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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xperiencer May 31. 2023

한 번에 성취할 수 있는 일은 없다 02

대학 생활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

궁금했다. 대학교 선배들도 그렇고 전공 교수님도 그렇고 처음부터 도자기 전공을 하고 싶으셨던 것일까? 그래서 전공을 한 번에 결정하고 공부하셨던 걸까? 지금 돌이켜 보면 졸업한 동기들, 선배들 대부분 중 전공을 살려 도자기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는 첫 순간, 오랜 고민 끝에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겠다고 나선 후배를 응원해 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당시는 어른 같았던 선배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나와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선배들에 대한 미움은 많이 가셨지만, 어른으로서 전공을 찾겠다는 제자를 응원하진 못할지언정 사회생활의 쓴맛을 미리 알려준 전공 교수님들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비단 도자기 전공 교수님들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3학년 1학기 첫 복수전공 수업인 시각디자인 수업에서 타과생 들은 알아서 수업을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대놓고 말하는 교수님도 있었으니깐… 아직도 의문이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던 걸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가야겠다는 생각보다 일단 꿋꿋이 들어야겠단 오기가 생겼다.

졸업을 위해선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전공 수업 대부분에서 외부인 취급이 느껴졌고 수업 자체도 익숙지 않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뭘까를 생각했던 것 같다. 2년간 뒤처진 전공 지식을 따라갈 수도 없었고, 그래픽 디자인이나 포토샵 등 스킬에 뒤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냥 꾸준히 했다. 서점에 가서 전공 서적을 닥치는 대로 샀다. 책을 읽는다고 이해가 가진 않았지만 무작정 읽었다. 하지만 읽는다고 디자인 감각이 절로 생겨나는 건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디자인 감각이 생겨나는지도 몰랐던 때라 과제 비평 시간만 되면 날리는 페이퍼들을 봐야 했다. 사실 비평 수업에서 ‘비평’을 받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니깐.

하지만 ‘왜’라는 이유 없이 다시 해 오라며 화이트보드 판에 붙여진 내 과제가 바닥으로 날리는 것을 보는 것은 두려웠다.


한 번은 과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 상태에서 급하게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2시간 만에 한 적이 있는데 보드에 붙이기 두려웠지만 매도 빨리 맞자는 마음으로 제일 먼저 붙이고 혼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있다가 정말 처음으로 교수님께 칭찬받은 적이 있다. 틀에서 벗어났다나? 솔직히 아직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기분은 좋았다. 그 수업에서 유일하게 패스하여 나 빼고 나머지는 다음 주까지 다시 해오라는 과제를 받았다.

근데 그다음 주가 문제였다. 나는 통과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총 30명이 듣는 수업에서 전주에 내가 해간 과제의 30가지 버전이 보드에 붙여져 있는 것을 봤다.

디자인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다. 그때 혼자 깨달았던 것 같다. 디자인할 때 잘한 디자인 못한 디자인을 판단 내리는 기준은 디자이너의 의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도가 없는 디자인이 과연 ’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뒤로 그래픽 디자인, 편집 디자인 수업을 들을 때마다 의문이 많이 들었다. 읽히지 않는 그래픽 디자인을 해가면 잘했다고 하고 정자로 읽히는 디자인을 하면 혼나는 상황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 기본 디자인 규칙에서 응용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응용해야 할지 감이 없었다. 너무 불친절한 강의였다.

그렇게 시각 디자인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그래픽 디자인과 편집 디자인에서 흥미를 잃어갔다. 그래도 나름 노력을 한 게 졸업 후에도 그래픽 디자인 아카데미를 찾아 강의를 따로 들었다. 그리고 그 강의가 더 유익했다.


그나마 잘 맞았던 강의가 일러스트와 뉴미디어 강의였다. 일러스트는 스토리텔링을 해서 ‘왜’라는 이유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게 맞았고 뉴미디어는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에 적합한 앱을 차근차근 기획하는 점에서 나와 맞았다. 이해가 가니 재미가 있었고 더 열심히 했다. 비평받아도 이해가 가니 수업도 재미있었다. 열심히 했던 것과 반비례로 평가를 좋게 받지 못했던 이전 수업들과 비교해서 생산적인 강의였었다. 당연히 평가도 좋게 받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평가를 좋게 받았던 건 아니다.

한 번에 성공하는 법은 없다고 중간평가에서 두 강의 모두 안 좋은 평가를 받아 중간에 진행하던 프로젝트 자체를 갈아엎어야 했던 적도 있었다. 이때 졸업 여부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프로젝트여서 중간 평가 이후 약 한 달 동안 하루 3시간만 자고 다시 만들었다. 그래서 다행히 마지막 평가에선 최고 점수를 받고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한 달 동안 엄청나게 고생했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이때 나한테 맞는 전공을 찾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문제는 졸업한 한기 앞둔 시점이었다는 거다. 졸업할 때쯤에야 나에게 맞는 전공을 찾다니…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라도 찾아서.


하지만 이제야 찾은 적성을 제대로 공부하지도 못하고 졸업하기엔 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이런 어설픈 상황에서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래서 오랜 고민 끝에 대학원을 가기로 결심한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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