이건 오늘 아침에 첫 책 출간기념회 사진을 보고 스스로에게 걸어보는 주문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의 정의는 로버타 진 브라이언트의 '작가란 오늘 아침에 글을 쓴 사람이다'라는 말인데요, 그의 말대로 아침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오늘 아침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