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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Dec 16. 2022

개도, 고양이도, 사람도 겨울잠이 필요하다

날이 급격히 추워졌다. 몇 주 전 지인과 지구온난화를 운운하며, 올해 겨울이 정말 따뜻하다고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기온이 뚝 떨어졌다.


 여름 태생인 나는 겨울이 조금 힘들다. (그렇다고 여름 더위가 좋은 것도 아니다.) 손가락, 발가락이 길고 가늘어 온 신체의 말단이 쉽게 추위를 탄다. 심지어 귀 마저 얇고 크고 뾰족해서 겨울의 추위를 가장 먼저 느낀다. '아 겨울 싫어~ 추위 싫어~'를 외치며 매일 아침 출근길을 나선다. 거기다 휴일에도 푸코를 산책시켜야 하기 때문에 이마트에서 산 5천 원짜리 장갑을 주워 끼고 털레털레 집을 나선다. 막상 나서면 찬 공기를 가로지르는 기분이 상쾌하긴 하지만, 그래도 춥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보려 해도 춥다.

안추워

 푸코는 여름의 무더위에 축 늘어져있다가 찬 바람이 슬슬 불어오기 시작하면 삼중 겹모를 장착하기 시작한다. (어마 무시한 털갈이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한겨울이 되면 온몸에 빽빽하고 풍성한 털을 휘두른 채 산책 시간만을 기다린다. 다른 집 푸들, 비숑 이런 녀석들은 빵빵한 패딩을 따숩게 입고 나오지만 그것은 우리 개에겐 행동을 둔화시키는 도구에 불과하다.

 반면 두부는 한 눈에 봐도 얇고 흐물흐물한 홑겹의 흰털을 지니고 있다. 가을이 살짝 넘어갈 때쯤이면 녀석은 집에서 가장 따뜻한 스팟을 찾아 탐색한다. 정오의 햇살이 내리쬐는 창가, 반려인이 실수로 틀어놓은 온열매트 옆, 외출 후 던져 놓은 패딩과 핫팩 위. 열감지 센서가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귀신 같이 온기가 느껴진 곳을 찾아낸다.

외출 후 난로 옆 온열매트 위 두부

 두 녀석 다 기온이 내려갈수록 행동은 굼떠진다. 거의 식사할 때를 제외하곤 움직이지 않는다는 쪽이 맞다. 그럼에도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재밌는 풍경은 여름에는 바닥의 냉기를 온몸으로 흡수하고자 일자로 축 늘어져 있던 녀석들이 겨울만 되면 동글동글하게 몸을 말아 잠을 청한다는 것이다. 어린이 그림책에서 볼 수 있는 그 모양처럼 정말 온몸을 동그랗게 말아 눕는다. 세상에 1도의 온도도 빼앗길 수 없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우리 집에는 '멍모나이트', '냥모나이트'가 하나씩 펼쳐진다.

황종욱 작가 <겨울잠>

 놀랍게도 동물들은 동면하는 동안, 상처입지 않으며 체온이 곤두박질치고 호흡과 심박수는 극적으로 느려진다. 심지어 어떤 동물들은 죽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겨울에 식량을 구하기가 어려워 최대한 몸의 활동을 자제하고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기 위해 동면한다.

 매섭게 찬 바람을 맞을 때마다 인간도 동면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에 젖은 채 걷곤 한다. 인간은 아무리 혹한의 날씨에도 충분히 에너지원을 구할 수 있으니, 그저 지방질을 늘리기 위한 살만 쪄갈 뿐 겨울잠에 빠지지 않는다. 인간도 동물인데 현대사회의 인간은 더 이상 동면을 허락하지 않는 걸까?

냥모나이트 멍모나이트

 하지만 확실히 겨울은 인간에게도 수축하는 계절임은 분명하다. 겨울이 되면 식탐이 늘고, 해의 주기에 맞춰 수면시간 또한 길어진다. 이런 신체적 변화와 함께 내면의 동면이 필요한 시기다. 봄, 여름이 에너지를 뻗어내던 시기였다면 겨울은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며 밖보다는 안으로 좀 더 파고들고, '나'를 보듬어 보는 시기인 것이다. 내년의 움틈을 위한 에너지를 축적해나가는 값진 시기.


 그래서 겨울이 되면 자연스레 바깥세상과의 만남을 줄이고 읽고 싶은 책을 한가득 쌓아놓고 뜨뜻한 커피 한 잔을 내려 나만의 동면에 빠져든다. 일 년에 두 개 정도의 계획을 세우는 나는 그 두 가지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살펴보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살짝 틀어놓고 방바닥의 머리카락과 푸코, 두부의 털을 줍는다.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잠시 도망쳐 우리들의 굴에서 다 같이 또아리를 틀고 눕는다.


같이 굴에 들어갈 사람들께 안부를 건넨다.

행복한 동면을 취하시길 ^_^



브런치 푸코 두부 이야기 

인스타그램 @foucault.doo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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