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문난 울보였다. 부모님에게 조금만 혼날 기미가 보여도 눈물부터 쏟아졌고, 조금만 안쓰러운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어도 눈물을 쏟았다. 울 때는 곱게 울지 못하고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몹시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는 타입이었다. 필자에게도 상당히 불편한 부분이 있었는데 울고 나면 코가 잔뜩 막혀서 숨을 쉬기 불편했고, 울고 나면 눈에 작은 소시지를 달고 있는 것처럼 퉁퉁 부어 울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눈물 없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할 때도 있었다. 한 번은 중학교 졸업식을 2달이나 앞두었는데 친구들과 헤어질 생각이 몰려와서 교탁 밑에서 수업시간 중간중간 눈물을 쏟았다.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그런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가 하면 어이가 없는지 말문이 막히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 스스로도 이 눈물의 원천을 반드시 찾아내어 꼭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으니 말이다.
특히, 사회에서는 눈물은 더욱 과소평가된다. 사회생활에서는 ‘눈물=프로답지 못함’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아마도 눈물은 ‘감정’을 가득 머금고 있고, 회사는 이성으로 작동하는 세계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에서 처음 눈물을 보인 것은 미국 출장지에서 굴욕을 맛 본 날이었다. 열정에 충만했던 나에게 현지 법인 직원이 무례하게 2배속 속사포 스피킹을 시전 했던 날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조금씩 감정을 무시하는 방법을 연습했다. 눈물이 사회생활에서는 큰 방해가 된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감정을 배제하다 보니 문제는 애정과 열정도 힘이 빠진다는 것이었다. 감정이입을 하지 않고 최대한 사무적으로 일을 처리하자 감정의 동요는 없었지만 샘솟던 애정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무미건조함을 즐기고 있을 때, 상품기획자로서 담당지역이 바뀌면서 바로 옆 파트로 이동을 해서 첫 회의를 했을 때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단단하고 강해 보이던 대리님이 새로운 시장 론칭을 설득하기 위해 개발 및 영업 등 유관부서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설득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회의를 마치고 답답함 마음에 둘이 커피를 한잔 하러 갔는데,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발견했다. “이렇게 좋은 제품을 기획하고 만들었는데 왜 몰라주는 걸까.” 나는 예상치 못한 그녀의 눈물에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의 애정과 열정이 진심이었기에 저렇게 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둘만의 비밀이라고 약속을 했는데, 나는 그 비밀로 인해 자유를 얻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프로답지 않게는 보이고 싶지 않아서 감정을 숨겼었는데 동시에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동력인 열정과 애정도 함께 저 밑으로 숨어버린 것이었다. 그녀가 우는 모습은 전혀 아마추어 같지 않았다. 오히려 애정을 다해 자신의 업무를 대하는 태도가 느껴져 그 누구보다 프로처럼 느껴졌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눈물이 사라진다. 그녀 이후로 회사에서 애정을 기반으로 한 눈물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봄을 타는지, 그녀의 눈물을 보았던 이 맘 때쯤이면 일에 열정을 다하고 기쁨과 좌절에 눈물을 쏟을 수 있는 사람들이 그리워지곤 한다. 덩달아 작은 감정에도 슬퍼하고 기뻐하던 어린 시절 울보의 나에게도 안녕을 전하고 싶어 진다. 다시 돌아간다면 ‘눈물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