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소모하려고 달려드는 세상

심신 미약 직장인의 고뇌

by 고밀도

조직이 크면 어쩔 수 없이 각자의 본 업무 외에 공통업무를 담당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가령 문구를 취합하고 주문해주는 사람. 조직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회식이나 여러 액티비티를 준비하는 사람. 예산을 취합하고 관리하는 사람. 중요한 자료, 데이터, 구독을 관리하는 사람. 매주 회의를 공지하고 예약하고 판돌이(자료를 띄우고 컨트롤하는)를 하는 사람 등등


잠시 공통 업무의 특징을 짚고 넘어가자면, 공통업무는 세 가지의 큰 특징을 갖는다.


1. 처음에는 공통업무를 맡아주면 사람들이 고마워하지만 이내 고마움은 식어버린다.

“이거 말고 다른 거 없어요? 00 브랜드 펜이 좋던데…”


2. 잘해야 본전이다. 본 업무가 바쁘다고 공통업무가 지연되는 것을 이해해주지 않는다.

“예산 마감도 오늘인 거 알죠?”


3. 성과 계산을 할 때는 공통업무는 합산되지 않는다.

“수고해줘서 고마워요. 그렇지만 이걸 성과로 보기는 어렵죠?”


공통 업무를 조직원들이 공평하게 나눠서 하면 좋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조직 내에서의 시간이 쌓이면서 공통업무는 안 할수록 좋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절의 기술을 발휘해서 공통 업무를 피한다. 그렇게 되면 리더 입장에서는 거절을 못하는 부서원을 탐색하게 된다. 리더들도 경험치가 쌓이면서 애초에 공통업무를 거절하지 않을 사람들을 보는 눈을 갖는다.


공통 업무 담당자은 신기하게도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대체로 친절하고 상냥하다. 거절을 잘하지 못한다. 책임감이 강하다. 상대적으로 젊은 축에 속한다(직급도 낮다는 이야기다). 애석하게도 나도 그 레이더망에 걸려 오랜 시간 동안 공통업무를 늘 뗄 수 없는 혹처럼 달고 있는 부서원 중에 하나다. 올해는 정신을 차려 보니, 본 업무 외에 부서와 파트에서 해결해야 하는 공통 업무 2건을 맡고 있었다. 비수기 시즌에는 공통업무가 부담스럽지 않지만, 일의 성수기에는 공통업무로 시간을 보내게 되면 큰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최근 몇 가지 일을 겪으면서 이런 굴레를 끊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얼마 전, 올해의 진행 현황을 점검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있었다. 본 업무가 몰려 있는 시점이라 나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다. 매월 오는 매거진에서 주요 기사를 발췌해서 공유하는 것이 공통업무 중 하나였는데, 한 두 달은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아 메일을 공유하지 못했다. (물론 공유를 할 때마다 ‘미개봉’이 태반이었다.) 찜찜했지만 본 업무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공통업무를 목표 중에 하나로 넣어야 한다는 가이드에 따라 약 10%의 비중으로 적어놨는데, 달성하지 못한 것이 되어버렸다. 공통업무를 담당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10%을 넣을 필요로 없고 본 업무에 가중치를 더하면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셈법인가?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동료는 몇 년째 공통업무 프리존에서 근무하고 있다. 부서장은 그가 사람들과 원만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흘리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공통업무를 진행하는 데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 이런 결과를 떠안을 것이라면 나는 차라리 ‘상냥하지 않고 친절하지 않으며, 의사소통 능력도 그리 뛰어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는 반드시 거절의 노하우를 기르리라 다짐하며 퇴근을 한다.


사람들은 거절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쉽게 소모한다. 조직뿐 아니라 삶에서도, 우리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거절을 못하는 유순한 사람들을 잘 찾아낸다.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부탁을 할 일이 있다면 옆자리에 앉았는 동료보다는 아래층의 친절하고 상냥한 다른 부서 동료를 찾게 된다. 사람의 에너지는 유한하다. 우리의 시간도 유한하다. 노동력을 투입한 결과물인 월급도 유한한다. 충전과 소모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때론 이런 ‘거절’을 하겠다는 유치한 의지를 불태우기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빡빡한 퇴근길 위에서 어떻게 하면 사업을 번성케 해서 회사에 도움을 주는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주는지 보다, 어떤 성격의 직장인이 되어야 ‘호구’가 되지 않을 수 있는가를 고뇌하는 나는 14년 차 장기근속 근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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