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수혜자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선물

by 고밀도

페이스 북에서 10년 전의 내가 포스팅했던 사진을 알려준다. 사진을 클릭하고 보니 인생 최초로 ‘뉴욕’을 만난 날이었다. 입사 2년 차에 미국 출장을 가게 된 나는 한 없이 들떠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에게 엄청난 미션이 주어졌다. 미국 법인에 본사 라인업 하나를 추가하기! 나는 당시 ‘세계를 누비는 마케터’를 꿈꾸고 언젠가는 TIME지에 ‘영향력 있는 100인’에 꼽히고 싶다고 TIME 지를 구독하던 열정 신입이었다. 부장님은 이번 미션이 단번에 성공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도끼를 찍어야 할 사람이 필요했고 그것이 ‘열정 과잉’ 상태의 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디자이너와 개발자 책임님들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비행기 안에서 빽빽하게 적어온 영어 스크립트를 연신 외워댔다.


내가 담당하던 제품은 우리 회사의 메인 라인업이 아니었기에 해외 법인의 관심도가 낮았다. 더구나 신규 라인업이라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우리의 방문을 반기지 않았다. 같은 노력이라면 메인 라인업에 힘을 쏟는 것이 실적에 더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열정’으로 무장했던 나는 담당자들과 미팅을 하면서 한 없이 무너졌다. 아무리 설득하려고 해도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고, 심지어 한 무례한 직원은 나의 설득이 끈질기게 계속되자, 2배속으로 영어를 해서 내가 대화를 놓치게 만들었다. 호텔방으로 돌아와 나는 분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부들부들 성이 나서 실력을 더 키워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다. 성과는 없었지만 어쨌든 10번의 도끼 중 한 번은 찍고 가는 미션은 클리어하고 한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같이 동행했던 책임님들과 힘든 여정을 달래고자 귀국 비행시간 전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타임스퀘어를 돌았다. 전날의 굴욕도 잊고 내가 타임스퀘어에 서 있다는 사실에 감격이 들었다. 마치 ‘세계를 누비는 마케터’라는 꿈에 가까이 다가간 것 같았다. 다시 힘을 얻고 신나서 구경하는 나를 10년 차 선배님 두 분이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밀도 씨,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뭐 하러 그렇게 애를 쓰는 거야. 조금 힘을 빼고 일해야 회사생활을 길게 할 수 있어.”


간 밤에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을 알아챘는지 선배님은 조언을 해주었지만 그때의 나는 힘을 빼는 법을 몰랐다. 나는 꿈을 향한 열정으로 움직이던 때였다. 힘은 들었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받다니!’ 생각했고 출근하고 일하는 것이 행복하게만 느껴지던 시간들이었다.


나는 이제 그때 조언을 해준 선배처럼 ‘보상이 없다면 열정을 다하는 일은 엄청난 손해’라는 명제를 지닌 12년 차 과장이 되었다. 이제는 ‘호구’가 되지 않겠다며 몸을 사린다.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도 보상 없이 내 노력을 더 추가해야 한다면 굳이 나서지 않는다. 매우 소극적인 자세로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손해보지 않으려 하는 나는 더 행복해진 것일까?


10년 전 그 날의 나를 보니, 지금 나에게는 없는 행복이 묻어있다. 열정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타인의 눈에는 애를 쓰고도 손해를 보는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열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행복’이라는 가장 큰 보상을 얻는 것이다. 그날 낯선 곳에서 애쓰던 나는 이미 ‘보상’을 받았기에 그런 밝은 표정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10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았을 때 행복한 모습을 발견하고 싶다. 그래서 다시 열정을 찾으러 가보려 한다.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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