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맨은 이기적이다.

조직에서의 Yes와 No에 대한 이야기

by 고밀도
어느 날, 사무실에 강력한 Yes맨 A가 나타났다.

A는 매우 친절했고 모든 일에 솔선수범을 보였다. 나랑 비슷한 연차인 A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후배는 없고 위로만 선배들이 가득한 팀이어서 커피를 사러 갈 때에도 나 혼자 움직여야 했는데 함께 가주거나 나보다 먼저 몸을 일으켜 커피를 사다 주었다.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든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의 호감을 샀다. 특히, 상사의 말에는 엄청난 리액션을 보이고 작은 지시 사항도 놓치지 않고 즉각적으로 해냈다. 한참 일이 바빠질 때쯤 상사는 A의 Yes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자유롭게 토론을 하면서 방법론을 찾으며 일하는 팀이었는데 상사는 Yes를 하는 A에게 일을 조금씩 더 시켰다.


오늘은 위로부터 방향성 없는 보고서 작성을 의뢰받았다. 팀원들을 모여서 어떻게 하면 임원의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만들 수 있을까 회의를 소집했다. 일은 대충 봐도 상당히 모호하고 목적이 없고 무리한 일정의 Task였다. 하지만 그 것에 대해 논할 기회를 주지 않고 A는 ‘제가 바로 만들어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상사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흐뭇해했고 다른 팀원들은 상당히 당황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무리한 일정에 모두 Yes라고 한 A는 자신의 Yes를 지키기 위해 야근을 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혼자 늦게 까지 남아있는 A가 안타까웠고 우리는 미안해하면서 퇴근을 했다. 시간이 점점 지나자, Yes로 A가 받아온 일들은 당연히 우리 팀이 해야 하는 일로 자리 잡았다. 가끔 부당하고 무리한 일정에 의견을 내고 일을 조율할 수 없는지 묻자 상사는 A는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왜 해보지도 않고 걱정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한 순간에 우리 팀이 몇 년간 쌓아왔던 워라밸과 자유로운 토론 문화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워킹맘으로 복직하고 스마트하게 일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몇 년 간 고군분투를 했었다.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더라도 아이를 찾으러 어린이 집에 가야 했기에 그 시선을 뒤로하고 용기 내어 칼퇴를 했다. 혹시 시간이 부족하여 못다 한 일은 아이를 재우고 거실 식탁에서 추가로 마무리를 해서 과제를 진행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도록 해왔다. 그렇게 몇 년을 쌓다 보니 자연스럽게 워라밸 문화와 토론 문화가 자리 잡았던 것이다. 그런데 A가 온 지 약 6개월 만에 팀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저녁은 각자 집에서 먹자고 했던 분위기는 A가 저녁시간을 활용해 상사와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데에서 무너졌다. 저녁 먹으러 가자는 말이 다시 사무실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10년 전 과거의 사무실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한 마리의 ‘Yes맨 미꾸라지’가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충분히 대화가 오가면서 일을 파악한 것이 아니라, 상사의 한 문장에 성급히 Yes를 했기 때문에 ‘삽질’ 하는 상황이 계속 발생했다. 충분한 토론으로 다양한 시각을 통해서 효율성을 찾으며 일을 해야 하는데, ‘일단 해보는’, ‘해보고 안되면 다른 곳을 더 해보는’ 삽질이 시작되었다. 수평문화를 강조하던 회사 안에는 상당한 Hierarchy가 생겨나고 있었다. A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잘 해내도 절대적인 시간과 양에서 뒤처지므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기 시작했다.


한참 유행하던 TVCF가 생각난다. ‘모두가 Yes라고 말할 때 No라고 하고, No라고 할 때 Yes를 말하는 친구가 되겠다’는 카피가 유행이었다. 2001년 한 증권사의 광고였으니 20여년 전의 일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세대들은 자신의 소신을 눈치 보지 않고 이야기하는 세상이 되었다. 최근에는 상사보다 먼저 칼퇴하는 신입사원의 모습, 회식을 당차게 거절하는 후배들의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노출이 된다. 이런 문화에는 ‘Yes’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 용기를 내어 반대의 의견을 말하고 개선해볼 기회를 얻어냈던 숨은 용자들의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공과 사를 구분해서 일을 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의견이 어찌 되었던 생글생글 웃으며 ‘Yes’라고 말하는 아랫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Yes만을 말한다면 그 조직은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4차 산업 혁명의 변화의 씨앗을 뿌렸고, 코로나, 경제 위기 같은 변수들이 수 많은 변화들을 이끌어 내고 있다. 미래는 점점 예측 불가능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이런 세계에서는 다양한 시각으로 문제를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전처럼 리더 한 명을 따라서 ‘저 산으로 가자’하면 우르르 따라가서 땅을 파다가 ‘이 산이 아닌가벼’ 하고 다른 산으로 가서 다시 삽질을 해서는 버틸 수 없는 세계가 온 것이다.


결국 ‘Yes맨은 이기적이다’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Yes는 희생이 아니다. 그것은 갈등과 마주하기 싫어하는 회피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Yes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편하다. No라고 말하는 순간, 조금의 불편함이 생기기 마련인데 Yes는 그런 불편함은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불편함을 피하고 ‘나 하나만 희생하고 고생하면 되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 것은 결코 혼자만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는 혼자 남아서 늦게까지 남아있는 A에게 미안해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A로 인해서 팀을 옮기고 싶다는 사람들이 한둘 생기기 시작했다. 일방적인 '지시-Yes'에 조직은 경직화되었고 일의 비효율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No맨이 되자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생각하고 대답할 시간’을 확보받지 못하고 자라왔다. 누군가 질문을 하면 바로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렸는지도 모른다. 잠시 즉각적인 대답은 보류하고 충분히 생각하고 질문하고 더 알아본 뒤에 대답을 결정해도 늦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Yes에 익숙해서 자라왔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고,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노력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지 않도록 무조건적 Yes는 잠시 넣어두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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