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필름카메라의 의미
따사로운 겨울날, 필름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섰다. 묵직한 금속 바디에서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허름한 간판들을 지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고양이 한 마리가 털을 정리하고 있었다. 숨죽여 고양이에게 다가간 후 필름 카메라의 뷰 파인더를 눈에 가져다 댔다. 조심스럽게 셔터스피드와 조리개를 딸깍, 단계별로 조절하여 노출도를 맞추었다. 고양이가 나를 바라본 순간에, 고양이의 눈동자에 재빠르게 초점을 맞추어 찰칵, 하고 셔터를 눌렀다. 셔터 소리에 놀라 도망가는 고양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카메라의 릴리스 가드를 밀었다. 필름이 탄력 있게 감기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필름 카메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 당시 나는 13명으로 이루어진 한 아이돌 가수를 좋아했는데,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멤버가 항상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다. 그가 들고 다니던 검은색 올림푸스 카메라를 보며 나도 모르게 필름 카메라에 대한 로망을 키웠다. 그러다가 그 꿈을 이루게 된 것은 15년 후이다. 직장 생활을 하며 취미로 할만한 것들을 찾고 있었는데, 필름 카메라가 생각났다. 나는 원데이 클래스에서 카메라 작동법을 배운 뒤 곧바로 1977년식 기계식 수동 카메라인 니콘의 FM2를 구매했다.
필름 카메라의 뷰 파인더로 본 세상은 아름답다. 구축 복도식 아파트의 허름한 건물들. 눈이 오는 날이면 미끄러워 위험한 좁은 오르막길. 허름한 미용실과 가게들. 카트를 의지하며 걸어 다니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신림 난곡동은 허름하고 낡은 동네이다. 하지만 뷰 파인더를 내 눈에 가져다 대는 순간 우리 동네는 바뀐다. 노란 햇빛을 받은 은행나무. 하교하는 초등학생들의 신난 목소리. 저녁 장을 보고 돌아오는 어머니들의 포근한 뒷모습과 그 뒤로 보이는 주황색의 노을. 그렇게 우리 동네는 허름하고 낡은 동네가 아닌 정겹고 따스한 동네가 되었다.
보는 시선에 따라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사실, 이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나는 끝도 없이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7시까지 카페에 가서 오전 아르바이트를 하고, 수업을 들은 뒤 저녁 아르바이트를 갔다가 12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에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새벽까지 공부를 하고, 다음날에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또다시 아침에 아르바이트를 갔다. 그 당시 나의 머릿속에 있던 것은 모조리 불평과 불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허공을 노려보았다. 짜증스러운 손길로 머리를 벅벅 감은 뒤 현관문을 꽝, 닫으며 집을 나섰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모두 노려보며, 저 인간들은 팔자도 좋다. 나는 이러고 사는데. 하며 모든 사람들을 원망했다. 집에 돌아온 후에는 지친 몸과 마음을 침대에 눕힌 채 씩씩거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어쩌다가 그런 순간이 왔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정말 갑자기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내 인생에 대한 생각이 아니었다. 이런 거지 같은 감정에 빠져있는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이었다. 어차피 살아야 하는 인생, 바뀔 수도 없는 상황.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면 그냥 내가 바뀌면 되지 않을까? 그 순간의 생각은 나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 스스로를 응원하고, 나를 위해 건강한 밥을 먹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 기뻐하고, 만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모든 것은 그대로였지만, 나의 시선이 바뀜으로 인해 더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다.
필름 카메라는 이런 면에서 나에게 아주 소중한 물건이다. 필름 카메라는 나로 하여금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열심히 찾도록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운 순간들, 장소들, 눈빛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의 세상이 지루해질 때면, 나는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밖으로 나간다. 어깨에 달려있는 묵직한 필름 카메라의 무게를 느끼며 오늘은 어떤 세상을 발견하게 될까, 기대에 차게 된다. 아름다운 것들을 더 많이 발견할수록, 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진다. 내 인생이 더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