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 임원의 모순

늙어가는 사회, 젊어지는 조직

by 고밀도

겨울은 기다림의 시즌이다. 높은 곳부터 임원인사가 시작되어 점점 아래로 내려오면서 차년도의 조직의 윤곽이 잡힌다. 때에 따라서는 조직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하고 예상 밖의 조직이 새로 생겨서 큰 변화를 가져온다. 우리 같은 미물(?)들은 변화가 크게 일어나도 눈 앞에 할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12월을 보내면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나는 몇 해 전부터 뉴스의 헤드라인을 접하면서 크게 위기감을 느꼈다. 이것은 당장의 위기가 아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젊어진 조직’, ‘세대교체’가 주요 키워드 중에 하나였다. 특히 올해는 ‘X세대 임원이 온다.’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한 대기업은 승진 임원의 평균 나이는 40대 중반이라며 12월 초의 뉴스 페이지를 채웠다. X세대는 일반적으로 1965년~ 1980년생을 일컫는다. 이제는 70년생의 리더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얼핏 들으면 ‘젊어지는 조직’은 에너지와 생기를 연상시킨다. 변화를 예측하는 것도 무의미할 만큼 빠르다는 4차 산업 혁명시대에 순발력 있게 대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믿음을 준다. 하지만 여기에는 모순이 있다.


일단, 첫 번째 모순은 우리 사회는 점점 ‘고령화’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2017년에 만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4%를 넘어서 고령사회로 진입했고 2025년에는 고령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운 좋게 정년퇴직을 다 채운다 하여도 우리는 노동력이 있을 때 대비해놓은 자금으로 20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기업에서 정년을 채울 수 있는 확률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는 12년 차 직장인이다. 내가 입사하고 지금까지 정년퇴임을 하셨던 분을 딱 1명 보았다. 그분의 사례가 얼마나 이례적인지 회사 전체 뉴스에까지 나와서 인터뷰를 하셨다. 그분은 후배들을 상사로 두면서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지금도 우리 부서에는 임원을 제외하고는 50대가 단 한 명도 없다. 우리 부서의 부장님도 40대 중반의 X세대이다. 조직은 젊어지는 것이 분명하다. 단, 한정된 리더 자리에 한해서 말이다. 임원을 달지 못하면 많은 선배들이 스스로 견디기 힘들어서 하나 둘 떠난다. 조용히 사라지는 선배들이 내 미래라고 생각나는 후배들의 머릿속은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조직에서의 끝은 둘째치고 시작도 점점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취업 포털 사이트 인크루트의 조사에 따르면, 1998년 대졸 신입사원의 평균 나이는 25.1세였지만 2019년에는 약 6세가 많아진 30.9세라고 한다. 내가 입사하고 1년 뒤 처음 맞이한 후배는 이미 30대에 진입해 있었다. (참고로, 학사 신입이었다.) 우리는 이미 30대에 거의 진입해서야 겨우 ‘밥벌이’를 할 수 있다. 밥벌이를 시작하고 나서 얼마 간은 ‘학자금’을 갚아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차도 사야 하고 집도 사야 한다. 공무원이나 특수한 조직이 아니고서 50대까지 일하기가 힘드니, 우리는 길어야 20년 정도를 근로 소득자로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20년의 세월 동안 결혼을 했다면 자신뿐 아니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의 수도 늘어날 것이다.


<출처 : 동아일보>


나는 27살에 입사했다. 물론 학교를 졸업하고 ‘스트레이트’로 입사한 동기들은 23살이었다. 하지만 나처럼 2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동기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 글에 ‘이해찬 1세대’ 임을 고백했던 나는 고등학교 시절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재수를 했다.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라고 외치며) 25살에는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휴학을 했다. 낮에는 화장품 회사에서 인턴을 하고 저녁에는 학원강사와 과외를 하며 돈을 모았다. 그리고 호주로 1년 동안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왔다. 어릴 때 영어 사교육을 별도로 받을 적이 없었고 토익과 영어면접은 버거웠다. 그래서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영어권에서 생활할 수 있다고 하여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온 것이다. 틈을 내어 중국 레스토랑에 casher로 일하면서 호주인 최저시급의 절반도 안 되는 돈을 받았다. 그래도 한마디 말없이 일하는 청소나 설거지가 아닌 영어를 말할 수 있기에 감사했다. 그렇게 나의 20대는 속절없이 흘러갔다. 안정감을 느끼는 짧은 30대를 지나고 곧 40대를 바라보고 있다. 매월 열심히 주택담보 대출을 상환하고 있는 근로자이다. 아직도 현실을 다지느라 노후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데 조직만 아주 빠른 속도로 젊어지고 있다.


<출처:한겨레>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2018년 66세 이상의 상대적 빈곤율은 약 44%이다. 거의 10명 중 4-5명이 노인빈곤이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젊은 시절 열심히 일했던 근로자였을 것이다.


근로 소득자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살아가야 하는 시간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것이 현실인데 젊은 조직, 세대교체를 외치는 것은 상당한 모순이다. 모두 ‘젊음’에 주목할 때 우리는 사회 전반의 균형과 인생 전체의 여정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점점 늦어지는 사회진출, 점점 젊어지는 조직.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이 곳에 서있을 수 있는 것일까.





<참고기사>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422/100768127/1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9/28/2020092890092.html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63890.html#csidxa4124d3010816b58a5063df4bbb72b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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