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23년 1월, 심사역 커리어를 시작했다."
VC 업계는 공채는 거의 없다시피 하고, 정해진 커리어 패스도 없으며, 아주 소수로 운영되기 때문에 진입하기가 정말 어렵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를 뚫어내기 위해 노력한 시간들이 가히 잔혹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지난했기에, '나의 VC 진입 잔혹사'라는 제목으로 첫 글을 써본다. 일기 수준의 글이지만 VC 진입을 목표로 하는 분들에게 한 톨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먼저 VC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하여 간략하게 설명하면, VC는 Venture Capital의 약자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스타트업에 투자하여 자본 이득을 얻는 것을 추구하는 집단 혹은 활동을 의미한다. 또 다른 관점으로는 Venture Capitalist라는 뜻으로 VC 업무를 하는(한국에서는 주로 투자심사역이라고 불린다) 사람을 지칭하기도 한다.
진입하기 까다롭고 사람도 잘 안 뽑는 VC에 나는 왜 들어가고 싶었을까? 사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스타트업을 창업해 운영하던 창업자였다. 스타트업의 특성상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돈을 급격하게 까먹는 때를 만나게 되는데(업계 용어로는 Death Valley라고도 부른다) 대표에게는 정말 암흑 같은 순간이다. 나도 이 강력한 적을 맞아 여러 은행들에 돈을 빌리러 다녔고,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다. 이때 구원자처럼 등장한 사람들이 VC의 심사역들이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수의 심사역들을 만나고 느낀 점은 공통적으로 '똑똑하다'라는 점이었다. 사업을 빠르게 파악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하면서 이 놈이 내 돈을 떼먹을 놈인지 불려줄 놈인지를 가늠하는 게 그들의 일인 만큼 자본의 관점에서 사업을 바라보는 눈은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투자금과 업계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스타트업을 구체적으로 도와준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러던 중 내 사업은 법적인 문제로 폐업을 해야 했고, 다음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하던 차에 퓨처플레이와 한국초기투자기관협회에서 진행하는 VC Sprint라는 교육을 알게 되었다. 약 8주간의 짧지 않은 교육에, 70만 원의 비용에, 1기라서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까지 꽤 고민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사실 그때 당시의 나는 다른 옵션이 거의 없었다. 심사역 일은 하고 싶은데 관련 네트워크는 없고. 그냥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지원했던 것 같다.
VC Sprint의 교육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임원급의 VC가 매주 특정 주제에 대한 강의를 VOD로 올린다.
2. 교육생 각자 강의를 보고 강의 마지막에 있는 과제를 진행한다.
3. 과제를 사이트에 올리고, 멘토(수석심사역 급)들이 과제를 평가한다.
4. 우수 과제는 모두에게 공유되고, Fail 과제는 피드백을 받아 수정 후 다시 제출한다.
여기서 좋았던 점은 과제를 하면서 해당 주제에 대해 깊게 공부하고 이를 페이퍼로 남길 수 있다는 점, 우수 과제는 모두에게 공유되니 우수 과제가 되고 싶어서 열심히 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이 두 가지가 서로 선순환이 되어서 채용 과정에서나 현업에서 일할 때 도움이 많이 됐다. 다만 VC 업계가 네트워크(라고 쓰고 인맥이라고 읽는)가 중요한데 동기 교육생들과의 만남 혹은 협업 기회가 거의 없어서 이 부분은 아쉬웠다. 2기에는 네트워킹을 더욱 강화한다고 하니 기대.
*VC Sprint 한 줄 평 : '명예욕을 자극하여 열심히 공부하게 하는 잘 짜여진 Flywheel'
사실 교육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채용 연계'였다. 아무래도 1기다 보니 채용 연계 자체가 강하진 않았지만 나는 꽤 괜찮은 하우스 한 곳과 면접을 진행했다. 분위기가 좋았고, 처우 협의를 위한 관련 팀 미팅까지 잡혔었는데 갑자기 3주의 시간을 끌더니 내년 결성 예정이었던 펀드가 취소되면서 채용도 취소됐다고 했다. 기대감에 부풀었던 나에게 좌절감을 주었던 사건이었다.
이때 한 번만 더 도전해 보자 마음을 다잡으며 알게 된 교육이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서 진행하는 '벤처캐피탈 신규인력 양성과정'이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서 공식적으로 하는 교육이고 역사가 깊다. 10년은 넘은 듯? 이 교육은 채용연계가 80% 이상 되는 점이 장점이고 그 때문에 정말 입이 떡 벌어지는 스펙을 가진 교육생이 많았던 것 같다. 교육 과정을 간략히 설명하면,
1. 매일(오후 1시 ~ 6시) 라이브 강의를 듣는다. (Zoom, 구루미 활용)
2. 2주마다 한 번씩 테스트를 본다.
3. 마지막 워크샵(2박 3일)을 간다.
생각보다 간단한데 출석 체크를 빡빡하게 하고 테스트도 어렵다. 또 워크샵에서는 밤 6시에 과제를 내고 다음 날 아침 9시에 발표를 하게 하는데, 모든 팀들이 새벽까지 과제를 하느라 눈이 시뻘게졌던 것 같다. 근데 사실 내가 직접 페이퍼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라이브 강의를 하루에 5시간씩 집중하는 것도 어려워서 배우는 건 VC Sprint 보다는 적었는데, 이 교육 과정의 넘사벽 장점은 바로 '네트워킹'이다. 오래되고 유명한 교육이라 평소에 어디에서 보기 힘든 스펙을 가진(해외 IB 출신, 변리사, Exit 창업자, 대기업 등등)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동기애를 가질 수 있다. VC 업계에서 중요하다고 하는 네트워크를 한 번에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정말 큰 장점.
*벤처캐피탈 신규인력 양성 과정 한 줄 평 : '스펙 끝판왕들과 동기되기'
이 과정은 채용 연계가 잘 되기로 유명한데 올해는 소식이 별로 안 들리는 것 같다. 아직 연계가 마무리되지는 않았으나 작년 대비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인 것 같고 업황이 좋지 않다 보니 크게 늘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나는 일찌감치 협회 측에 기대하지 않고 내 살 길을 찾아 나섰다. 그 고민에서 쓰게 된 것이 아래의 '스타트업 초기 투자 리포트 2022'.
원래는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을 딸까 하다가 큰 장점이 안될 것 같아서 그냥 리포트를 만들었다. 내가 관심 있는 초기 투자 쪽을 주로 다뤘고, 기라성 같은 스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돋보이려면 이 정도는 해야 될 것 같아서 열심히 만들었고, 이를 좋게 봐주신 하우스에서 날 뽑아주셨다.
그냥 생각해 보자면 스타트업은 세상에 없는 새로운 차원을 찾는 사람들이니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들도 새로운 차원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커뮤니티에 어떻게 하면 VC에 진입하는지 묻고, 관련 자격증을 따고, 금융권 경력을 갖는 등 일반적인 길을 찾기보다는 VC 채용 담당자들이 얘 뭐야? 신박한데? 라고 할만한 아이템을 던져주는게 더 경쟁력을 만드는 길이지 않을까 싶다. 이건 그냥 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