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첫인상
모스크바에서의 첫날 밤. 밤 9시가 넘자 하늘에 붉은 기가 어리기 시작한다. 체감은 이제 한 7시나 됐나 싶은데,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여행가기 전에는 9시 이후에는 위험하니까 다니지 말자 생각했었는데, 9시가 넘어도 사방이 환하다 보니 슬금슬금 용기가 솟아 야간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다행히 어둡지 않은 도시의 번화가여서 우리 말고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저녁같은 밤을 즐기고 있었다.
6월은 백야의 계절이라서 해가 진 모스크바의 하늘은 아직도 짙은 남색의 기운이 남아있었다. 한가로운 토요일 저녁의 공원. 곳곳에 다정한 연인으로 가득하다. 모스크바는 사랑의 도시다.
알렉산드로브스키의 공원의 연인들을 시작으로 모스크바를 여행하는 내내 다정한 연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어쩐지 모스크바 사람들은 딱딱하고 무뚝뚝할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가서보니 사랑꾼이 넘치는 사랑의 도시였다.
곳곳에서 마주친 연인들과 함께 거리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핑크 꽃나무들도 이런 모스크바의 첫인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처음에는 정말 꽃나무인가, 러시아는 벚꽃(혹은 복숭아꽃? 매화라기엔 넘 늦은 시기인 거 같고)이 6월에 피나하고 신기했는데, 자세히 보니 투명한 조명으로 가지를 엮고, 분홍색 천으로 꽃잎을 표현한 인조 조형물이다. 러시아 월드컵 직전이라 이렇게 한 건가?하고 의문스러웠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이런 조형물이 별로 없었던 것을 보면 모스크바만 이렇게 장식하는 것 같다. 그러고보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연인들을 본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건물만 놓고보면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더 예뻤던 거 같은데, 상트페테르부르크보다 모스크바의 이미지가 더 강렬하다.
다 같은 분홍색 인조꽃이지만 거리의 꽃은 겹벚꽃같고, 귬 백화점의 꽃은 매화나, 복숭아꽃같다. 비가 오는 날의 사진조차 파란 하늘이 보이는 거리 한가득 벚꽃이 만개한 듯 화사하다.
러시아 사람들은 정말 꽃을 좋아하나보다. 야외 테라스들은 색색의 수국으로 장식해서 화사하고도 생기가 넘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훌쩍 내려간 기온탓에 도톰한 코트를 입은 멋진 여자분이 탐스러운 작약을 한 송이 안고 지나가는 장면을 보았는데, 참 인상적이었다.
이런 생화 장식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여행했던 6월 초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라일락의 계절이어서 (계절이 좀 늦긴한 거 같다) 라일락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