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스타터 레터 #9
“다리를 넘기라고요?”
처음 카운터 밸런스를 배웠을 때 멋진 동작을 배운다는 기대감보다 두려움이 컸다.
“손을 떼도 정말로 균형이 유지가 된다고요?”
두 다리로 온전히 지탱하지 않고, 한쪽 다리를 반대편으로 넘긴 채 균형을 유지하며 한 손을 다른 홀드로 옮겨야 했다. 선생님은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떨어져도 매트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어금니를 악물고 스스로 다독였다. 너무 오래 매달려 있어 전완근이 팽팽해졌다. 힘이 더 빠지기 전에 해보자. 용기를 내서 오른손을 놓았다. 왼팔이 축이 되어 버텨주었고, 반대편으로 넘긴 다리가 무게 중심을 맞춰주었다.
흠, 걱정했던 것보다 괜찮은걸? 카운터 밸런스가 안정적인 자세임을 몸소 겪고 나니 비로소 안심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종종 카운터 밸런스 문제를 풀 때마다 남아있는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스스로 균형감각이 꽝이라는 사실을 잘 알아서 그런지 더욱 무서웠다.
슬랩벽에서 손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균형감각만으로 발을 옮겨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릎을 조금 더 바깥쪽으로 보내야 한다는데, 그러면 뒤로 나자빠질 것 같았다. 실제로도 자꾸만 몸이 뒤로 쏠렸다. 너무 긴장한 탓에 무릎을 보내면서 엉덩이도 뒤로 빠진 탓이겠지만, 홀드를 밟고 서 있으면 엉덩이가 뒤로 빠지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순간순간이 카운터 밸런스
균형감각을 믿고 밸런스를 유지하는 일은 꽤나 어려워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모든 일이 그랬다.
2022년은 유난히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웠던 시기였다.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돈독하다고 생각한 관계가 쉽게 틀어졌다. 억지로 관계의 균형을 유지해보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흔들리는 건 나였다.
우습게도 이런 때에 힘이 되어주는 존재 역시 사람이었다. 옒한테 농담처럼 “내가 잘못 살아왔나 봐~”라고 푸념했는데 돌아온 대답이 뜻밖이었다. 평소에 옒과 이런 진지한 대화는 잘 안 해서 더욱 의외의 인사이트를 주는 메시지였다. 알코올 없이 오글거리는 대화를 맨정신에 했다는 것도 신기할 따름. 아무튼 멋져 보이게 조금 다듬어보면 대충 이런 말이었다.
“서른 무렵에 인간관계가 한 번 정리된다고들 하잖아. 내가 좋아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한테 더 집중하라고 알아서 떨어져 나가는 건가 봐.”
옒의 말이 맞았다. 정말 소중한 사람들에게만 집중해도 늘 시간이 부족했다. 항상 가까이 있어서 더 소홀해지는 가족들부터, 보고 싶어도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못 만나는 친구들, 삶이라는 항해에 나침반이 되어준 고마운 사람들. 그들과 함께하기에도 벅찼다.
어쩌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지킬 수 없는, 원래부터 망가질 얄팍한 관계에 신경 쓰느라 소중한 인연들을 돌아보지 못했는지도 몰랐다. 안간힘을 쓰고 버티느라고 전완근이 팽팽해지는지도 모른 채 지난 1년을 보내왔는지도.
인간관계는 사실 순간순간이 카운터 밸런스였나?
손을 떼도 균형은 유지되지만 나를 믿고 손을 떼기엔 용기가 필요한.
뜬금없지만,
한 가지 고백하자면, 캐럴이 흐르는 연말인 만큼은 유쾌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시기가 시기인지라 자연스럽게 지난 1년을 돌아보다 보니 또 무거운 글을 쓰고야 말았다. 재치 있는 글쓰기야말로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운 과제인 것 같다. 너무 가벼우면 그냥 웃긴 글이 되고, 잘 쓰려고 힘주면 노잼 글이 되고. 재미있으면서 적당히 의미도 있는 글을 쓰기란…
“힘을 빼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요?”
무슨 일이든 균형을 맞추기가 너무 어렵다.
슬로우스타터 레터를 구독하고 싶다면?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87584
지난 슬로우스타터 레터를 보고 싶다면?
https://page.stibee.com/archives/1875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