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106. 욕망의 세계


메타버스가 미래라고 합니다.




메타버스는 현실의 세계가 아닙니다. 디지털로 구현된 가상의 세계입니다. 이른바 욕망의 구현되는 세계입니다. 




철학자 자크 라캉의 욕망이론에서는 우리의 욕망으로 인해 우리는 동시에 상상계에 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상상계는 말그대로 상상하는 세계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현실의 백수는 실제 존재하지만 백수는 어느날 초라한 자신을 잊고 싶어 자신이 부자라고 상상합니다. 어느날 자신이 길을 걷는데, 여자가 나를 쳐다보는데 백수의 인식은 여자가 나에게 호감이 있어 쳐다본 것이다고 생각합니다. 착각입니다. 이때 백수는 상상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라캉에 의하면 자신을 쳐다보는 여자는 상징계의 존재입니다. 그러나 주관적인 사실은 여자가 나를 좋아한다는 상상계에서는 부자고 여자의 주목을 받는 나는 현실이 됩니다.




착각하고 상상하는 동시에 백수에게는 상상계가 현실과 함께 동시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냥 현실에서는 여자가 그냥 쳐다본 것뿐인데 말이죠. 현실의 세계에서는 그냥 여자가 나를 쳐다보는 현실의 세계가 하나 존재합니다. 아름다운 여성이 나를 쳐다본다 라는 상상의 세계가 두 개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보고, 백수의 욕망에서는 백수는 현실계가 아닌 상상계에서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백수의 욕망때문에 초라한 자신을 상상의 세계에서는 멋진 부자로 착각하게 합니다. 




라캉은 욕망의 본질은 자신이 것이 아닌 남의 것에 있다고 합니다. 욕망의 대상은 타인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타인의 것을 욕망하는 것은 현실계에서는 근본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 의해 종속되기 때문에 스스로 완벽하게 충족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상상계에서는 일반적인 관계로도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남자들이 게임에서, 여자들은 SNS에 중독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죠. 




사람들은 실제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실제 세상을 실제대로 살아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남들에게 욕망을 받고 싶어 합니다. 욕망은 부러움입니다. 즉 남에게 부러움을 사고 싶다는 그 욕망 때문입니다. 실제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찌질한 백수지만 페이스 북에서는 돈 많고 여유 있는 사람입니다.




현실이 비참할수록 점점 현실계는 잊어버리고 상상계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현실계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면 스스로 상상계로 나의 인식을 옮겨야 합니다. 메트버스의 세상은 sns와  게임에 이은 새로운 상상계입니다.




왜 미래가 메타버스에 있느냐, 현실의 양극화 때문입니다. 현실이 어려울 때일수록 돈은


돈 많은 사람들에게 가게 돼 있습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으로 더 많은 인간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고 청년들의 미래는 더욱 더 암울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선진국일 수록 이러한 양극화는 심해지고, 청년들은 스스로 메타버스, 상상계에 몰입할 수 밖에 없을것입니다. 젊은이들이 선호하면 미래 가치가 더해집니다. 기업의 주가도 오르고, 관련사업에 대한 장밋빛 예측이 가능합니다. 기성세대들은 메타버스는 하지 않습니다. 




돈많은 기업들은 미래의 수요를 보고 바로 메타버스가 미래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현실계에서는 그들에게 줄 기회는 없으니 여기에서 기회를 잡으라고 이야기 합니다. 




젊은이들의 세계는 메타버스의 세계가 현실의 세계입니다.현실이 쓰레기가 될수록 메타버스는 더 뜨는 산업이 됩니다.




그러나 언제나 상상계에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작가의 이전글 105. 메타버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