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 코스프레 하는 사람

현대인의 일코 일기

by 고광


지난주 주말, 내가 응원하는 한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갈색과 아이보리의 튀지 않는 일상복을 입고 지하철에 올랐다. 4호선 서울역에서, GTX로 환승하여 킨텍스로 가는 여정이었다. 서울역에 도착하여 GTX 승강장으로 내려가자, 벌써부터 보라색과 빨간색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상기된 표정의 다국적의 팬들이 가득했다. 그들 사이에 섞여 일반인인 척, 태연한 표정으로 GTX에 올랐다. GTX안은 팬들의 화장품 냄새로 가득했다. 나는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서서 무표정으로 무선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이어폰에서는 오늘 콘서트에서 만날 그들의 앨범이 흘러나왔다. 14개의 트랙을 들으며 가사와 응원법을 외우는 동안, 설레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혹여나 누가 볼세라, 바로 아무렇지 않은 듯한,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킨텍스역에 도착하여 5번 출구로 나오자 밝은 햇살과 활기찬 축제 분위기가 느껴졌다. 팬들만 가득한,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이 공간에 도착하자, 나는 설렘이 가득한 표정으로, 가방에 숨겨두었던 공식 굿즈 키링과 응원봉을 꺼내 들었다.


일반인 코스프레. 오타쿠(무언가의 광팬)인 사람이 일반인인 척하는 것을 말한다.

가 그들을 좋아하게 된 것은 10년 전, 대학교 2학년 때였다. 한참 인기 상승세를 타며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던 그들이 매일 뉴스를 장악했던 시절, 호기심에 찾아보았던 그들의 무대 영상의 마음을 뺏겨, 내 인생 첫 덕질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카카오톡 프로필을 내 최애의 사진으로 해두고,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좋아하는 그룹에 대해 말을 하고, 거리낌 없이 함께 노래를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그들이 자랑스러워,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에 대한 나의 애정을 숨기게 되었다. 회사에서 누군가 나에게 좋아하는 가수가 있냐고 물어보면, 좀 있어 보이는 인디가수나 무난한 발라드 가수의 이름을 말했다. 친구와 내 핸드폰으로 함께 노래를 듣다 알고리즘을 따라 내 아이돌의 노래가 나오면, 얼굴을 붉히며 다음 노래로 돌렸다. 어쩌다 나의 덕질을 들킬 때마다, 수치스러움에 얼굴을 붉히고, 나를 오타쿠로 보면 어쩌나, 이상한 사람으로 보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하였다.


대학생 시절, 카페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마감시간이 되어 손님들이 나가면,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마감 청소를 할 수 있었다. 보통은 음원사이트의 인기 있는 음악을 틀고 청소를 하는데, 어느 날, 유난히 꽂힌 노래가 있어 그 노래를 재생하고 마감 청소를 시작하였다. 최근에 내 마음을 모두 뺏겨버린, 나의 영혼을 담아 빠져 버린 노래였다. 음악을 즐기며 커피머신을 청소하던 순간, 함께 일하는 아르바이트 언니가 화장실 청소를 하고 홀으로 나왔다. 손의 물기를 털으며 그 노래를 듣더니, '으, 이 음악 뭐야.' 하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바로 다른 노래로 돌려버렸다. 그 순간, 나는 얼굴이 붉어지며, 너무나도 수치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 나와 닮았다고 생각한 노래가 부정당한 순간, 나의 취향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 자체가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사건 외에도 나의 가수의 노래가 음원 사이트를 장악할 때마다 들려오는 욕설들 ㅡ노래도 별로인데 왜 줄 세워서 피해주냐ㅡ,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자극적인 뉴스들. 쉴 새 없이 퍼지는 루머들. 내가 그들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지인들의 표정들. 그런 것들이 나로 하여금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게 만들었다. 내가 영혼을 담아 좋아하는 것을 말했을 때, 왜 그런 것을 좋아하냐는 듯한 사람들의 표정에 수치스러워,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숨기게 되었다.


사실 누구나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들이 없을 때 숨어보는 만화가 있고, 남몰래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고, 남몰래 듣는 노래가 있을 것이다. 숨듣명 (숨어 듣는 명곡)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까. 그래서 가끔은, 그냥 우리 모두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면 안 될까, 나 사실 아이돌 XXX 좋아한다. 어쩔래!라고 외치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내가 얼마나 그것을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 지를 외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건 상상의 세계에 남겨두고, 나는 현실을 살아야 하니, 그냥 일반인처럼 사회생활을 하며, 남몰래 그들을 사랑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사실, 가끔은 이렇게 나 혼자 좋아하는 것이 편하기도 하다. 그만큼 남들의 관심과 질문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좋아할 수 있으니까.


두 시간 반의 불타는 콘서트가 끝나고, 나의 아이돌은 백스테이지로 들어가고, 나는 고양 종합운동장의 3층 자리에 앉아 황홀감의 여운에 빠져있었다. 쉴 새 없이 터지는 폭죽들을 바라보며 터질듯한 심장을 진정시켰다. 4월 중순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유난히 추운 날씨라 입에서는 입김이 나왔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내 마음은 뜨거웠다. 목이 터져라 외친 응원법 때문에 목은 걸걸했고, 응원봉을 힘차게 흔든 나의 오른팔의 근육은 두근거렸다. I'll follow you into the sun, into the sun, into the sun. 마지막 곡의 가사가 계속해서 내 마음속에 울렸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공연장 밖으로 나섰다. 고양 종합운동장 앞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 사이에 서서 질서를 맞춰 셔틀버스 타는 곳으로 걸아가, 신도림으로 향하는 셔틀버스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사운드로 가득했던 공연장과 달리 엔진소리만 들려오는 조용한 셔틀버스 안. 콘서트에서 찍었던 사진과 동영상을 돌아보니, 자연스럽게 미소가 나왔다. 인스타에 한번 올려볼까, 갑작스레 이들에 대한 사랑과, 그들의 콘서트가 대단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 져, 인스타그램의 새 스토리 추가 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업로드하려는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나의 맞팔들. 나의 직장동료, 친구들, 가족들. 나는 도저히 스토리를 올리지 못하고 핸드폰을 닫았다. 그러곤 무선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시 그들의 앨범을 재생하였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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