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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Willow Feb 23. 2018

홋카이도 겨울축제
아이스캔들의 추억

일본 홋카이도 시무카푸 마을 축제

다카코상의 전화


“지인씨, 지금 시무카푸에 아이스캔들 출품하고 나오는 길인데, 아직까지 두명밖에 안냈더라구요. 아까운 기회이니 뭐라도 빨리 내보는게 어때요?”


따뜻한 등유난로 앞에서 늘어져 평창올림픽 중계를 보고 있던 오후 4시, 다카코상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카코상은 히다카 마을에 사는 나의 베프. 처음 히다카 마을에 이주체험 왔을때 동사무소 담당 직원의 아내로 귀한 인연을 맺은지 3년째이다.


“아 그래요? 아직 풍선이 충분히 얼지 않아서 포기하고 있던 참이에요. 어쩌나, 일단 한번 다시 확인해보고 연락드릴께요. “


어제밤에 다카코상이 삿포로의 요양기숙학교에 다니는 딸을 주말이라고 집으로 데려오는 길에 우리 집 수도를 쓰겠다고 잠시 들렀다. 옆 동네 시무카푸에서 매년 열리는 겨울축제의 일환으로 아이스캔들 대회에 응모할 작품을 만들려고 풍선을 샀는데, 자기집 수독꼭지가 너무 커서 풍선 주둥이가 안들어간다고. 온 김에 백엔샵에서 잔뜩 산 풍선을 나와 연수에게 떠넘기고 우리보고도 한번 도전해보라는 것이었다. 중학생 이상과 초등학생 부문으로 나뉘는데, 당선되면 아마존 상품권을 준다는 말에 연수는 혹하는 눈치. 응모, 추첨 이런거에 통 관심없는 나이지만, 누가 뭐 하자고 제안하면 좀처럼 거절못하는 성격 또한 나이다. 바로 크고 작은 풍선에 수돗물을 가득채워서 밤새 바깥에 놔두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확인해보니 간 밤에 기온이 올라가 반도 안 얼어있는 상황. 어떤 풍선은 여전히 물인 상태이다. 도리없다 싶어서 깨끗이 마음을 접고 개막한지 얼마 안되는 동계 올림픽 중계나 봐야겠다 하고 있는데, 그때 다카코상이 전화를 한 것이다.


아이스캔들 급조


‘그래? 두 명밖에 출품을 안했다고? 총 상금이 만오천엔이나 되는데, 그럼 그냥 내기만 해도 상금 받는거 아냐?’

갑자기 상금에 욕심이 무럭무럭. 뭔가라도 해야겠다 싶어 연수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얼라고 내놓은 풍선들 중 여전히 절반은 물인 상태이고, 다행히 나머지 절반은 풍선 가장자리가 반쯤 얼어있어서 그걸 세운 후 안에다 캔들을 놓으면 대충 아이스캔들 비스무리하게 되겠구나 싶었다. 너무 대충이고 미완성이라 좀 창피야 하겠지만 오늘은 한번 그동안 통 사용하지 않은 철판을 사용해봐야겠다.


우선 시무카푸 대회주최측에 전화를 했다. 공식적으로는 마감이 오후 4시인데 현재 시각 오후 4시 5분!


“저 마감시감을 깜빡했는데요, 4시 30분까지 가져가도 괜찮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가지고 오셔도 되요.”

중학생 이상 부문에 출품된 아이스캔들 작품들. 맨 왼쪽 상단이 내가 급조한 작품(?)

친절한 담당자의 대답을 듣자마자 빛의 속도로 옷을 갈아입고, 방구석에 늘어져 게임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을 채근하여 옷을 갈아입힌 후 차에 시동을 걸었다. 큰 풍선 2개, 작은 풍선 6개의 아이스조각들을 도대체 어떻게 배열해서 캔들처럼 만들어야 할지는 아직도 난감하지만 뭐 어떻게 되겠지.


부끄러운 얼음조각들


눈길을 뚫고 정확히 4시 30분에 시무카푸 축제에 도착, 부랴부랴 출품 등록을 했다. 일단 되든 안되든 중학생 이상과 초등학교 부문에 한 개씩 내기로 했다. 6개의 아이스조각들이 최선을 다해주길 기도하며.


“작품명도 써주시겠어요?” 담당자의 친절한 한 마디.


“아, 작품명이요? 어쩌나… 생각해오지 않았는데…”

초등학생 부문 작품들이 전시된 모습

산 너머 산이로구나. 일단 연수에게도 작품명을 생각하라는 미션을 주고 잠깐이나마 머리를 쥐어짰다.


‘둥근 모양이니까 평화의 이미지… 올림픽도 있겠다, 평화의 촛불이라 하자!’


‘Peace Candlel’이라고 써놓고 연수에게도 생각한걸 쓰라고 하자 나름 일본어로 ‘虹のろうそく(무지개 촛불)’이라고 또박또박 쓰니 담당자가 그 와중에 글씨 예쁘게 쓴다고 칭찬을 한다.


이제 제일 중요한 미션이 남았다. 차 트렁크로 다시 가서 비닐봉지에 눈을 솜처럼 만들어 채운 후 고이 가지고 온 얼음조각들을 출품장소로 가지고 왔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분명히 다카코상이 2명밖에 출품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중학생 이상 부문 6개, 초등학생 부문 9개의 너무나 근사한 아이스캔들들이 떡하니 놓여있는게 아닌가! 알고보니 나처럼 마감시간 4시를 넘어서 가져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듯. 아주 약간(이라고 하면 과장이고 좀 많이) 김이 빠지긴 했지만, 축제에 오니 맛난 것도 많고 예쁜 볼거리도 있고 집에 있는거보다 훨씬 낫네, 가족들과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건 그렇고 놓여져있는 캔들들의 수준이 장난 아니다. 알록달록 색깔을 넣은 컬러풀한 케잌 같은 캔들, 고드름을 사용한 예술감각 물씬한 캔들, 커다란 촛불을 형상화한 캔들, 눈내리는 마을을 섬세하게 미니어쳐처럼 만든 캔들… 아, 점점 마음이 어두워진다. 등록도 했으니 지금와서 그만둘 수도 없고. 서둘러서 아까 차 타고 오면서 잠깐 구상한 대로 큰 아이스 하나에 작은 아이스 3개씩을 연수와 나눠갖고, 출품대의 적당한 빈 곳을 찾아 작품전시(?)를 시작했다. 둥그런 아이스볼을 세울 받침대 따위를 가져왔을리 만무하니, 주변에 흔하디 흔한 눈을 모아 받침대를 만들어 큰 아이스볼을 먼저 올리고, 작은 아이스들로 주변을 둘러쌌다. 이미 축제는 시작되어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며 작품들을 구경하고 있는 와중에 볼품없는 작품을 눈으로 대충 받쳐놓으려니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받침대도 따로 얼려서 만들어왔구만. 아, 축제 퀄리티 내가 다 떨어뜨리는구나, 속으로 자책 아닌 자책을 하며 내것을 마무리짓고 연수쪽에 가보았다. 연수도 아니나 다를까 나처럼 비슷한 식으로 눈을 쌓아 받쳐가며 아이스볼을 올리고 있다. 그 엄마에 그 딸이구나. 사실 그 아이스조각들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긴 하겠지만. 눈치없는 민재녀석, 내가 만들어놓은 것을 보더니, “엄마, 엄마께 최고로 못생겼어요.”라고 큰 목소리로 놀리며 나의 부끄러움을 한층 배가시킨다.

시무카푸 겨울 마츠리 마스코트와 민재의 만남


시무카푸 마츠리


미션을 다 마치고 나니 비로소 축제를 즐길 기분이 생겼다. 주최측에서 만들어놓은 아이스캔들 언덕도 올라가보고, 축제 마스코트와 사진도 찍고. 히다카 초등학교 아이들 친구와 엄마들도 간혹 눈에 띄어 오랜만에 반갑게 인사하고 수다도 떨고. 출출해진 아이들을 위해 포장마차에서 파는 야키토리와 닭튀김도 맛있게 냠냠. 옆에 포장마차를 보니 사슴고기 스튜와 곰고기 슬라이스도 판다. 윽 그건 패스.

마츠리의 최고 인기코너!

아이스캔들 대회 수상자 발표는 저녁 7시 30분이라니 아직 두시간이나 남았다. 할것도 다 했으니 일단 집에 돌아갔다가 발표시간에 맞춰 다시 오기로 했다. 될 가능성이야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당선됐는데 본인이 그 자리에 없으면 주최측에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설마 말도안돼!


집에 돌아와 저녁을 차려먹은 뒤 따스한 집에 있고 싶은 귀찮은 몸을 일으켜 다카코상을 태우고 다시 축제현장으로 돌아왔다. 저녁이 되니 주최측에서 출품된 캔들들에 촛불을 하나씩 안에다가 넣어주었다. 어둠 속에서 보니까 서투른 흔적이 묻히고 촛불까지 켜니 부끄러운 내 아이스캔들 모양새가 그나마 조금 나아보인다. 작품에는 작품명만 써있고 참가자 이름은 없으니 사람들이 내가 만든건지 알리도 없고, 그것도 참 다행이군 싶다.

슬슬 발표시간이 되어 실내 발표장소로 들어갔다. 먼저 초등학생부문 발표. 10위부터 발표를 시작하더니 연수 이름이 6위로 불려졌다! 우리 딸내미는 한국에 있는 제 친구들과 집에서 마인크래프트 한다고 발표에 따라오지도 않았는데. 뭐 설마 저가 되리라고 기대도 안했겠지. 어쨋든 내가 앞으로 나가서 대리수상을 했다. 연수가 꿈에 그리던 아마존 기프트 카드 획득! 허둥지둥 난리치고 여기까지 온 바람이 있네, 흐뭇한 기분.

연수가 만든 작품. 캔들을 넣으니 과히 그럴듯 하지 않은가!

그리고 중학생 이상 부문 발표 차례. 총 10명이 참여했는데 9위부터 상을 준단다. 상을 못받을 그 유일한 사람이 나일 것임에 추호의 의심도 없다. 그래도 한사람만 못받다니 너무하네, 싶다. 7위 입상은 전년도 1위인 구루미짱 하우스의 아이코상! 그 멋진 커다란 초가 7위라니 말도 안되! 하며 상금을 받아온 아이코상에게 심심한 위로의 미소를 전해드렸다. 점점 높은 순위를 발표하더니 내 친구 다카코상 3위 낙점! 존재감 최고인 고드름 아이스캔들이 3위라니, 와 이 콘테스트 장난 아니다, 싶다. 2위는 역시나 눈내리는 마을 미니어쳐를 만든 이 동네 햄버거집 주인인 호주 총각. 그리고 대망의 1위! 아마도 캔디케잌 촛불이려니, 생각하고 있는 순간,


“1위는…..! 류, 류… 아, 이 다음 글자를 읽을 수가 없네요. 어떻게 읽어야 하는걸까요..”


발표자의 더듬거리는 ‘류’라는 이름에 호들짝 놀라며 내 귀를 의심했다. 나 말고 ‘류’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축제 참가자 중에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설마 1등일리는 없어, 라고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쭈삣쭈삣 앞으로 나갔다.  


“저기, 제가 류지인인데요, 그 이름이 맞나요?”


“아, 네 그렇네요, 류지인씨, 맞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아니,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 내가 가져온 그 얼음 조각들이 1등을 했다고?? 이건 뭔가 착오가 있는게 아닐까. 어리둥절하면서도 어쨋든 나가서 상금이 든 봉투를 받아들고 관중에게 90도로 허리굽혀 인사를 했다.

“지인씨도 출품했어요? 난 연수만 출품한 줄 알았어요!!”


옆에 있던 다카코상이 자기가 더 놀란듯이 물어본다. 그 옆의 아이코상도 깜짝 놀라긴 마찬가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어리둥절한 나를 역시 황당한 표정의 남편이 이끌고 일단 밖으로 나왔다. 다카코상도 아이코상도 얼른 가서 내 작품을 눈으로 확인해야겠다고 다 같이 출품대로 이동.


‘도대체 이게 말이 돼? 내꺼가 1등이라니 뭔가 잘못된게 틀림없어.’


모두들 눈을 크게 뜨고 내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도대체 심사위원들이 이 볼품없는 얼음조각을 왜 선택했는지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듯.


“지인씨, 자기꺼요, 앞쪽 표면에 개 모양이 있어요!”


“네? 그럴리가요. 난 풍선에서 뺀 모양 그대로 놓은건대요?”

시무카푸 아이스캔들 대회의 영예의 대상! 중앙 왼쪽의 개의 옆모습을 보라!

남편을 옆으로 밀치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세상에… 정말 캔들의 왼쪽 표면에 또렷이 매우 정교하게 개의 옆모습이 조각되어 있는 것이다! 즉, 풍선 속의 얼음이 얼은 부분이 녹으면서 우연히 개의 모양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낸 것. 아마도 심사위원들은 내가 예술적으로 그 개의 모양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고 높이 평가하여 1등상을 준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이거 참 살다보니 이런 말도 안되는 행운이 내게 오다니..!


우리 모두는 벌린 입을 멈출 수가 없었다. 주변 사람들도 내 작품(이제 작품으로 등극!)을 보더니 연신 ‘굉장해’, ‘정말 멋진걸!’이라고 감탄을 연발하고 있었다.


이 작품을 만든 것이 내가 아니라 ‘자연’임이 혹여 들통날새라 부랴부랴 다카코상을 태워서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연수는 6위를 해서 아마존 상품권을 받았다는 사실에 뛸듯이 기뻐한다.


“대망의 1위는 바로바로바로 엄마~!”


아이들 눈이 그렇게 커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말도 안돼요. 엄마꺼가 최악이었는걸요! 농담이죠?”


상금을 보여줘도 좀처럼 믿지를 않는다. 하긴 나도 못 믿겠는데. 그래도 최악이라는 말에는 좀 자존심 상하네.

봉투를 열어보니 시무카푸 마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 5천엔! 심지어 토마무 리조트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여기 머무는 겨울동안 한 끼 제대로 먹게 생겼다 싶어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아마존기프트권과 상금봉투를 들고 흐뭇한 우리!

기적같은 행운을 선사해준 하루가 저물고 있다. 개띠해에 들어온 행운, 웬지 올해는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다. 그치 곰순아? 등유난로 앞에 누워있던 곰순이가 힐끔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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