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는 명품 신발에 빨간펜을 칠했는가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는 곳에 있어야 한다.

by 고밀도

사무실이 시끄러웠다. 건물 전체 임직원의 구두를 수선, 관리하시는 분이 다녀간 뒤였다. 사람들은 진기한 광경을 구경하려고 모여들었다. 나도 궁금한 마음에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최근 이태리 출장을 다녀온 좀처럼 감정의 변화를 드러내지 않았던 차장님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고, 막 도착한 구두 한 짝이 밑바닥이 보이는 상태로 차장님 오른손 위에 있었다. 바닥에는 B-10F라는 글씨가 빨간펜으로 거칠게 쓰여 있었다.


그 구두로 말할 것 같으면, 최근 이태리 출장을 다녀온 차장님이 큰 결심으로 하고 구입한 물건으로, 무슨 기념일을 맞이하여 스스로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이태리의 유명 명품 브랜드에서 마침 자신의 발에 꼭 맞는 신발을 발견하여 거금을 들여 장만했다는 소리를 점심시간에 들었던 터였다. 차장님이 반짝이는 신발을 신고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그 명품 브랜드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먼저 말을 걸었다. “차장님, 이번에 이태리 출장에서 새로 장만하신 거죠? 엄청 이쁜데요?” 그 명품의 가치(혹은 가격)를 아는 사람은 그 명품 신발을 찬양했고, 차장님의 입꼬리는 미묘하게 올라갔다.


그런데 그 명품 신발 밑창에 빨간 낙서가 그려져 도착한 것이다. 몸이 날렵한 이 대리님이 물티슈를 찾아 건넸고, 차장님은 빨간펜의 흔적을 지우려 했다. 흔적을 완벽하게 지우기는 쉽지 않았다. 구두 밑의 붉은 기가 사라질 때쯤 사무실의 소란도 마무리되어갔다. 그 명품 구두는 차장님에게 거금을 주고 구입한 구두이기도 했지만 큰 의미를 구두였다. 그런 구두에 빨간펜의 터치가 얼마나 속이 상했을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구두 수선공에게는 작업 단가로 구두의 가치가 정해 지므로, 그 구두의 속사정을 모르는 구두 수선공에게는 그저 한 켤레의 구두일 뿐이다. 되려 구두 수선공에게는 많이 낡고 해져서 수선을 많이 해야 하는 구두가 더 가치 있지 싶다.


같은 구두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 구두의 목적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이 구두는 차장님 발에 있어야, 그 명품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비단 구두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같은 사람이라도 가치를 인정받는 곳과 아닌 곳이 갈린다. 필자의 동기 중 하나는 중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영업직으로 입사를 했지만, 영어도 중국어도 통하지 않는 지역에 배치되었다. 그래서 재능을 활용하여 성과를 낼 기회를 얻지 못했다. 시간이 꽤 흐른 뒤, 중국을 담당지역으로 받게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다음 분기에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물론 얼굴 표정마저 밝아져 있었다. (당시, 중국은 인기지역으로 신입이 배치받기 어려운 지역이었다.)


명품 신발뿐 아니라 우리도 각자의 가치가 인정받는 곳에 있는 것이 현명하다. 우리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서는 열심을 내더라도 자칫 빨간펜이 마음에 슥슥 그어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내가 가진 재능을 필요로 하고, 그 가치가 인정받는 곳을 향해 가야 한다.


그런 “Right place”를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들을 잘 해내는지, 어떤 사람들과 일을 할 때 시너지가 나는지 등등 자신에 대한 연구는 필수다. Right place를 찾는 노력은 자신만이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right place를 찾는다면 직장인으로서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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