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복수에 관한 소설
네, 대한도시가스입니다.
여자의 목소리는 친절했다. 친절함은 때론 독이 된다. 이 사람이 적합하다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수고하십니다. 제가 지금 고지서를 지로로 받고 있는데요, 자꾸 누가 가져가는 건지 못 받고 그러네요. 그냥 문자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아 네 고객님 성함이?
박연입니다.
네 잠시만요. 주소가 어떻게 되시죠?
XX구 래미안 311동 513호입니다.
아하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고객님
네 등록하신 전화번호 확인을 했구요, 전화번호가 혹시 010-2291에 XXXX이십니까?
네 맞습니..아뇨 전화번호를 최근에 바꿔서요 번호 수정 가능한가요? 지금 몇 번으로 되어 있다고요?
네 고객님 2291에 XXXX입니다.
2291에 XXXX..잠시만요.. 아 네 이 번호 맞네요 번호를 최근에 바꿔서 이번호가 아닌가 했네요 네 맞습니다. 이 번호로만 좀 보내주세요. 문자로 보내주시나요? 아니면 혹시 이메일로도 가능한가요?
이메일은 XXXXXXX@naver.com으로 되어 있으신데 여기로 보내드릴까요?
거기로 보내주시는 게 좋겠어요 문자는 오는 게 많기도 해서 메일이 낫겠네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고객님. 즐거운 하루되세요! 상담사 조,민,영이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지예는 전화를 끊었다.
친절한 회사는 유용하다. 남의 정보를 캐내는 것이 아주 쉽다. 악의는 아니다. 온전히 선의 때문이다. 물론 그 선의에는 회사의 방침이 들어가 있기는 하겠다. 클레임을 최소화 해! 고객의 비위를 맞춰! 뭐 그런 종류의 교육. 그 결과다. 본인인척 하는 게 어려운 회사들도 있다. 금융 관련은 주민번호 앞자리부터 입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곳들, 예를 들면 가스세, 수도세 같은 곳이나 도서관, 마트, 학원 같은 곳은 아주 쉽다. 그들은 특정 누군가가 자신들 같은 중요하지 않은 기관에서 남의 정보를 빼내려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자신의 직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이름을 알아내는 것은 의외로 꽤나 애를 먹었다. 최근 개인정보보호법이 강화되어서 관리사무소에서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게다가 상대는 우편함 사수에 공을 들였다. 새벽에 가도, 저녁에 가도, 꼭 513호만 텅 비어 있었다. 지로를 확보 못하니 이름이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도무지 어려웠다. 이름을 간신히 알게 된 건,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던 국가기관에서 운영하는 센터 덕분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름을 알게 되면 나머지는 일사천리.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그리고 그 전에 살던 집 주소, 직장 주소까지 알아냈다.
타겟, 윗집 박연 부부는 세 달 전에 이사왔다. 이사 온 첫날부터 예감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바로 세상에서 말하는 층간소음 가해자구나. 쿵쿵쿵쿵, 하는 심각한 데시벨의 발소리가 들려서 설마 거주민은 아니고 설치하러 온 사람이겠지 했다. 악을 쓰는 듯한, 남의 원한을 일부러 사고자 노력하는 듯한 커다란 발소리는 몇 시간이고 계속되어 울렸다. 지예는 견디다 못해 바깥으로 돌다가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 때도 울리고 있었다. 도대체 어느 집일까, 바깥으로 나갔다. 윗집의 전깃불이 뻔뻔할 만큼 환하게 들어와 있었다. 커튼 하나 쳐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윽고 전기가 꺼졌다. 지예는 잠시 앉아있던 놀이터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사람을 고문하던 발로 쿵쿵대는 소리는 사라져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도, 두 시간이 지나도 되돌아오지 않았다. 대충 감이 왔다. 윗집이구나.
그러나 복도식 아파트다. 시멘트는 소리 전달이 워낙 잘 되는 매체다. 엄한 사람을 잡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지예는 얼마간 더 두고 보기로 했다. 일단은 관리소에 전화해 보니 이사를 아직 안 왔고, 오늘은 이사청소를 왔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면, 본인들이 아니라 청소 업체 직원들이라서 그렇게 쾅쾅 거리며 걸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지예는 근거도 없는 어리석은 희망을 걸었다. 그리고 그것이 낙천적이었다는 것은 다음 날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아침 6시부터 청소를 다시 시작했다. 관리사무실에서 열쇠를 내 준 모양이었다. 청소만 하는 게 아니라 인테리어를 새로 다시 하는 것만 같은 소음이 정오쯤까지 계속되나 했더니, 2시까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지예는 이들이 청소를 끝내고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갔구나 했다. 그러나 2시부터 다시 오후 8시까지 발소리가 울리고, 다시 정적이었다.
그리고 약 1주일 간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흠, 뭐 괜찮지 않을까. 지예는 중얼거렸다. 나름대로 바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빠듯하게 일하는 수밖에 없다. 지예의 직업은 프리랜서 라이터. 이름은 끝내주게 쿨하지만 벌이 자체는 그닥 시원하지 않았다. 의뢰는 오후 4시가 되어서야 허겁지겁 왔고 4대보험도 없고 백그라운드도 없는 지예는 그런 의뢰를 쉽게 내칠 수 없었다. 물론 광민이 있었다. 하지만 이 집에 걸린 돈을 생각하면 광민에게만 기댈 수도 없었다. 지예도 광민도 수입은 비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