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FP아내와 ISTJ남편의 치열한 러브스토리
오늘이 챕터는 '가르치기와 배우기'
우리 부부 싸움의 가장 큰 원인이다.
<p. 132>
결혼은 라비와 커스틴에게 서로의 성격을 각별히 자세하게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그들은 서로의 잠재력을 보고 야심을 키운다.
지금은 결핍되어 있지만 지적만 해주면 발전할 수 있으리라 확신이 드는 중요한 자질들이 순간순간 눈에 보인다. 라비는 사랑하는 아내의 인격을 발전시키고자 진심으로 노력하고 있다.
하나 그가 선택한 기술이 독특하다. 커스틴을 물질주의적이라고 하고, 그녀에게 언성을 높이고, 나중에는 문 두 개를 꽝 하고 닫는다.
알랭드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내 남편은 안타깝다.
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났더라면, 남편의 가정적인 성향은 100점 남편으로 아내에게 사랑받았을 것이다.
남편을 한마디로 소개하라고 한다면 “휴가 내고 커튼 빠는 남자”라고 하면 될 것 같다.
나는 남편을 만나고 커튼이 세탁이 가능한 물건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이사 와서 창문에 걸고 나면 다시 이사 갈 때 버리는 게 커튼 아니었나.
어느 날 밤. 자려고 누었는데 방에서 좋은 향기가 솔솔 났다.
- 오빠. 어디서 계속 좋은 향이 나는 것 같아
- 아휴
- 왜?
- 커튼을 빨아도 빤 줄도 모르고
- 오늘 휴가 아니었어? 커튼을 왜 빨아?
- 커튼 빨려고 휴가 낸 거거든.
- 헐.......................... 세상에나만상에나.
남편은 게임, 운동, 술·담배, 지인들과의 모임 등등의 것들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럼 사람들이 묻는다. 그럼 너네 남편은 모해? 집안일한다. 창틀을 닦고, 세탁기를 청소하고, 화장실 청소를 2시간씩 하며, 무언가를 정리하고, 치우고..... 여기까지 얘기하면 친구들은 “부럽다”를 연발한다.
하지만.
주말 아침. 남편은 7시에 기상해서 한 번도 침대에 눕지 않고 하루 종일 부지런히 움직인다.
입과 함께, “미리야”를 수없이 부르면서, 온갖 짜증과 한숨과 함께.
나는 불금에는 함께 치맥을 먹으며 이번주 놓쳤던 예능과 드라마를 보고, 주말에는 같이 마음껏 게을렀다가 일요일쯤 그래도 다음 주를 위해 청소를 좀 해볼까~~ 하고 볼륨을 키운 음악을 들으며 같이 청소하는 삶을 꿈꿨다. 남편은 내가 안방에서 눈썹을 정리하고 거실에 나오면 바로 알아보고, 화장실에서 앞머리를 자르고 나와도 바로 알아본다. 그런 눈썰미로 집안의 온갖 일거리들을 찾아서 나와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시한다.
결혼 초는 거의 지옥과 같은 날들이었다.
매일 “미리야, 이렇게 해야지”, “미리야,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되지”, 미리야, 미리야, 미리야~~~~
처음에는 조곤조곤 말하던 말투가 점점 언성이 높아졌고, 나중에는 “내가 몇 번을 말하냐~~”라고 포효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화장실 불을 안 끄고 나온 일이, 세탁기를 돌리고 세제통을 빼서 말리지 않은 일이, 다 쓴 화장지심을 화장실에 둔 일이, 프라이팬을 예열하지 않고 바로 쓴 일이 그렇게까지 버럭버럭 화 낼 일인가...
어느 날 내가 물었다.
- 오빠. 나보다 화장지심을 더 사랑해?
- 뭔 소리야?
- 왜 화장지심 때문에 나한테 화내?
- 네가 화장지심을 화장실에 차곡차곡 모으니까 그러지.
- 화장지심이 화장실을 가득 채워서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화장지심이 샤워하는 오빠를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화장지심이 오빠 볼일 보는데 막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화장지심을 미워해?
- 미리야.... 제발...
- 오빠.... 제발...
지금 글로 쓰고 보니 너무 웃긴 대화 같지만, 그 당시 우리는 서로에게 절박했다.
아무것도 아닌 걸로 화내는 오빠를, 아무것도 아닌 걸 하지 못하는 나를 우리는 미친 듯이 미워했다.
p. 137
어느 한쪽이 교육자 같은 어조를 채택하고 있다는 징후가 포착되지 마자 상대방은 공격받고 있다고 추측하고, 그 결과 가르침에 귀를 틀어막고 제안에 빈정대기와 공격으로 응수해서 결국 허약한 ‘교육자’의 마음에 짜증과 피로감을 불러일으킨다.
- 나를 사랑한다면 왜 그냥 눈감아주지 못하는 건데?
- 당신을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기 때문이지
- 그게 어떤 방식인데?
- 당신이 몇몇 문제와 대면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게 하는 방식
- 당신이 아주 끔찍해져 간다는 걸 보여주는 방식이겠지
- 당신을 정말 사랑해. 아주 많이 사랑해
- 아주 많이 사랑해서 나를 변화시키고 싶다고? 라비, 이해하고 싶지만.....
알랭드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이 대화는 우리 부부의 대화와 똑같아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남편이 말하는 모든 잔소리와 가르치기는 너를 사랑해서, 아주 많이 사랑해서란다.
이런 게 가스라이팅이 아니고 뭐지?
네가 하는 건 다 틀리고, 내가 하는 건 다 맞아.
널 사랑해. 그러니까 내가 하라는 대로 해.
남편은 집안 청결만큼이나 건강한 음식에 목숨을 걸었다.
이것 또한 남편은 늘 우리를 사랑해서라고 말했다.
우리는 남편이 허락하는 날만 외식을 하고, 라면을 먹고, 치킨을 먹을 수 있다. 남편과 하루 종일 함께 하는 날은 커피를 한 잔도 마실 수 없고, 치킨을 먹은 후 서비스로 오는 콜라 1캔으로 4명이 나눠먹는다. 과자는 일주일에 1번 장 보는 날 마트에서 1개씩만 살 수 있었다.
이 얘기를 들은 친구가 물었다.
"그냥 먹으면 되잖아.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너를 감금하는 것도 아니고, 지천에 널린 게 식당인데 그냥 가서 사 먹으면 되잖아."
그러니까 그 쉬운 걸 우리는 못했으니 이것이 진정한 가스라이팅 아닌가.
라면이, 콜라가, 인스턴트와 배달음식이 우리 몸에 얼마나 안 좋은지 매일 세뇌당했다.
10살 딸아이가 징징되면 ‘의사들이 절대 먹지 않는 음식 10가지’, ‘사람을 빨리 죽게 하는 음식 10가지’ 이런 동영상을 보여준다. 물론 그런 음식들이 몸에 좋지 않은 것은 알고 있고, 나는 라면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가 먹고 싶지 않은 것과 남편이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은 다르다. 독단적으로 강요하는 것과 함께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P. 131
사랑하는 사람을 ‘가르친다’는 개념은 건방지고 부적합하고 몹시 해롭게 느껴진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또는 그녀가 변화하기 바란다는 말은 꺼낼 수 없다. 진실한 사랑은 파트너의 존재를 온전히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알랭드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결혼 생활 내내 지속된 남편의 가르치기는 생활 전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치관, 나의 성향, 나의 꿈꾸기 능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남편의 꿈은 오로지 가정의 경제적 향상과 딸들의 든든한 경제적 후원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돈을 벌고, 저축하는 것 외에 다른 불필요한 지출은 삼가야 한다고 했다. 너의 꿈은 그만 꾸라고, 네가 하고 싶은 목록은 그만 만들라고, 너만 생각하는 행동은 그만하고 엄마로 살라고 말했다.
남편의 말이 맞다. 남편 덕분에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경기도에 매일 집값이 오르는 30평대 브랜드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 그 집은 반짝반짝 빛났고, 창틀에 먼지 하나 없이, 화장실에 물 때 하나 없이 깨끗하고 깔끔했다.
얼마 전, 둘째가 “엄마, 우리 집은 전세야? 자가야?”라고 물었고, “00네 아파트랑 우리 아파트 중에 어디가 더 비싸?”라고 물었다.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들었어?라고 물으니, 친구들끼리 서로 얘기했다고 한다.
"너희 아파트는 얼마야? 자가야 전세야? 너네 아빠 차는 뭐야?"
나는 초 3 아이들끼리 이런 대화를 나눴다는 것에 경악했지만 아이의 그 질문에 “네 친구들 집 중에 우리 집이 제일 비싸. 자신감을 가져”라고 당당하게 대답해 준 후 남편은 나를 보란 듯이 쳐다봤다.
남편의 기준에 나는 부동산, 주식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알뜰살뜰하게 살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서 매일 쓸데도 없는 책을 읽고, 쓸데없는 노트와 펜을 사며, 남들은 묵묵히 참고 일하는 직장을 행복하지 않다는 이유로 퇴사한 쓸데없는 인간인 것이다.
주변사람들에게 고민 상담을 하고 나면 친구들도 남편 말이 맞다고 했고, 엄마도 남편 뜻을 따르라고 했다.
남편만 믿고, 남편이 하라는 대로 살면 건강하게, 등 따습게, 편하게 살 수 있는데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냐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그래, 맞아. 감사하며 살자"로 남편의 조건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또 그렇게 살았다.
만약 당신이 어릴 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책을 찾아 읽었다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지성인이다. 그 지성 때문에 당신도 나름의 방식으로 자유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싸워왔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성.
더 나은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을 멈추지 않는 지성
지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지만 지성에 대한 추구는 타고나는 것이 분명하다.
이 망할 지성.
오소희 < 그 언니의 방 뉴스레터> 중에서
고 3. 친구들이 쉴 틈 없이 공부하던 그 시기에 조정래 선생님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다 읽었다.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의 야유를 받으면서, 자율학습시간 선생님 몰래 책과 책 사이에 숨겨가면서, 기숙사 이불속 손전등 불빛 아래서 그렇게 그 어려운 책을 읽었다.
그래서 생겼나. 이 망할 지성이.
“그래, 맞아. 감사하며 살자”하고 살다가도 갑자기 화딱지가 난다.
“왜? 왜? 내가 틀린 건데? 왜 나처럼 살면 안 되는 건데? 왜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건데?”
그러다가 또다시 현실에 안주하며 남편과의 공감되지 않은 정서적 관계를 ISTJ 그 잡채와의 재밌는 일화로 SNS에 풀어내면서 살아내지만 가끔 외롭고, 자주 슬프다. 아직 내 인생은 젊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나는 노트랑 펜도 내 마음대로 사지 못하고, 이대로 남편의 삶의 기준으로 이번 생은 마감하는 건가.
때때로 결혼생활이란, ‘통하지 않음’으로 인해 함께 있는 것이 혼자 있는 것보다 더 외롭다.
함께 있는 것이 ‘잘못된 선택’으로 여겨지는 순간, 마치 ‘잘못된 인생’을 사는 것 같은 자책에 빠진다.
내 방식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 감정의 방으로 들어와 어지럽힐 권한을 주어선 안 된다.
어릴 때 이걸 몰라서 부모에게 그럴 권한을 온전히 주었고 자주 상처 입었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나의 행복을 번번이 쉽게 무너뜨리는 이 남자는 내 감정의 방 밖에 두는 게 옳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
긴 산행을 함께 하고, 같은 욕조에 발가벗고 들어앉아도, 그저 소통을 한 번 더 시도하고 차이를 존중할 수 있을 뿐이다.
외로워도 괜찮아.
너에겐 너 자신이 있잖아.
부부는 잠깐 불이 켜지는 공존의 순간을 긁어모으는 것이다.
오소희 < 그 언니의 방 뉴스레터> 중에서
남편에게 진지하게 이혼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당신이 키워도 좋으니, 제발 나만 보내달라고. 당신의 세상에서 나가고 싶다고.
나는 그만큼 절박했다.
하지만 결국 이혼하지 못했다. 남편이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아직도 사랑이 담겨 있고, 내 손을 잡는 그의 손은 늘 따뜻하고, 나를 품에 안을 때 그는 진심으로 행복해하니까.
그는 그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아니까. 그리고 그의 방식이 싫지만, 너무 싫지만 가끔은 ISTJ 그 잡채씨로 퉁치면서 웃을 수 있을 만큼 나도 그를 사랑한다고 믿으니까.
큰 아이는 우리의 사랑을 이렇게 말했다.
“엄마아빠는 여우와 두루미의 사랑 같아”
P. 139
그들은 가르치고 배우는 기술을 완전히 터득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여러 해에 걸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겸손함을 일깨우는 지각변동 같은 국면은 맞이하면서 아내에 대한 라비의 비판 의식은 둔감해진다. 그 과정에서 그는 다른 사실도 새로이 깨닫는다. 부동산 시장에서 절묘한 호기를 만나 그들은 밝고 편안한 집을 아주 좋은 가격에 구입하고, 재정협상가로서의 커스틴을 보며 자신이 돈 관리를 저렇게 잘하는 여자와 결혼했다니 넘치도록 운이 좋다고 결론짓는다.
커스틴은 그녀의 장점에 내재한 약점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라는 걸 이제 라비도 알게 된다. 일단 새 집으로 이사한 후로 라비는 약점이 특별히 부각될 때에도 그러한 장점을 절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알랭드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신혼 초, 고작 다 쓴 휴지심 때문에 서로를 공격하고, 미친 듯이 싸웠던 시간들을 지나 결혼 14년 차가 된 지금 우리는, 한 발 물러서는 법도 배우고, 가르치는 기술도 배워서.......... 라기보다는 포기와 포기와 포기를 거듭하여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고 건드리면 안 되는 구역 설정도 된 상태이다. 이제 그는 창틀과 커튼과 먼지를 내려놓았다. 주말이면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보고 깔깔거릴 줄도 알고, 주말 아침 1끼는 라면을 먹기도 한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만나 자신이 얼마나 억압된 세상에서 살았는지 알아가며 마라탕과 불닭과 콜라와 과자의 세계에서 마음껏 타락하는 중이다.
남편이 숙직을 하는 날이면 우리 셋의 용돈을 긁어모아 치킨과 1인 1캔의 콜라를 사 먹기도 하고, 작년 어린이날에는 무려 과자 1박스를 아이들에게 어린이날 선물로 쾌척했다.(물론 짜잔~ 한 이후 남편이 그 과자들을 집안 곳곳에 숨겨놔서 매일 보물찾기 하는 기분으로 행복하게(?) 살긴 했지만)
여전히 남편은 나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지만 나는 열심히 노트와 펜을 사고, 내 꿈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지금, 현재를 즐기면서 살아도 인생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어깨에 조금만 힘을 빼고, 꽉 쥔 그 주먹을 조금만 풀고 같이 손을 잡고 걸어도 우린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남편을 설득하려면 그 방법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여야 한다.
그게 무슨 방법인지 지금은 모르겠지만 내가 늘 그렇든, 그냥 한다.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 무엇 중에 하나였고,
아직 책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아직 우리의 이야기도 끝나지 않았으니까 방법은 있을 것이다.
온 우주가 나를 돕고 있고, 행복은 나를 편애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