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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창 Aug 23. 2020

바보 같은 여자와 이방인

이방인 - 전람회


여기 바보 같은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남자친구를 너무나 사랑했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집까지 부리며 그를 사랑했다. 


여자에 비해 그 남자는 참 보잘것없었기에 둘의 만남은 주변인들을 모두 놀라게 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서로의 격차를 신분제로 표현한다면, 그녀는 귀족, 남자는 노비 정도가 될 것이다. 게다가 그 남자는 가진 생각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뭣도 없지만 이상만 하늘을 찔렀다. 이번 생의 목표가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라며, 세상의 의미를 알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주변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다. 



그는 고집도 세고 변덕이 심했다. 언제는 사회에서 뜻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가, 좌절하니 돈을 벌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제는 떠나려 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다며, 막무가내로 비행기를 알아보고, 그녀에게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모르지만, 세상을 떠돌며 삶의 의미를 깨우치고 돌아오겠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그녀는 당연히 무서웠다. 왠지 그가 이번에 떠나면,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혹여나 세상의 무언가를 깨우친 그가 나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 그가 직장을 잘 다니며 이제는 어디 가지 않고 곁에 있을 것처럼 보였기에 안심했고, 곧 그와 결혼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폭탄발언 같은 그의 말에 그와 함께 할 미래가 사라질까 봐 겁이 났다. 하지만 그는 잡는다고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님을 오랜 연애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다녀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마지막까지 할지 말지 고민했던 꼭 돌아오라는 말을 끝내 했다. 




남자도 떠나기 전에 고민을 했다. ‘그녀와 헤어지고 미련 없이 떠나야 하나?’ 하지만, 본인을 위해서도, 그녀를 위해서도 무엇이 옳은 지 몰랐다. 결국 헤어지더라도 나중에 자연스레 헤어지는 모습을 생각하며 그냥 떠나겠다는 이기적인 결심을 했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어디를 가야 할지 찾아보며, 맹목적인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떠나는 날이 점점 다가오며,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최근까지 그는 오로지 여행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다. ‘과연 이번 여행으로 원하는 무언가를 깨칠 수 있을까?’, ‘스승을 만날 수 있을까?’, ‘혹여나 아무런 배움 없이 돌아올까?’ 하지만 떠나는 날이 다가오면서, 갑자기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해맑게 웃는 얼굴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저 바보 같이 해맑은 얼굴을 이젠 못 보려나?"


내가 떠나면, 울고 싶을 때 언제든 가슴을 내어주던 그녀가 없겠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바보처럼 행복해하는 그녀의 얼굴을 못 보겠지?, 아이처럼 엉성하게 춤추는 그녀의 모습을 못 보겠지?, 같이 드라마를 보며 울어줄 그녀가 없겠지?, 세상이 무너져도 내편이 되어줄 것 같던 그녀는 없겠지?....... 수많은 그녀의 모습이 앞을 가렸다.


언젠가 그는 그녀에게 못된 말도 서슴지 않았다. 내가 사회에서 이렇게 떠나지 못하는 것은 악마가 너를 보내서 나를 깨우치지 못하게 잡아두는 거라고……. 그저 못난 녀석일 뿐인 그를 그녀는 온전히 사랑했다. 자존심도 세고, 어디서 굽혀본 적도 없던 그녀가 뭣도 아닌 그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 정도까지 생각했을 때, 그는 어렴풋이 짐작했다. '이번 생도 못 떠날 수 있겠다.' 그녀가 보고 싶었다. 


방심했었다. 떠날 때가 되어서야 보였다. 그의 온몸 구석구석에, 그의 삶 구석구석에 이미 그녀가 너무 깊게 배어있었다. 같이 있으면 불편하기도 하고,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 없으면 너무 보고 싶을 것 같았다.  


그는 그날 꿈을 꾸었다. 여행을 떠나서 몇 년이고 배움을 찾으러 헤매던 그가 사막의 어딘가에 쓰러져 삶의 마지막을 맞이할 때 딱 하나의 후회를 하고 있었다.

“사랑한다고 몇 번만 더 말해줄 걸……” 




쉴 곳을 찾아서 결국 또 난 여기까지 왔지

내 몸 하나 가눌 수도 없는 벌거벗은 마음과

가난한 모습으로

네 삶의 의미는 나이기에 보내는 거라며

그 언젠가 내 꿈을 찾을 때

그때 다시 돌아올 날 믿겠다 했지

수많은 세월 헤매이다가

세상 끝에서 지쳐 쓰러져도

후회는 없을거라고 너에게 말했지

뒤돌아보면

네 삶의 의미는 나이기에 보내는 거라며

그 언젠가 내 꿈을 찾을 때

그때 다시 돌아올 날 믿겠다 했지

수 많은 세월 헤매이다가

세상 끝에서 지쳐쓰러져도

후회는 없을거라고 너에게 말했지

수 많은 세월 헤매이다가

험한 세상 끝에서 숨이 끊어질때

그제야 나는 알게 될지 몰라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나의 머물곳은 너였음을

숨이 끊어질때 그토록 찾아헤매던

나의 머물곳은 너였음을


이방인(異邦人) 전람회 2집 Exhibition 2 

작사 김동률 작곡 김동률 편곡 김동률



에필로그


읽으면서 대충 눈치챘겠지만, 그 멍청하고 이기적인 남자는 필자다. 필자는 결국 떠나지 않았고, 다만 그녀와 몇 가지 약속을 했다. 

1.     만약 나중에 라도 떠난다면, 결혼하기 전에 떠나기(그래야 그녀도 다른 남자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깐)

2.     만약 떠나도, 연락은 꼭 하기. 최소한 일주일에 두세 번은 연락하고 어디에 있는지 보고하기

3.      만약 떠나도 1년을 넘기지 않을 것, 만약 넘긴다면 왔다가 다시 가기(사실 두 번 가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 했다)


이번 생은 그녀와 세상을 함께 해보려 한다. 생의 마지막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또 이런 바보 같은 나를 선택해준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 

(낮에 서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필자는 술을 마시며 혼자 감상에 빠져 '이방인-전람회' 노래를 불렀다.) 

“내~ 삶에 의미는 너이기에 보내는 거라며~~~♬”

“짝!!!!(팔뚝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씨끄러!!!!! 대사 안 들리잖아!!!!!!! 드라마에 집중해!!!!!!!!!!!!”

난 말했다. “미안……..” 

그리곤 조용히 드라마에 집중했다. 그래도 난 행보…..ㄱ 하….. 다……………




사진출처

https://music.bugs.co.kr/album/4715?wl_ref=S_tr_01_01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81504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8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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