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하는 데 쏟는 에너지를 ‘분노는 나의 힘’으로 전환하며
‘인간(忍姦)관계 트릴로지- 프롤로그: 안티프래질’에 이어...
인간관계로 인해 상처를 입거나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흔히 하는 조언이 있다. ‘그런 사람은 그만 잊어라’, ‘인간관계에 미련 두지 마라’, ‘사람에게 기대하지 말아라. 사람 쉽게 안 변한다’ 같은 조언들이다.
이런 조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관계에 상처받고 힘겨워 하는 사람들은 주변 어디에나 있다. 이 조언들이 틀린 말이기 때문일까? 아니다. 단순히 잊어버리고 말기엔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이 조언은 상대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인간관계를 맺었거나, 좋은 사람인 것 같아 마음을 다했지만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조언은 아니다.
아쉬움, 미련, 섭섭함은 당연히 생기기 마련이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을 새기느라 다시 한 번 참아내고, 인내심을 발휘하기 위해 내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차라리 안티프래질을 활용해보는 편이 낫다. ‘분노는 나의 힘’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 역시 인간관계로 인해 힘든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섭섭한 마음과 미련으로 발목잡혀 있기보다는 이 감정을 털어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를 서운하게 한 대상자에게 그 감정을 직접 표출할 생각은 없다. 단지 그 감정을 내 삶의 동력이자 에너지원으로 삼으려 하는 것이다.
인간관계는 총 네 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괜찮다고 생각했고, 만나고 교류해보니 실제로 괜찮은 사람이다. 내 인생의 귀인같은 존재다. 또, 첫 인상은 별로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괜찮은 사람도 있다. 이 두 유형의 사람들은 끝까지 함께해야 할 사람이다.
그 다음으로는 별로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별로인 사람이다. 이 유형은 가까워지지도 않을 확률이 높고, 앞으로도 그냥 거리를 두면 된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유형은 바로 괜찮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마음을 다했지만 별로인 사람이다. 내게 상처를 주는 유형이다. 바로 이 유형에 안티프래질을 적용해야 한다.
퇴사를 하고 제 2의 인생을 열면서 인간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퇴사를 하면서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 즉 남들이 내게 부탁해올 수 있는 있는 위치에서 그렇지 못한 위치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큰 회사에 있다 홀로서기를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간관계가 리셋되었다. 리셋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지만, 내 예상을 빗나가 당황했고 상처도 받았다.
‘이 사람과는 이제 끝이겠구나’ 생각했는데 오히려 끈끈해진 경우도 있었다. 퇴사 소식도, 출간 소식도 전하지 않았는데 격려 메시지를 보내주고, 책을 사서 읽고 소감을 이야기해 준 사람들. 정말 고맙고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을 대하던 내 자신도 돌아보게 되었다.
반대로 ‘이 사람은 퇴사와 관계없이 오래가겠다’고 생각했지만 내 예상을 빗나간 사람들도 있었다. 업무 관계로 만난 A. 괜찮은 사람일 것 같아 그가 휴직했을 때 먼저 다가가 격려도 하고, 퇴사 문제로 고민하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입장이 뒤바뀌어 내가 퇴사를 했고 A는 새로운 직장을 찾았다. 기쁜 마음에 출간한 책을 선물하고 싶어 직접 구매를 해서 약속을 잡았다. 나, A, 그리고 우리가 속해있던 모임의 또 다른 멤버인 B와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하지만 약속 당일 A는 그 날 만나기로 한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래도 약속을 아예 잊어버릴 사정이 있겠거니 하며 이해했다. 추후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그나마 이 약속도 B가 잡아 만났다.
이후 두 번째 책이 나오고 다시 A, B와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A는 개인 사정을 이야기하며 모임 직전에 약속을 펑크냈다. 그래서 난 만나기로 한 다음날 A의 집 근처까지 찾아가 내돈내산한 새 책을 선물했다.
하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 A는 미안함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감사의 인사를 건네지도 않았다. ‘내가 펑크냈으니 조만간 다시 약속을 잡자’는 연락을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약속이야 펑크낼 수 있고 미룰 수도 있다. 하지만 A를 두고 두 번이나 이런 일이 발생했고, 약속을 펑크낸 사람이 사과나 추후 약속을 잡지 않는 모습을 보고 A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게 되었다.
약속은 인간 관계의 척도다. 시간 약속 지키지 않는 사람, 돈 관련된 약속 지키지 않는 사람을 멀리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도 아니다. A와의 약속은 ‘약은 사람에게 속은 것’의 줄임말이었다.
더 이상 A와의 관계에 매달리지 않기로 했다. ‘나는 어려울 때 너를 보듬었는데 너는 내게 이렇게 하는구나’ 따위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기로 했다. 과감하게 A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타인을 아프게 하는 A의 말과 행동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도록 바람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그래서일까. 이미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A의 행보에 제동이 걸린 일이 있었다. 내가 신고한 건 아니었지만, 편법으로 무엇을 운영하던 A의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사람 마음을 다 거기서 거기인가보다. 그렇게 인간관계 안티프래질이 잘 작동되고 있음에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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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忍姦)관계 트릴로지- 2. 붕우유신 혹은 붕우웅신’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