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언급 드리고 마치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이 어려워하고 실망감을 느끼는 부분 중 하나인데요. 부푼 마음을 갖고 시작했던 초반과 다르게 플래너를 펼치는 수도 점점 줄어가고 호기롭게 잡았던 목표들도 달성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마음을 먹고 어떤 대처를 하면 좋을지 언급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플래너를 써온 지 어느새 15년이 되었습니다. 쓰는 목적과 방법도 많이 변화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기록의 양입니다. 초반 다이어리를 보면 중고로 팔아도 될 정도로 새것 같습니다. 이것이 내 한 해 동안의 플래너가 맞나 싶을 정도죠. 그렇게 3~4권 정도를 거의 새 제품으로 방치하다가 5년 차가 되어서야 그나마 조금씩 쓰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이런저런 기록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지요. 뭐든 처음 시작하면, 그 일이 아주 생소한 것이라면 더더욱 걸음마 시기가 오래갑니다. 클라이밍을 배워본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홀드를 잡고 있는 근육인 전완근이 어느 정도 발달되고 손바닥의 굳은살이 자리 잡히기 전까지는 초라한 초보 시절을 겪어야 합니다. 그 문턱을 넘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지요. 체크 리스트 작성도 이와 같습니다. 이런 기록을 해본 적 없는 이들에게 한없이 어색하고 불편한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익숙해지는 문턱에 다다르는 순간부터 여러분의 시간은 여러분의 뜻대로 요리되기 시작합니다. 플래너의 페이지가 텅 비었더라도 너무 실망하거나 자괴하지 말고 좋아하는 스티커나 마구잡이 그림을 그려 넣으면서 다시 다음 주부터 시도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언젠가 머리보다 손이 먼저 작성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고, 매일 체크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목표 달성으로 이어지는 힘이 생길 것이라 확신합니다.
지금까지 목표와 계획을 실컷 잡아놓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시간 관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실행을 하다 보니 어떤 목표를 달성했을 때 오는 성취감보다는 그 일을 열심히 진행한 하루하루가 더 즐거운 일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어떤 목적을 위해 꽁냥꽁냥 뭔가를 해본다는 그 시간 자체가 저에게 행복감을 준다는 것이지요. 그 매일의 즐거움에 젖어 지속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목표가 달성되는 것은 커다란 덤이고요. 예를 들면 책 50권 읽기가 목표였는데 올해 목표를 실패하여 10권 밖에 읽지 못했다고 칩시다. 이게 정말 실패일까요? 이런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면 아마 한 권도 채 읽지 못했을 겁니다. 설령 너무나 게을러서 한 권도 읽지 못했다고 가정해볼게요. 이것도 실패일까요? 적어도 '나는 정말 책 읽기를 싫어하는구나. 다른 방향으로 지식을 쌓아야겠다.'라는 소중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해보려는 작은 시도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만 알면 됩니다. 그렇게 맞춰가는 한 조각의 퍼즐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 퍼즐을 다 맞췄냐 못 맞췄냐가 성패의 척도가 될 수 없습니다. 실망하지 마시고 시도하세요
제가 준비한 모든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가능한 효율적이고 실용적으로 가이드북을 구성해보았는데 제 의도가 잘 전달이 되었을지 궁금해집니다. 내용 중에도 언급했지만 시작하는 추진력만 가이드 할 뿐 앞으로 노를 어떻게 저어가야 할지 어느 방향으로 키를 잡아야 할지는 자기 고민과 시도가 수반 되어야 하는 영역입니다. 사용하는 사람만큼 방법의 가짓수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나름의 방법과 노하우를 발전시켜 나가며 앞으로의 시간이 큰 의미와 행복으로 가득 차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