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에 관한 글을 쓰면서 고교 시절 배웠던 문학을 잠깐 언급했다. 문학은 되바라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그 말이 정답처럼 느껴져서 한없이 주눅 들곤 했다. 그래서 대학에 진학하고는 한동안 소설을 쓰지 않았다. 다시 소설을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윤 교수님이 학보사 주간으로 부임하면서였다. 내가 쓴 문화 기사를 읽고 그는 소설은 왜 안 쓰느냐고 물었다. 소설을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처음에는 자신이 없었다. 소설을 안 쓴 지도 오래됐고, 전공 특성상 번역본을 많이 읽어 번역 투가 습관처럼 나왔다. 그래도 공강 시간마다 도서관 창가 자리에 앉아 쓰고 싶은 말들을 다 쓰다 보니 어느덧 원고지 90매가 넘었다. 아마 고교 시절에 이런 소설을 썼다면 “자의식 과잉”이라는 평을 들었을 거였다. 윤 교수님도 비슷하게 평가하지 않을까, 이런 걸 소설이라고 평을 부탁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윤 교수님은 악평보다 좋은 말을 많이 해주셨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내 소설은 누구 보여주기 부끄러울 수준이 맞다. 그런데도 그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일지, 때때로 그 마음을 생각해본다. 문학은 이래야 해, 저래야 해 하는 세간의 평가와 말들에 갇혀 있는 청년이 안타까웠던 건 아닐지. 어떤 까닭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문학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이런 글도 있고 저런 글도 있는데, 꼭 모든 글이 비틀리고 되바라질 필요는 없다는 것. 정직한 문장도 충분히 매력 있다는 것. 이런 깨달음은 이래라저래라 하는 주변의 말들에 흔들리지 않고 ‘나의 글’을 쓸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아, 그 후로 문창과 친구에게 들은 비하인드 스토리. 윤 교수님은 타과생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호평만 한다고 한다. 문창과로 전과하게 한 다음, 막상 전과하면 신랄하게 비평해주신다는데… 그가 직접 말한 것은 아니므로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문창과로 전과 안 해서 다행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