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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Willow Jul 13. 2018

불꽃축제의 추억

반려견과 함께 한 불꽃축제 에피소드


여름 밤하늘을 수놓는 일본의 불꽃축제. 일본 각지에서 열리는 불꽃축제는 홋카이도도 예외가 아니다. 7, 8월에 걸쳐 홋카이도 전도에서 총 126번의 불꽃축제가 열리니 말이다. 최대 도시인 삿포로는 물론, 오타루, 오비히로, 하코다테 등의 유명 관광지와 내가 주로 머무는 히다카 같은 작은 마을에서도 어김없이 불꽃들이 밤하늘로 올라간다. 심지어 토야호처럼 아예 작정하고 매일 밤 쏘아 올리는 곳도 몇 군데나 있다. 불꽃들이 펑펑 소리를 낼 때마다 모여든 동네 꼬마 녀석들은 ‘타~마야~ 카~기야~’를 외치며 환호한다.


이번엔 이 불꽃축제에 관한 우리 가족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몇 해 전 8월의 화창한 어느 날, 우리는 토카치 불꽃축제를 보러 길을 나섰다. 홋카이도의 척추인 타이세츠산과 토카치 산맥 동쪽으로는 넓디넓은 평야 지대인 토카치 지역이 펼쳐진다. 불꽃축제가 열릴 오비히로帯広는 홋카이도의 곡창지대라 할 이 토카치 지역의 중심도시. 16만 명의 인구를 가진 농업도시로 농산물과 유제품들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오비히로의 북쪽에 위치한 토카치 강변에서 매년 열리는 카치마이하나비타이카이勝毎花火大会는 규모나 화려함에 있어  홋카이도 전도 뿐 아니라 전국 톱클래스를 자랑한다. 우리 가족이 지내는 히다카 시골마을에서 차를 몰고 한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곳. 남한보다 조금 작은 넓디넓은 홋카이도에서 이 정도면 사실 매우 가까운 편에 속한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피크닉매트와 밤에 추워지면 걸칠 옷가지들, 카메라를 챙겨 오비히로로 출발! 불꽃놀이 본다고 신난 꼬마 둘과 영문 모르는 곰순이도 탑승 완료.


작정하고 일찌감치 길을 나선 터라 차 세우는 게 수월할 줄 알았더니, 오비히로가 가까워올수록 몰려드는 차량의 행렬에 슬슬 걱정이 밀려들었다. 역시나 근처 주차장은 이미 모조리 만차의 빨간 사인으로 가득하다. 참 일본 사람들 부지런하기도 하다, 이 불꽃축제 장난 아닌가 보군. 걱정 반 기대반으로 두리번거리며 주차장을 찾아 헤맨 끝에 다행히 조금 떨어진 공용 주차장에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시간은 두 시간이나 남았지만 일단 슬슬 걸어가며 동네 구경이나 해보기로 했다. 불꽃축제가 열릴 강변 쪽으로 걷다 보니 마침 언덕 위 쪽에 숲이 우거진 공원(鈴蘭公園)이 보였다. 울창한 숲과 잔디밭에 놀이기구까지 갖춘 그곳에서 아이들과 곰순이와 어울려 한참을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과 개가 있는 가족에게 공원이란 참으로 오아시스 같은 존재. 토카치강과 오비히로 시의 전망을 내려보며, 저기 보이는 회장에서 바라볼 머리 위 불꽃이 얼마나 근사할까 싶어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공원 안에서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캠핑의자를 놓고 불꽃축제 관람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우연히 들어간 공원 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과 곰순


일본의 불꽃축제는 강변에서 하는 경우가 많아 사실 조금만 높은 지대에 있어도 쉽게 불꽃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눈앞에서 터지는 불꽃을 실감 나게 보고 싶다면 이왕이면 지정된 장소, 즉 회장에 가는 것이 가장 좋다. 회장 주변에 각종 맛난 먹거리를 파는 노점상을 비롯한 편의시설들이 있으니 편리하고, 축제를 한껏 즐기는 모습의 연인과 가족들과 어우러지면 한결 더 축제 분위기도 나고 말이다.

숲이 우거진 공원은 아이와 개가 있는 가족에게는 오아시스


공원 안에서 홋카이도 다람쥐들 쫓아다니며 실컷 놀다가 축제 시작 한 시간 정도를 남기고 회장으로 출발. 토카치 대교를 건너 강변에 있는 넓은 부지 안에 마련된 회장 안으로 들어가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돗자리를 펴고 자리 잡고 앉아있다. 우리도 적당한 곳에 가져온 돗자리를 깔았다. 어차피 하늘만 올려다 보면 되니 자리 경쟁할 필요도 없다. 다만 우리 집은 개가 있어 다른 사람에게 혹시라도 폐가 될까 싶어 조금 멀찌감치 앉았다. 신발을 벗고 앉으니 그제야 선선한 저녁 공기가 기분 좋게 얼굴을 스친다. 2년 전이었나, 우리가 사는 고베시의 불꽃축제 때가 떠올랐다. 그땐 지금보다도 더 어렸던 꼬마 녀석들 데리고 더운 여름밤에 땀 뻘뻘 흘리며 연신 부채질하며 불꽃이 시작되길 기다렸었지. 홋카이도는 역시 덥지 않아 참 좋구나. 어스름해진 저녁 하늘에 얼굴을 내민 별도 몇 개 반짝인다. 노점상에서 서둘러 야키소바와 닭꼬치를 사와 오던 길에 산 주먹밥과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불꽃축제가 시작되기 직전


완전히 어둠이 내리자 곧 불꽃축제가 시작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이내 회장 안은 고요해지고, 다들 설레는 마음으로 맨 첫번째로 하늘로 쏘아 올려질 불꽃을 기다리는 표정. 스마트폰과 삼각대에 걸친 카메라들도 곳곳에서 촬영 대기 중이다.


‘피융~’ 소리와 함께, 첫번째 신호탄이 하늘로 쏘아 올려졌다. 분수형의 연발탄이 그 뒤를 따르고, 곧 기다리던 색색깔의 불꽃이 하늘 높이 올라가더니 펑 터지며 공 모양으로 흩어진다.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구형 불꽃이다!


불꽃축제의 첫번째 신호탄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 발생.  이제껏 얌전히 앉아 기다리던 우리 곰순이가 심상치 않다. 펑펑 소리가 나자 극도의 긴장감을 표현하며 온 몸을 부르르 떤다. 아… 아풀싸. 천둥번개 무서워하는 아이인데 불꽃 소리가 무서운 거구나. 이제야 우리가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이제껏 불꽃놀이를 함께 참여한 적이 없어서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우리의 무신경함이란!

벌벌 떠는 아이를 아무리 달래고 쓰다듬어주고 귀를 손으로 막고 안아줘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불꽃이 터지는 소리는 천둥번개 소리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이니 말이다. 급기야 이 소리로부터 벗어나겠다고 결심했는지 곰순이는 사정없이 목줄을 끌며 도망가려고 몸부림이다. 이 상황에서는 여유있게 불꽃을 즐기기란 이미 물 건너간 듯하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내가 곰순이 데리고 일단 여기서 나갈게요.”

시작한 지 10분이 채 지났을까, 결국 남편이 곰순이를 데리고 나가기로 결심했다. 며칠을 고대하며 힘들게 먼 길 달려왔는데. 곰순이 때문에 이대로 포기하기가 너무 아쉬워 아이들과 나는 회장에 남아 일단 불꽃놀이를 계속 보기로 했다. 일어나자마자 바람처럼 내달리는 곰순이를 겨우 힘들게 쫓아가는 남편을 미안한 마음으로 배웅하며.


곰순이 때문에 정신없는 와중에 찍은 불꽃 사진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이미 불꽃축제를 즐기던 여유란 온데간데 사라지고 온통 곰순이 걱정뿐이다. 이 근방 어딜 도망가도 이 소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텐데. 녀석 얼마나 무서워하며 벌벌 떨고 있으려나. 아, 우린 정말 어떻게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질렀을까.

“엄마, 곰순이는 어디 있어요?”

“곰순이가 아까 너무 무서웠나 봐요. 나도 무서워요.”

아이들도 비슷한 마음인 듯. 이제 눈 앞에 펼쳐지는 불꽃의 장관을 즐기기는 아무래도 글른 듯 하다.

“얘들아, 우리 오늘은 그냥 곰순이 데리고 집에 가고 다음에 다시 오자, 어때?”

아이들은 다행히 순순히 그러자고, 얼른 곰순이한테 가자고 한다.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경이로운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수많은 인파와, 하늘을 수놓고 있는 화려한 불꽃들을 뒤로하고 회장을 빠져나왔다.


토카치대교를 건너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 말이, 일단 차에 탔는데, 여전히 곰순이가 부들부들 떨고 어쩔 줄 모르고 있다고. 이제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우리 가족 모두 차에 타서 한시라도 빨리 이 동네를 빠져나가는 것. 토카치대교를 아이들 손을 잡고 서둘러 건너는데, 강변 밑에 앉은 사람들 환성이 예사롭지 않다. 하늘을 올려다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불꽃이다. 커다란 공 모양의, 밝은 금빛의 촘촘한 불꽃들이 한꺼번에 터지고, 그 불꽃 하나하나가 다시 분수처럼 흘러내리는 불꽃. 아이들 손을 잡고 대교 위에 잠시 멈춰 서서 그 불꽃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려니 환희와 아쉬움이 교차한다. 근처까지 온 우리 차를 발견하고 얼른 아이들과 승차를 했다. 차에 타고 있는 곰순이는 예상대로 털을 있는 대로 세우고, 눈 흰자를 내보이며 부들부들 떨고 있다. 우리는 일초라도 빨리 이 곳을 탈출하겠다는 사명으로 전속력을 다해 차를 몰았다. 이 시간에 대로를 달리는 차는 우리밖에 없고, 이 동네 안의 모든 사람들은 정지상태로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색색깔의 아름다운 불꽃은 백미러 안에서 계속 터지더니 곧 사라져 버렸다. 펑펑 불꽃이 터지는 소리는 그로부터도 한참 더 곰순이의 털을 세웠지만 잠시 후 동네로부터 멀어지니 조금씩 가라앉았다. 부들부들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몸은 그로부터도 더 한참 뒤에야 가라앉았고.


웃지 못할 그날의 에피소드는 강렬한 기억이 되어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불꽃 터지는 소리가 곰순이에게 미칠 공포를 미리 예상 못한 우리 자신이 우스울 정도로 참 한심하고 동시에 곰순이에게 미안한 마음. 오비히로의 불꽃축제를 본 시간은 도합 20분이 되려나.  아이들 데리고 곰순이에게 서둘러 가다가 토카치 대교 위에서 올려다본 하늘 위의 불꽃. 아이러니한 것은 그 불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불꽃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그날, 다른 사람들과 회장 안에서 편안하게 봤다면 그저 평범했을 불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는 곰순이 덕분에(?) 우리는 가족 전원 불꽃축제 참가라는 호사는 좀처럼 누려보지 못하고 있다. 다음 해 홋카이도의 우리가 머무는 히다카라는 마을에서 7월 중순에 마츠리를 했는데, 그 마지막 하이라이트가 불꽃축제였다. 이번에는 당연히 현명하게도! 곰순이를 집에 놔두고 참여했다. 그리고 우리가 돌아왔을 때 발견한 것은 반쯤 부서진 현관문, 그리고 문을 긁느라 상처투성이가 된 곰순이의 앞발이었다. 그 사건의 파장과 우리 가족의 몸고생 마음고생은 지면상 생략하겠다. 그 후 우리는 불꽃축제에서 반경 10킬로 안으로는 접근을 꺼리게 되었고, 혹시라도 동네 근처에서 불꽃축제가 열릴 때에는 곰순이를 데리고 피난을 가고 있다.


곰순이가 우리에게 주는 행복은 곰순이 때문에 생기는 모든 불편을 전부 다 합쳐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크나큰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 불편의 목록 안에 설마 불꽃축제를 보기 힘들 것이라는 조항이 들어가 있을 줄이야...!


라벤다 밭에 앉아 쉬고 있는 곰순이. 표정이 깜찍하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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