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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산여자김작가 Mar 02. 2019

아빠와 신부 입장

(feat. 김 씨 아저씨 딸)



  스물여섯 살이 되는 해, 태어나서부터 25년 동안 살던 동네를 떠나 이사를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살았던 동네라면 가끔 생각날 법도 한데 나는 그쪽으로는 오줌도 안 쌀만큼 싫어했다. 그 동네 사람들 모두가 내가 '김 씨 아저씨 딸'인 걸 알았기 때문이다. 흔하디 흔한 김 씨 아저씨가 아빠뿐인 것도 아닌데 우리 아빠는 동네에서 유명한 '김 씨 아저씨'였다. 밤낮없이 동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 빠지지 않고 그곳에 있던 아빠, 술을 너무 좋아한 아빠는 동네에서 유명한 '술쟁이 김 씨'였다. 만취해서 동네를 휘젓고 다닐 때면 어김없이 우리 집 벨소리가 울렸고 나는 술 취한 아빠를 데리고 집으로 와야 했다. 어린 마음에 그 부끄러움은 말도 못 하는 창피함으로 다가왔고 내가 김 씨 아저씨의 딸이란 사실을 아는 동네 사람들 모두가 싫었다.


 그래서 새로 이사 온 동네가 좋았다. 아무도 내가 김 씨 아저씨의 딸인 걸 알지 못했다. 어김없이 만취해서 소란을 피우던 아빠였지만 동네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몰랐기 때문에 아빠를 모른 체하고 지나갈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살 만했다. 비록 아빠를 부끄러워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김 씨 아저씨의 딸이란 사실이 나에게는 죽기보다 싫었다. 아마도 그런 아빠 때문에 나는 더 빨리 결혼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엄마의 마음도 기쁘게 하면서 합법적으로 독립하는 길은 결혼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어느새 아빠는 나이 들었고 나는 시집을 가게 되었다.


 결혼 하기 하루 전 날, 나는 아빠와 행진 연습을 했다. 평소 술 먹는 아빠에게는 냉정한 딸이라 손 잡기는커녕 말도 잘 섞지 않는 우리 부녀지간. 그래도 아빠와 함께 신부 입장은 해야 했기에 연습이 필요했다. 태어나서 아빠의 손을 처음 잡아보았다. 두툼하고 크고 거칠었다. 아빠도 멋쩍은지 잠깐 잡더니 손을 놓았다. 젊었을 때 워낙 술을 많이 먹은 탓인지 가족에게 애를 먹인 탓인지 점점 귀도 멀고 몸도 예전 같지 않은 아빠. 그래도 딸이 시집간다니 생전 처음 해보는 '신부 입장'에 긴장이 되긴 했나 보다. 담배 피우러 나가면서 혼잣말을 하는 게 귀에 들어왔다. '천천히 걷기. 드레스 밟지 않기. 천천히 걷기. 드레스 밟지 않기' 나도 아빠도 처음인 신부 입장이라 더욱 긴장되는 밤이다. 누구보다 천천히 걸으며 딸의 드레스를 밟지 않기 위해 한발 한발 내디딜 김 씨 아저씨와 딸의 '신부 입장'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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