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나의 강아지
왼쪽 눈이 불편한 지 우리집 누렁이는 계속 눈을 찡긋거렸다.
푸코의 왼쪽 눈 안쪽에 빨갛게 피가 차올랐다. 결국 올 것이 왔다는 슬픈 예감이 닥쳤다. 오른쪽 눈처럼 왼쪽 눈도 시술을 해야하는 시기가 가까워졌음을 녀석이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부어오른 눈, 느릿한 몸짓, 조심스런 걸음걸이는 녀석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지표였다.
급하게 병원에 전화를 했다. 녀석의 안과 병원은 수도권 각지에서 환자들이 와서 대기를 해야했기에 상태의 긴급함과 사진을 함께 보냈다. 다행히 빈 자리가 생겨 녀석을 안고 주말의 수도권순환도로를 달렸다. 봄이 다가온 주말 답게 도로는 막혔다.
선생님은 녀석의 눈 사진을 보여주셨다.
'여기보시면 한 번 출혈이 있어서 피가 고여있고, 다시 출혈이 생겨서 그 위에 피가 또 고여있어요.' 검은 콩 같은 녀석의 눈은 살짝 부어있고, 출혈과 응고가 반복되어 뿌옇게 변해있었다. 아마 어딘가에 물리적 충격을 받아서 생긴 외상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올해 다시 복직을 하면서 한 달동안 녀석을 이전처럼 세심히 돌보지 못하고, 고양이와 단둘이만 두는 시간이 많아졌다.
녀석의 질병이 가장 심각할 때 일을 줄인 덕에 그 시기에 녀석을 돌볼 수 있었지만, 녹내장답게 아직 푸코의 병이 끝난 건 아니였다. 충분한 산책과 놀이 시간을 갖지 못해 마음의 빚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렇게 바로 가시적인 상흔으로 나타나니 그 빚이 한층 두꺼워졌다. 집안의 부딪힐 만한 가구를 다 치웠는데도 벽 아니면 침대 모서리 어딘가에 쿵 부딪혔던 게 분명했다.
K 선생님은 다시 진료실에 들어가시더니 선생님의 나이든 리트리버가 쓰던 큰 고글을 갖고 나오셨다. 우선 이거라도 시범적으로 써보고, 자꾸 쓰는 훈련을 시켜보시라고. 사실 이전에도 고글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였으나, 푸코가 몸에 실오라기라도 하나 걸쳐지면 멈춰버리기에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 선생님께 전적을 말씀드렸더니 벗어 던지지만 않아도 반은 성공한 것이라며 최대한 물리적 충격을 받지 않도록 산책을 나갈 수 있게 해보자고 조언하셨다. 한 종류였던 안약이 세 종류로 늘어나고, 피를 응고시켜주는 약과 소독약을 한아름 받아들고 병원을 나섰다.
기존의 산책길로는 더이상 마음껏 다닐 수 없었다. 차도를 지나 산으로 산책을 다니곤 했는데, 푸코는 계단을 오르기도 쉽지 않았고 작은 키의 나무와 나무기둥, 튀어나온 바위에 부딪히기 쉽상이였기 때문이다. 결국 녀석을 들쳐메고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너른 공원으로 향했다. 고글을 끼고.
이전에도 녀석을 업고 다니면 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는데 거기에 고글이 더해지니 이목을 끌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하필이면 선생님의 고글은 멋진 렌즈까지 장착하고 있었고, 전방 10m에서 봐도 푸코의 고글밖에 보이지 않았다. 고글을 쓴 채 업힌 푸코에게 행인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어머, 얘 너 너무 웃기다.'가 대부분이였고, 말 없이 멀리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건네는 이들도 있었다. 공원에서 만난 아주머니 두 분은 한눈에 녀석의 눈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셨다.
'어떻게 아셨어요?'
'아, 우리 개가 18년을 살았거든~ 백내장 때문에 잘 안보여서 별 거 다해봤었어.'
생각보다 안구 질환을 가진 개가 많다는 걸 최근에야 깨닫고 있다.
핵인싸 고글을 낀 푸코는 마치 클럽에 처음간 DJ 같았다. 자신의 내향성을 고글, 어부바라는 온갖 액세서리로 숨겼지만 그 언밸런스함에서 풍겨져 나오는 어색함이 녀석이 진정한 내향형 개라는 걸 오히려 도드라지게 만들고 있었다.
나도 녀석만큼이나 사람들의 시선을 편하게 누리는 편은 아니기에, 푸코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어딜가든 받게 될 시선에 익숙해져야한다는 걸 알지만 땀으로 등이 젖어버렸다. 개 때문에 살면서 주목받는 일이 생길거란 상상은 해본 적도 없는데, 녀석은 자꾸만 나를 예상치 못한 상황들에 데려다 놓는다. 낯선 고글에 삐걱거리는 푸코처럼 나도 함께 삐걱거리며 녀석의 병에 적응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