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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늘 Aug 28. 2023

일상과 여행이 만드는 나

시간과 기억을 통해

나는 일상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사전에 ‘매일 반복되는 보통의 일’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이 단어를 통해 나는 보통의 일이 보통이 아님을 상기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쌓여 생활이 되고 생활이 모여 삶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면, 하루하루가 소중해진다. 그래서 거의 매일 챙기는 세 가지가 있다. 맛있는 것 하나 (주로 끼니, 과일, 디저트, 커피다), 산책, 그리고 글쓰기와 독서 시간. 모든 것이 아니더라도, 많은 것이 일상으로부터 시작한다는 말을 믿는다. 그래서 보통의 날을 특별하게 대하고 싶다.


동시에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인 여행도 좋아한다. 느긋함을 잃어버리기 쉬운 일상에서 몸이 잘 못 느끼는 자연을 고스란히 느끼고, 별미를 살뜰하게 챙겨 먹는 여행 말이다. 나에게 일상이 생활 기술을 연마하는 훈련과 이성의 시간이라면, 여행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감각의 시간이다.


2021년 여름 고등학교 친구들과 놀러 간 강릉에서 튜브를 걸친 내 몸을 감싸며 출렁이던 여름 바다와 또 먹고 싶은 꼬막무침 비빔밥. 2022년 가을 주황색, 황토색, 붉은색의 단풍잎이 발 밑에서 바스락거리던 불국사 정원에서 마신 진하고 달달했던 대추차와 간식으로 두 번이나 챙겨 먹은 경주 빵. 2023년 초 홍천의 스키장에서 새하얀 산을 내려오는 보드 위에서 느낀 짜릿한 속도감과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언 표면 아래에서 들리던 신기방기했던 물소리. 지난 주말 속초의 한 라멘집에서 식전에 맛나게 들이켠 '한입 맥주'와 동아서점에서 넋 놓고 구경하다 만난 별의별 흥미로운 책들.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가 말한 대로 기억은 자아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기억을 토대로 자기 자신, 타인, 그리고 외부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기 때문에 기억은 현재의 나를 이루는 데 결정적이고, 그런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계획하고 상상한다. 로벨리의 표현대로 나 자신을 “한 편의 장편소설”로 생각하면 나의 이야기가 곧 나다. 머리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몸이 새기는 것들이 분명 있겠지만, 중요한 것들을 잘 기억해야 나의 이야기를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글과 사진으로 일상과 여행을 부지런히 기록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다.


요즘 무엇인가를 오래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다. 가벼운 여행이나 시도를 즐기면서도 어떤 것을 꾸준히 계속하는 행위에 매력을 느낀다. 그 행위에 대한 낭만화를 경계하면서도 오랜 시간을 들여야만 보이고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 가족, 친구, 애인 사이가 특별한 이유도 같이 밥을 먹고, 속내를 털고, 여행을 가고, 커피와 막걸리를 마시면서 소소하고 시시한 시간이 누적되어서가 아닐까?


Anything worthwhile takes time. Maybe that's what time is for: to give meaning to the things we do; to create a context in which we can linger in something until, finally we have given it something invaluable, something that we can never get back: time. And once we've invested the most precious commodity that we will ever have, it suddenly has meaning and importance. So maybe time is just how we measure meaning. Maybe time is how we best measure love. --Jason Mott, Hell of a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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