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푸코와 한강다리를 건너며
허용된다는 것
이전부터 눈여겨보던 브랜드가 하나 있었다. 업사이클링 회사로 익히 알려진 '프라이탁'처럼 폐현수막, 우산 등을 활용해 상품으로 만드는 '큐클리프'라는 업체였다. 활자처럼 생긴 건 무엇이든 읽는 행위를 좋아했던 나는 길 위의 현수막을 죄다 읽는다. '요즘처럼 디지털 시대에 길거리 배너를 누가 읽겠어?'라고 하지만 나는 읽는 사람이였다. 지자체의 지역정보부터 시골 삼거리의 '길맨' 광고까지 내구성이 있지만 영원성은 없는 광고 현수막을 읽고 다녔다.
그런데 성인이 된 후 '그 많던 현수막은 어디로 가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현수막은 전혀 재생이 되지 않으며 유한성만을 지닌 채 결국 폐기된다는 걸 알았다. 이전에 작은 시도들로 현수막을 이용해 장바구니를 나눠주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장바구니의 수요보다 현수막의 공급은 지나치게 많았다. 선거철만 되면 쏟아져 나오는 현수막이 태워져 다시 내 호흡기로 들어올 생각을 하면 마냥 편하게 읽을 수만은 없었다. 큐클리프는 그렇게 알게 된 업체였다. 평소 관심을 갖고 보던 업체가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는 소식에 푸코와 향했다.
매장 근처에 널찍이 산책하기 좋은 곳들이 있기에 업체에 연락을 드렸다.
'혹시 멍멍이도 입장 가능한가요?'
'댕댕이 대환영입니다!'
역시! 반려동물과의 생활 n년차로써 친환경과 관련된 대부분의 매장은 펫프랜들리였다.(반려동물 대환영!) 택시를 잡았다. 날이 따뜻했으면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 충분한 거리였으나 영하의 날씨에 푸코를 업고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없었다.
택시 안
- 기사님께 사전에 양해를 구했고, 짧은 거리라 그런지 푸코의 탑승을 쉬이 허용해 주셨다. (대부분의 기사님들은 사전에 여쭤보면 흔쾌히 허락해 주신다.) 멀리서 푸코를 업은 채 뛰어오는 나를 보고 기사님은 실소를 내비쳤다. '아니 개도 없고 다닌답니까? 작아 보이지도 않은데!' 기사님의 첫마디와 함께 우리는 10여 분의 동행길에 강아지 얘기를 한참 했다. '요즘은 개가 식구지 뭐. 옛날이랑 같나? 껄껄껄.' 몸과 마음이 따듯하다.
-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손님은 나와 푸코밖에 없었다. 매장 측에서 허용을 해도 간혹 개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손님이 있으면 아무래도 실내에 있는 건 서로 곤란하다. 이런 상황을 만들기 싫어 평일 오전을 기어코 골랐을지도 모르겠다.
알록달록한 무용과 유용함이 교차하는 매장은 마침 오픈 행사를 하고 있었고, 나는 푸코를 젊은 사장님께 맡겼다. '눈 수술을 해서 앞을 못 봐요. 조금 조심히 다가가주시면 엄청 좋아할 거예요!' 푸코를 맡겨놓은 채 나는 폐현수막을 자르고 폐잡지를 접어 봉투를 만들었다. 푸코는 자신을 환대해주는 이들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얌전히 매장을 활보했다. '강아지 사진 찍어도 되나요?'라는 반가운 질문에 '마음껏 찍어주세요. 초상권은 공용이에요.'라고 팔불출 반려인답게 대답했다.
동네 아주머니들
- 나는 매장의 분위기를, 푸코는 낯선 이들의 애정을 즐긴 뒤 함께 길을 걸었다. 날씨가 꽤 매서워 다시 택시를 타고 갈까 고민했지만 푸코에게 너른 산책을 가자고 설득해 나왔기에 길을 걸었다. 잔디밭에 뿌려진 다른 이들의 체취를 맡고 발길질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며 녀석은 만족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공원을 나와 다시 골목길로 들어서자 녀석은 낯선 냄새와 도로 표면에 주춤거리다 이내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녀석을 들쳐 멨다.
세 명의 아주머니께서 담소의 시간을 나누고 있는 미용실 앞을 지나고 있었다. '호호호, 개가 집에 가기 싫은가봐. 안겨가네.' '큰 개 같은데 너무 귀엽다~' '걷기 싫은 건 사람이나 개나 똑같다니까. 호호호호호' 사실 옷을 잔뜩 껴입고 영하의 날씨에 개를 들고 걸으니 약간 지쳐있었다. 그러나 이내 그들의 응원 아닌 응원 덕에 나도 미소로 답을 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한강 다리 위
- 마지막 난코스, 한강 다리. 세느강, 템즈강들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넓은 대한민국의 한강. 한강 다리는 아시다시피 그리 보행자 친화적이지 않다. 시속 40~50km의 차와 버스들이 굉음과 바람을 일으키며 달린다. 건너기 위해 보행자 작동 신호등을 누르면 죄인처럼 후다다닥 뛰어가기 바쁘다.
겨울의 한강 다리를 몇 번 걸어봤었다. 속눈썹에 눈물이 맺히고, 뾰족 튀어나온 귀가 떨어져나갈 것 같은 매서운 한강 다리. 절대 혼자였다면 걷지 않았겠지만 다시 돌아가 택시를 타기도 애매해 결국 건너기로 했다. 이렇게 녀석은 혼자서는 하지 않을 나를 '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선택은 늘 옳았다. 영하의 날씨 덕에 한강이 꽁꽁 얼었고, 환상적인 광경을 목도했다. 환상같은 찰나.
날이 많이 추웠고, 개와 동행하는 일은 역시나 쉽지 않았음에도 오늘 지나온 여정은 따듯했다. 개를 환대해주는 넉넉한 동네 인심과 반복되는 일상에서 설렘을 발견할 수 있는 녀석이 있었기에 따듯했던 것 같다. 허용된다는 것은 사소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 작은 허용의 경험이 축적돼 보다 삶을 여유있고 단단하게 만들어주곤 한다. 배제가 조금 더 익숙한 요즘 같은 시대에 간만에 허용된 하루를 걸으니 그저 안온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