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라는 가면

이제 솔직해질 때도 됐잖아!

by 고밀도

걸스카우트 활동을 하면서 단체 여행을 많이 다녔다. 여름과 겨울에는 꼭 2박 3일로 캠프를 떠났다. 적극성을 키우기 위해 엄마가 걸스카우트에 보냈을 만큼 나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무슨 의견을 말하려 치면 심장부터 두근거렸다. 그런 내가 가장 적극성을 보일 때는 버스에서 자리를 정할 때와 잠자리를 정할 때였다. 같이 간 친구가 홀수라면 나는 전 날부터 꼭 내가 혼자 앉겠다고 해야지 다짐한다. 혹시 다른 친구들이 혼자 앉기 외로울 수도 있으니 말이다. ‘괜찮아! 나는 원래 혼자 앉는 것 좋아해!’라는 말로 친구들을 안심시키고 마음 편히 여행을 갔다.


초등학교 4학년 걸스카우트 겨울 캠핑 때의 일이다. 그 날은 유독 추운 날이었다. 도착한 숙소는 한쪽은 상당히 뜨끈했지만 커다란 창문의 밑으로 바람이 솔솔 들어오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순식간에 방을 스캔하고 가장 춥고 구석진 자리를 도맡았다. 평소에는 보지 못한 적극성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친구들은 나를 보고 괜찮겠냐고 물었지만 나는 해맑게 ‘괜찮아! 나는 원래 열이 많아!’라고 말했다. 그날 밤새도록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았고 나는 난생처음 코피를 쏟았고 심한 독감을 앓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하는’ 가면을 쓰고 살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그 가면을 벗지 못했다. 몇 해 전 맹장염이 터졌던 나는 끙끙 앓으면서도 ‘괜찮아요! 체 했나 봐요.’라고 말하고 미련하게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맹장염은 복막염이 되었고 장기 일부를 잘라내야 했다. 대체 왜 나는 지난 세월 동안 괜찮지 않았는데 괜찮다고 말하며 살아왔던 것일까?


‘괜찮다’는 말은 참으로 모호하다. 돌이켜 보니 나는 대체로 ‘괜찮지 않지만 내가 참으면 모두가 행복해질 것 같을 때’ 사용했다. 나름의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엔 스스로에 대한 배려는 놓치고 있었다. 괜찮지 않다고 솔직히 말해서 탈이 나는 경우보다 괜찮지 않는데도 괜찮다고 할 때 탈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비단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괜찮다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있는 듯 하다. 업무량이 많아 몸살에 걸렸는데도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출근한 A과장, 불가능해 보이는 업무 지시를 받고 끙끙 앓으면서도 ‘괜찮아, 월급쟁이가 다 그렇지 뭐’라고 말하는 B과장. 모두 ‘괜찮아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꽤 오랜 시간 가면을 쓰고 살아서 이 것이 가면인 줄도 몰랐다. 그렇기에 가면을 벗기 위해 조금씩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곧 불혹이니 평균적으로 계산했을 때 나에게는 생의 절반이 남아 있다. 남은 생애에는 정말 괜찮을 때에만 ‘괜찮다’라는 말을 하는 용기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 ‘괜찮다’고 말한 한 사람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솔직해질 기회를 빼앗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나의 ‘괜찮다’는 문장이 혹시 다른 이에게 고통을 주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본다. 힘들면 힘들다.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쉽지 않겠지만 나부터 이 가면을 벗어던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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