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독일 스타트업에 투자를 했다.
베를린과 바르셀로나 기반의 회사인데, 회사의 밸류가 우리가 주로 투자하는 밸류보다 훨씬 높았지만 회사의 기술 개발, 영업 파이프라인의 진척도를 높게 평가했고 우리 회사의 향후 전략과도 맞닿은 부분이 있어 투자를 하게 되었다.
기반 자료 검토부터 계약, 납입까지 직접 진행하면서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과는 많은 점이 달라서 기록을 남길 겸, 해외 투자를 하려는 다른 투자자 분들에게 정보도 전달할 겸 글을 적어본다.
1. 자료 검토 (Due Diligence)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엄청나게 복잡하게 전달해 준다. 이 기업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유럽과 북미 투자를 많이 해 본 심사역님께 들어보면 대부분 그렇다고 한다. 이사회 회의록, 월별 SWOT 리포트, 연도별 예산안 기록, 세금 영수증 등 별의별 자료를 구글드라이브에 담아놓고 링크를 열어준다. Cap Table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게 아닌 역사상 진행된 라운드의 모든 정보를 하나의 엑셀 sheet에 몰아넣어놔서 이건 뭐 정보 전달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우리는 다 모아놨으니 알아서 이해해'라는 느낌이다. 또 자료들이 영어 혹은 독일어(모국어)이기 때문에 한국어보다 이해하는데에 훨씬 시간이 많이 걸린다. 따라서 해외 기업에 투자할 때는 자료 검토에 드는 시간을 한국 기업 검토보다 3배는 더 잡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2. Power of Attorney / Apostille
이번 투자를 진행하면서 가장 생소한 부분이었는데, Power of Attorney(이하 PoA)는 투자 계약을 위한 위임장, Apostille(이하 아포스티유)는 적법한 당사자가 위임을 했다는 공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기본적으로 해외에서는 전자계약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서면 계약을 위해 그 나라에 직접 가지 않는 한, 해당 국가의 공증인에게 회사의 투자계약 권한을 위임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그 절차가 바로 PoA와 아포스티유이다. 자세한 진행 과정은 아래와 같다.
1) PoA 서류 작성 : 펀드의 GP인 A가 해당 국가의 공증인인 B에게 투자 계약 권한을 위임한다는 내용의 서류를 작성한다. 대략 A4용지 10장 이내의 서류다.
2) PoA 서류에 대한 한국 공증 : 이 서류가 적법한 자격을 가진 A 본인에 의해 작성되었다고 하는 한국 공증이다. 법무법인이나 공증사무소에 권한을 가진 사람이 직접 가야 한다.
3) 한국 공증을 받은 PoA 서류에 대한 아포스티유 획득 : 아포스티유는 해당 공증이 국제적으로 인정된다는 대한민국 정부의 인증이다. 한국 공증을 받은 PoA 서류를 아포스티유 발급을 대행해 주는 업체에게 제출하면 업체는 외교부에서 아포스티유를 받아서 2~3 영업일 내에 실물 서류로 보내준다.
3. 투자 계약
투자 계약도 독특했는데, 이 기업만 그랬는지 일반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하는지는 모른다. 일단 설명해 보자면, 한국에서는 보통 투자의 조건(상환, 배당, 잔여재산배분 등)이 담겨 있는 계약서에 계약 당사자인 기업과 투자사(혹은 펀드)가 각각 날인하여 투자 계약을 마무리한다. 그런데 독일 투자 건의 경우에는 투자의 조건이 담겨 있는 본 계약서가 있고, 투자자가 추가될 때마다 그 문서에 refer 되는 별도의 계약서를 작성하여 날인한다. 본 계약서가 A, 별도 계약서가 B, 투자자가 C라고 하면, 별도의 계약서 B에 'A라는 본 계약서의 조건으로 C라는 투자자가 투자하는 것을 확인합니다.'라는 식이다. 해외 투자 시, 이런 식으로 계약서가 작성된다면 A 계약서의 조건을 꼼꼼히 확인하고 우리가 언급되어 있는 별도 계약서인 B에 A 계약서의 모든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4. 한국은행 증권취득신고
국내 기업 혹은 펀드가 해외 기업의 증권을 취득할 때는 한국은행에 증권취득신고를 해야 한다. 신고서뿐만 아니라 거의 10종 정도 되는 부가 서류를 들고 한국은행에 직접 방문해야 한다(필요한 서류는 링크 참조). 서류를 바리바리 들고 한국은행에 방문하면 담당 심사관이 아주 꼼꼼하게 확인한다. 일반 시중 은행처럼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서류를 꼼꼼하게 보니 시간은 오래 걸린다. 추가로 필요한 서류는 메일로 바로바로 보내달라고 하니 노트북을 들고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서류가 문제없이 접수되면 5 영업일 내에 날인된 증권취득신고서가 발급된다. 은행에 다시 방문해서 원본을 수령해야 한다.
5. 납입
한국은행에서 증권취득신고서까지 수령했다면 거의 모든 절차가 끝났다. 피투자 기업에게 SWIFT code와 은행 정보를 받고 펀드 자금을 취급하는 수탁은행에 운용지시를 하면 된다. 은행 담당자마다 까다롭게 검증하는 경우도 있다 하니, 증권취득신고서를 받기 전에 미리미리 신청 서류들을 보내 검토받는 것이 좋다.
한국 기업에 투자하기도 어려운데 해외 기업에 투자하기는 당연히 어렵다. 그렇지만 좋은 스타트업은 한국에만 있지 않다. 시야를 넓혀 세계 곳곳에서 좋은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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