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관계, 그리고 나
대학생 때 3년간 사귀었던 사람이 있었다. 3살 연상, 준수한 외모, 학력도 나보다 적당히 더 좋았다. 나는 그와 풋풋한 대학생 시절을 함께하다 결혼까지 골인하는 완벽한 관계를 꿈꿨다.
그를 편하게 해 줘야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갈 거라 확신했었다. 그가 원하는 데이트만 했고, 이 관계를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한마디로 편리하고 헌신적인 여자친구였다. 그때의 나는 내가 노력한다면 나와 남자친구, 그리고 우리 관계를 원하는 대로 다 통제할 수 있을거라 믿었다.
시간이 흘러 그는 취준생이 되었고, 내 노력들에 무색하게 상황은 불리하게 변했다. 그의 동기들은 O성전자, O이닉스 등 대기업에 척척 들어갔지만, 그는 생각보다 취업에 고전했다.
'괜찮아, 다음엔 될 거야'
늘 그래왔듯 나는 그를 믿고 기다리는 착한 여자친구가 되려 노력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도 취업전선에 뛰어들면서 결국 착한 여자친구 에너지가 바닥나고 말았다.
'오빠 나도 힘들어.. 나도 오늘 최종탈락했어.. 나도 힘들다고'
내가 그에게 잘해줄 수 있던 에너지의 원천은 우리 관계를 노력으로 통제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었다. 하지만 사람 일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우리를 둘러싼 상황은 알 수 없는 패턴으로 시시각각 변하며, 그 앞에 감정은 추풍낙엽이었다. 모든 확신이 모호해지는 순간, 나는 그에게 더 이상 예전 같은 여자친구가 아니었다.
변한 내 모습에 그는 도망치듯 나를 떠났고, 나는 아주 오랫동안 아파했다. 그 사람을 잃었다는 고통보단 내 노력들이 허무해서. 나는 그 사람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완벽한 관계라는 허상과 그 허상을 쫓던 나의 공허한 노력 만이 아주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직장인이 되고 3년간 만난 사람이 있다. 대학생 때 이후 첫 장기 연애였고,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무척 애썼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지만, 굉장히 순수한 완벽주의자였다. 그는 달콤한 말보단 냉철하고 부드러운 조언으로 나에게 마음을 표현했고, 그의 총명한 말들은 나를 살게 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관계를 모호하게 두었으며, 그 어떤 것도 쉬이 약속하길 원치 않았다. 더 이상 관계에 목매는 연애를 하고 싶지 않던 나는 우리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었으므로 그 모호함을 견뎌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는 그 모호함에 계속 상처를 받았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나는 이 모호함에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몰랐고, 그도 이 모호함을 확신으로 바꾸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서로 사랑했지만 3년 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더 이상 버틸 수 없던 나는 그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우선은 내가 아프니까. 아픈 나의 비명을 더 이상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나는 사랑에 있어서 모든 가능성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관계를 사랑했든 사람을 사랑했든. 그리고 그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 최대치였다. 이 두 사랑의 공통점은 내 안의 목소리를 못들은 척 무시하고 관계와 사람에 집착한 것이다. 이제 나는 사람도 관계도 아닌 나에 대한 사랑을 돌아보기로 했다.
타인이 아닌 자신을 위한 시간 만이 내 고민에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얼마든지 아파하고 얼마든지 노력하자. 다만 너 자신의 마음을 모른척하지만 말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노래 제목처럼, 어쩌면 진짜 사랑은 노력할 필요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지속되는 게 진짜 사랑인 걸까?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노력들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 인정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정답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