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짬밥이면 전문가가 될 줄 알았지.

어쩌다 김 과장

by 고밀도

한 분야를 10년 이상 파면 전문가가 된다고들 한다. 매해 과제를 진행할 때에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찾아 나선다. 전문가를 섭외할 때의 기본 조건은 최소 10년 이상 한 분야에서 깊이 있게 고민을 했던 이력이다. 이제는 점점 나랑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전문가로 섭외가 된다. 작년에 만났던 전문가의 경우는 혜안이 엄청났다. 꽤나 감동을 받아서 개인적으로 그분의 글을 검색해 읽어 보다가 나보다 연배가 어린것을 발견하고 말 그대로 ‘현타’가 왔다. ‘와… 나도 10년이 넘은 과장인데 나는 전문가인가?’ 스스로 던지는 질문에 나는 쉽사리 ‘YES’라고 답할 수 없었다.


<출처:구글 이미지>


나 역시 10년이 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데 나는 왜 전문가가 아닌가? 신입사원 시절에는 '과장'이라는 직급이면 무슨 일이든 두려움 없이 척척 해낼 것만 같았는데, 자신 있게 전문가라고 인정받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전문영역은 회사 식당 메뉴 중에 무엇이 가성비 좋은지 다른 날에 비해 오늘은 간이 더 되어 있는 지다. 10년 짬밥이기 때문에 나의 미각은 충분히 훈련이 되어 있다.






한껏 스스로를 포장하여 ‘Generalist’라고 어필한다. 어떤 일이 주어져도 해결할 수 있다고, 모나지 않아서 어디서든지 잘 융화될 수 있다고, Specialist는 아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낼 자신은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은 내가 하는 일은 언제든 다른 인력으로 교체할 수 있는 영역임을 설명하는 꼴인 것 같다. 그래서 늘 매년 돌아오는 ‘올해의 성과’ 시즌에는 소설가로 변신하여 매년 비슷한 일을 하는 나의 한 해를 수식어를 동원하여 이렇게도 바꿔보고 저렇게도 바꿔본다. ‘급변하는 위기(코로나 같은) 속에서도 유연성을 발휘하여(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임) 프로젝트를 2건 완료하였음.’ 수식어를 빼고 그 해에 따랐던 조금의 운을 빼고 나면 부서의 어떤 사람의 이름을 붙여놔도 통하는 일반적인 업적이 된다. 10년이 넘어가면서 매년 나의 고민은 깊어진다.


눈을 돌려 나의 선배들을 바라본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선배 A는 인사이트가 있다고 임원들의 칭찬을 받는다. 하지만 인사이트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 어떤 분야에 대해 분석하고 전략적 사고를 하는 인사이트보다는 임원에게 ‘빙의’되어 그분이 하고 싶어 하는 어려운 이야기들을 꺼내어 정리해주는 것이다. 그러려면 상사에게 성공적으로 ‘빙의’될 수 있도록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상사의 취향, 어떤 단어나 의견에 민감한지, 어떤 요일에 기분이 저기압인지, 기분 좋게 넘어가는 황금 보고 시간대는 언제인지 등의 big data가 있어야 한다.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는데 상사가 바뀌면 바닥부터 다시 데이터를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전문성은 내 안에서 시작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올해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에 30대 초반의 전문가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애 띤 얼굴의 그녀는 건축 전문가였다. 왜 전문가인가를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만나자마자 그의 철학이 담긴 언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떻게 건축을 더 잘할 것인가 더 완벽한 건축을 할 것인가를 논하지 않았다. 어떤 철학을 담아 공간을 구성할 것인지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흔들리지 않는 사명이 담긴 ‘철학’으로 건축을 ‘활용’하고 있었다. 10년이 넘는 시간 세월 동안 내가 철학을 가지고 일했던 적이 있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갓 입사했을 때에는 ‘철학’보다는 멋지게 나의 능력을 펼치고 인정받아서 저 높은 곳에 올라가자는 ‘희망’과 ‘환상’뿐이었다. 환상은 머지않아 깨지고 어느새 나는 월급날 만을 바라는 ‘월급쟁이’가 되었다.


지금 나는 30대(후반이지만), 다시 우물 팔 곳을 정하고 10년을 우직하게 파면 그래도 아직 40대다(역시 후반이지만). 그렇다면 40대 이후 꽤 긴 시간은 전문가로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올 초부터 스스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사실 너무 Generalist로 사느라 내가 특별히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좋아하는 것을 무엇이든 시도해봤는데 첼로, 십자수, 기타, 그림은 내 영역이 아닌 것으로 깔끔히 정리되었다. 글쓰기는 계속 시도해보고 있는 영역이다. 글로 고백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내 삶의 ‘어젠다’를 찾아가는 중이다. 10년 동안 과제와 수많은 회의의 어젠다를 구성하고 공지하고 논의했다. 하지만 그간 스스로에 대한 ‘어젠다’는 고민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어젠다와 나의 철학을 쌓고 꾸준히 10년을 쌓으면 나의 글의 제목을 ‘10년 짬밥이면 나도 전문가!’라고 바꿔볼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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