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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Willow Sep 07. 2018

온천을 좋아하시나요?

일본의 온천 이야기


나는 어릴 때부터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게 정말 싫었다. 중학생 무렵까지 엄마를 따라(반강제적으로!) 동네 목욕탕에 가곤 했는데, 뜨거운 물에 들어가고 1분이 될까 말까 못 견디고 나오곤 했다. 도대체 왜 뜨거운 물에 들어가며 어른들이 ‘어우 좋다~’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는지 나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가장 고역인건 뭐니 뭐니 해도 사우나.. 왜 엄마는 굳이 어린 딸을 사우나에 데리고 들어가셔야만 했던걸까. 혼자 들어가기 심심해서? 사우나가 아이 건강을 증진시킨다는 남다른 믿음이 있어서? 말나온 김에 다음번에 꼭 엄마께 여쭤봐야겠다. 어쨌든 뜨거운 김에 숨을 쉬기도 눈을 뜨기도 힘든 사우나는 어린 내게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행의 장소였다. 엄마가 사우나와 냉탕 온탕을 바쁘게 수차례 들어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한 시간이 넘게 목욕을 즐기는 동안, 나는 집 잃은 강아지마냥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우두커니 거울 앞 의자에 앉아 물장난을 하거나 목욕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공부에 바빠 주말에도 독서실을 다닌다는 핑계로 엄마따라 목욕 가는 일에서 겨우 해방되었다. 이제 내 평생 돈 내고 목욕탕을 가나, 사우나라는데 들어가나 봐라 다짐했다.


이제 세월이 흘러 어느덧 중년, 어린 나를 데리고 다니던 엄마의 나이에 이른 나. 고백하자면 한 3~4년 전부터인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씩 사우나 냉온탕 목욕을 하지 않고서는 몸이 찌뿌둥해 견딜 수 없는 아줌마로 변신한 것은. 극적인 반전이랄까 혹은 예상 가능했던 수순이랄까. 나이와 세대에 따라 인간의 몸이 느끼고 원하는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당연한 명제를 어린 시절에는 미처 몰랐다는 것이 하나마나인 변명쯤 되겠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몸이 스르르 이완되는 느낌, 사우나에서 땀을 흘리면 몸의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  뜨거워진 몸을 냉탕에 넣을 때의 그 머리끝까지 짜릿한 시원함. 다양한 즐거움을 골고루 주는 목욕은 내 쾌감 차트의 최상위권에 진입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동네의 피트니스센타에서 간단히 운동을 마친 후 목욕을 한다. 그러나 좀 먼 곳으로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온천을 구비한 일본식 여관을 찾거나 비용상 여의치 않으면 주변에 괜찮은 온천이 있는지 여부를 가능한 꼭 확인한다. 목욕 중에서도 최고봉은 뭐니 뭐니 해도 온천욕이니 말이다. 전국 각지에 온천들이 즐비한  일본에 사는 덕에 이런저런 유명한 온천에 몸 담글 기회가 많은 건 참 감사한 일이다. 온천 딸린 여관에 가면 보통 하루에 온천을 세 번 들어간다. 저녁 먹기 전 해질 무렵 한 번, 자기 전 한번,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시 한번. 아무리 그래도 세 번은 좀 심하지 않냐고? 천만의 말씀. 이 경우는 온천이 목적이라기보다는 노천온천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매 시간 다르게 즐기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노을도 봐야 하고 별도 봐야겠고, 무엇보다 아침에 지저귀는 새소리 들으며 동트는 풍경도 봐야 하니 말이다. 온천 딸린 여관을 고를 때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노천온천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라는 것쯤은 일본 여행 좀 해본 사람이라면 알아둬야 할 상식일 것이다.


유명 온천지는 곳곳에 이렇게 족탕이 있어 춥고 고단한 여행자들을 위로해준다.


그래서 한번 알아본다. 너무 깊이는 말고 살짝만 담가보자. 일본의 온천!


예전 언제였던가 고고학적 측면에서 온천의 유래를 설명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염분 섭취를 필요로 하는 동물들이 온천물을 마시러 모여드는 것을 본 인간들이 그 동물들을 사냥하기 위해 온천 주변으로 주거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고. 이후 인간들도 온천을 즐기게 되면서 온천지가 형성되었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있다.


일본 온천의 시작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겠으나 온천욕 문화는 일본 사기에 나올 정도로 그 역사가 유구하다. 집집마다 욕조가 없어서 목욕이 일상화되기 전, 온천에 몸을 담근 뒤 피부가 좋아지고 체질이 개선되거나 상처가 빨리 아물더라는 이야기가 회자되고 실제 경험을 하면서, 주로 귀족층이나 관리들이 치료와 요양의 목적으로 온천을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딱히 온천물에 효험이 있었다기보다는 온천물 덕분에 몸이 깨끗해지니 위생상태도 개선되어 몸상태가 좋아진 때문일 테지만 말이다. 에도시대에 들어 서민들에게도 온천이 일반화되었고, 전국시대에는 서민과 사무라이들이 들어가는 온천이 구별되어 있었다 한다. 메이지 시대 이후 본격적인 온천 개발은 당시 온천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병행되었다. 전국 6개의 주요 대학에 온천 연구센터가 생겼다나 뭐라나. 그리하여 현재 일본 전국에는 3000여 개가 넘는 온천들이 성업 중이다. 즉 일본 어느 구석 동네를 가도 대부분 온천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원천의 규모가 큰 곳들 중 역사적으로 오래되고 유명 온천지로 발전한 곳을 몇 군데만 언급하자면, 카나가와현의 하코네, 오이타현의 벳푸와 유후인, 구마모토의 쿠로가와, 홋카이도의 노보리베츠 정도.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아리마 온천도 꽤나 유명한 온천으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랑한 온천이었다고. 난 왜 안 끼워주냐는 다른 수많은 온천들의 불평불만이 쇄도할 듯 하지만 시간상 패스. 일본 서점에 가면 온천 관련 가이드 책이 지역별로 숱하게 많으니 참고하시길.


그럼 온천의 종류에 대해 한 번 알아보자. 몇 가지 다른 기준에 따라 온천의 종류가 구분되곤 하는데  온천에 함유된 화학성분과 그 정도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화학성분이 많이 포함되지 않은 단순온천부터 염화물온천, 탄산수소염천, 황산염온천, 이산화탄소온천, 함철온천, 유황온천, 산성온천, 그리고 좀 무시무시한 이름의 방사능온천. 써놓고 보니 뭐랄까 온천은 곧 화학인가 싶다.


이 중 일본에 가장 흔한 온천은 염화물온천과 단순온천. 성분에 따라 효능도 제법 구분되는 편이라서, 온천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성분과 각 효능(일본에서는 온천법에 의해 ‘적응증'이라 불린다)도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 중년 이후 오십견을 비롯한 성인병 증세가 있거나 염려되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모든 온천에는 기본적으로 피부 개선 효과, 근육통, 신경통, 관절염에 대한 효능이 있는데 이에 더해 주요 성분에 따라 불리는 별칭 같은 것이 있다. 이를테면 염화물온천은 ‘상처의 온천', 탄산수소온천은 ‘아름다운 피부 온천', 이라 불리고 이산화탄소온천은 ‘심장의 온천', 함철온천은 생리장애에 효과가 있어 ‘부인의 온천', 산성온천은 ‘피부병 온천', 방사능온천은 ‘통풍 혹은 만능온천'이라 불리며 그 효능을 선전하고 있다. 일본의 온천에 가면 대부분 온천 성분표가 입구 어딘가에 걸려 있으니 한번 확인해보시길. 대부분 화학성분이 한자로 되어 있어서 일본어를 모르더라도 대강 뭐가 들었다는 건지는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효능이라는 것이 어떤 효과가 기대된다는 것이지 꼭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니니, 탄산수소온천에 갔는데 왜 피부가 아름다워지지 않나, 이산화탄소온천에 갔는데 왜 혈압이 떨어지지 않나 하고 실망하지는 마시라. 다시 강조하지만 효능이 ‘기대’될 뿐이며 그 기대치를 높이려면 수차례 혹은 정기적인 온천욕이 필요하다. 그저 이 온천은 이런 성분이군, 따습고 좋네… 하며 여행에서 쌓인 피로를 풀어내고 심신을 이완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것이 온천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너무 개성이 강하지 않은 단순온천과 염화물온천을 선호하는 편이다.


온천을 비롯한 목욕탕을 사랑해 마지않는 나이지만 만족도를 좌우하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이다.


첫째, 노천온천의 유무!  계곡, 바다, 숲을 바라보며 자연 속에서 하는 노천온천이 없는 온천이라면 나는 일단 패스하는 편이다. 특히 눈 쌓인 산과 들을 바라보며 하는 노천온천이 베스트. 일본의 동북지역과 홋카이도 지역 겨울여행의 에센스는 바로 이 눈 속에서 하는 노천온천이 아닐까 싶다.  둘째, 사우나와 냉탕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가 여부. 중년에 들어 서글프게도 체력이 약해짐을 체감하면서 사우나와 냉온탕 입욕 효과를 알게 되었다. 피곤한 하루를 보낸 날 저녁에 사우나와 냉탕을 3번씩 번갈아 하면 피로가 싹 가신다. 사우나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굳은 근육을 이완시키는 것도 필수. 첫째 둘째보다 비중은 작지만 마지막으로 생수 공급기를 구비한 온천과 목욕탕을 나는 매우 애정한다. 사우나와 온천을 하면서 수분 공급은 필수이니 말이다. 사우나와 냉탕이 생수가 구비된 탈의실 입구 근처에 나란히 있는 것이 내게 있어서는 가장 이상적인 구조라 하겠다. 이밖에 소소하지만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보는 요인이 물의 온도이다. 더운 온천은 42도, 냉탕은 18~19도인 것이 내가 느끼는 가장 만족스러운 온도다.

겨울에 눈을 바라보며 하는 노천온천은 목욕의 최고봉


여기에서 끝내기 아쉬우니, 마지막으로 일본의 온천 및 목욕탕 갈 때의 팁 혹은 매너를 소개한다.


첫째, 온천이 딸려있는 여관에 숙박하는 거라면 타월은 방에 비치되어 있으니 문제없지만, 당일치기로 온천에 가는 경우에는 타월이 필요하다. 좀 비싼 온천들은 타월을 무료로 빌려 주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입장료를 저렴하게 하면서 수건은 유료로 구입하거나 대여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비용절감을 위해서라면 일본에서 여행할 때에는 온천에 갈 상황을 대비하여 수건을 지참하고 다니는 것도 권할만하다. 렌터카가 아니라서 짐이 부담스럽다면 그냥 편한 마음으로 유료로 대여하시고~


둘째,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본인들은 온천이나 목욕탕에서 돌아다닐 때에는 대부분 작고 얇은 수건 한 장을 지참해 몸의 주요 부분을 가리고 다니고, 입욕을 할 때에만 수건을 머리에 감싸거나 어디에 올려놓고 들어간다. 이미 옷 다 벗었는데 뭘 굳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아무것도 안 걸치고 돌아다니면 놀라서 쳐다보는 일본인들 꽤 있다. 하긴 요즘엔 일본 각지에 몰려드는 중국 관광객들이 위풍당당히 맨몸으로 돌아다니며 대륙의 호방한 기질을 온천에서도 거리낌 없이 보여주고 있다 보니 이제 그러려니~ 하는 일본인들도 많은 듯 하지만 말이다. 작고 얇은 수건은 돌아다닐 때 몸을 가리는 용도,  비누칠할 때 스펀지 대용, 찬물로 씻은 후 사우나 안에서 얼굴 보호, 그리고 욕실에서 나올 때 몸의 물기를 닦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그야말로  일본 목욕의 절대 필수품이라 할 만하다. 사실 큰 수건 없어도 이 수건 한 장만 있으면 목욕이 가능하다 하겠다. 단 수건을 욕조에 담그거나 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보통 유명 온천지에서는 해당 온천명이 인쇄된 이런 수건들을 싼 값에 팔고 있으니 기념 삼아 사서 두고두고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셋째,  탕에 들어가기 전에는 몸을 잘 씻어야 하고, 머리나 몸을 비누로 씻을 때에는 의자에 앉아서, 최대한 옆사람에게 물이 튀지 않게 씻는 것이 일본식 매너이다. 이를 위해 일본인들은 대부분 샴푸를 할 때에도 얼굴을 숙이고 머리카락을 앞쪽으로 늘어트려 가능한 옆이나 뒤로 물이 튀지 않게 헹군다. 다 씻은 후에는 사용한 자리를 잘 씻고 바구니 등도 제자리에 놓아야 하는 것도 기본. 뭐 이것 역시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 모습을 빈번히 목격하곤 하지만 말이다. 익숙지 않은 매너를 지키느라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겠으나, 현지에서 통용되는 매너를 어느 정도 존중하는 것은 우리 여행자의 센스가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매너와는 상관없지만 온천 혹은 목욕으로 땀을 흘린 후에는 시원한 생맥주 한 잔! 술 권하는 얘기는 좀 그렇지만, 만약 오랜만에 온천욕을 했는데 생맥주를 생략한다면 아쉬움이 크겠다. 우리 가족이 겨울에 늘 다니는 홋카이도에 사는 친한 친구가 하는 얘기가 있다. ‘온천을 하기 위해 스키를 타고, 맥주를 마시기 위해 온천을 하는 거라네.' 그만큼 온천 후의 시원한 맥주 맛은 각별하다. 특히 생맥주 맛이 세계 최고라 할만한 일본에서라면야! 운전 등으로 맥주가 여의치 않다면 대부분의 온천 휴게실에서 파는 시원한 목장우유 한 잔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이다.



기나긴 여름이 작별을 고하고 찬바람 솔솔 불기 시작하는 계절이 멀지 않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따뜻한 노천온천에 몸 담그고 노을 바라보는 호사는 쉽지 않을지라도 동네 목욕탕 향하는 발걸음이 더욱 경쾌해지는 계절.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목욕의 즐거움을 새로이 발견하는 가을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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