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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한 Feb 07. 2022

여행 사진보다 여행 그림이 좋다

여행을 기록하는 방법

어느새 여행이라는 단어가 생경합니다.

낯선 곳에 나를 떨어뜨리는 느낌이 좋아서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시간이 허락할때마다 떠나곤 했는데,


코로나의 영향으로 외출을 자제하려다보니

자연스레 여행과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되려 다녀왔던 여행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여행의 기록을 들추며 여행지의 냄새와 맛을 떠올립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다양한 기록 중에 특히 “그림”이 남기는 여운이 진했기 때문입니다.

귀찮고 번거롭지만 그림은 여행을 오롯이 담습니다.


그림 같던 바다를 그림으로



책을 따라 한자 한자 옮겨적는 필사가 아주 느린 독서법이라면

그림은 매우 세밀한 관찰법입니다.

눈으로 보고 ‘아 예쁘네’ 하는 것과 그것의 커다란 모양과 세부적인 형태를 종이에 옮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입니다.


여행의 발길을 잠시 멈추어야 하지만

예쁜 것이 왜 예쁜지 알게 되는 과정이며,

예쁨 속의 애절함, 서글픔을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여행의 풍경, 사람, 먹거리가 담긴 그림은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담아냅니다.

간편하게 찰칵 찍어낸 사진엔 내가 미쳐 발견하지 못한 것들도 선명하게 담아내지만

그림은 내가 담고자 했던 경험 그대로를 담습니다.


보령에 있던 막걸리 공장을 개조해 만든 "천북양조장카페"




그래서 여행 그림은 직접 그려야 합니다.

남이 그린 여행스케치는 여행했던 곳일지라도 솜씨 좋게 옮겨 놓은 사진과 다름 없습니다.

잘 그린 그림, 멋진 풍경일지라도 그곳에 ‘나’는 없습니다.


냄새맡고 쓰다듬고 거닐었던 곳을 내가 직접 담아야

그림을 볼때 시공간이 뒤틀립니다. 

나를 빠뜨리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피렌체 두오모에서



저는 여행을 떠날 때 스케치 도구를 꼭 챙깁니다.

여유가 있다면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을

바쁜 일정이 예상된다면 작은 드로잉북과 펜이라도 준비합니다.


거창하고 멋진 기록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되뇌입니다.

실은 여행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때에는 

‘이런걸 그려서 뭐하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길을 걷다 보이는 소화전을 그리거나

여행지에서 먹고 있는 (어디에나 있는) 빅맥을 그리고 있으면 

이게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




여행지 숙소의 창문
충남 서산의 "삼원레저타운" 캠핑장



그런데 지나고나면 포기하지 않는 내 자신을 칭찬하게 됩니다.

어디서나 보이는 똑같은 나무를 그렸더라도

그 곳에서 그린 ‘그 나무’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릴때에는 알 수 없었던 특별함이

시간의 옷을 입고 반짝하며 빛납니다. 



마음껏 여행다니며 잉크가 떨어지는지 모르고 그림 그렸던 시간이 그립습니다.

무언가를 빼앗긴다는 것은 고마움을 상기하라는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어디든 훌쩍 떠날 수 있는 그날이 오면

다 같이 그림그리러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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