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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느 Jan 04. 2023

새해엔 나도 토끼처럼 날랜 클라이머?

슬로우스타터레터 #11

부상으로 무산된 새해 운동 버킷리스트


연말이 되면 내년엔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계획을 세우곤 한다. 작년엔 ‘클미새(클라이밍에 미친 새럼)’라고 불릴 정도로 클라이밍을 열심히 했던지라 2023년은 ‘어려운 문제를 토끼처럼 가뿐하게 푸는 클라이머’를 목표로 삼았다. 가볍고 날랜 몸놀림을 위해 체지방을 얼마나 감량하고, 부족한 체력을 어떻게 증진할지 등등 계획을 잔뜩 세워뒀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부상이 찾아왔다.


한 달 전, 친구와 암장에서 만난 날이었다. 일정이 맞지 않아 엇갈리다가 모처럼 함께 운동해 무척 들뜬 상태였다. 사고는 항상 방심한 틈을 타 일어난다고. 몇몇 문제를 푼 뒤 슬랩 벽(70~80도 정도의 약한 경사가 있어 몸을 벽에 밀착해 푸는 문제가 많다)에 있을 때였다.


처음 시작할 때 손 홀드는 있는데 발 홀드는 없는 문제였다. 벽에 발을 밀면서 문제풀이를 시작하는데 엉뚱한 곳을 디뎠는지 충격이 왔고, 고스란히 무릎까지 전해졌다. 결국 십자인대를 다치고 말았다. 파열까지 이르진 않았지만, 두세 달 정도 운동하지 말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한동안 보조장치의 신세를 졌다


집 밖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니 생각만 많아졌다. 여기에 연말의 분위기가 더해지자 2022년은 곱씹을수록 지난한 해였다고 느껴졌다. 이것저것 시도하고 도전했지만, 실패를 유독 많이 겪었다.


클라이밍도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실력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이제 부상으로 운동 수행 능력이 더 떨어질 것이 분명하니 더욱 속상했다. 새해 계획이 다 어그러진 것 같아 서러웠다. 내가 쉬는 만큼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운동해서 성장할 텐데. 괜한 질투심과 열등감이 엉킨 못난 생각까지 하고 말았다.



토끼 ‘같은’이 아닌, ‘작년보다 더 나은 나’가 되자!


그런 우울한 생각을 잠재워준 책이 있다. 설인하 작가의 <일단 한번 매달려보겠습니다​>. 클라이머의 에세이였다. 무료함을 달래려고 찾은 책이었는데 운동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돌아본 것은 물론, ‘나’를 생각하는 시간까지 보낼 수 있었다. 가장 마음에 와닿은 부분을 소개해본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어려운 문제를 거뜬히 풀어냈는지가 아니다. 클라이밍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은 실력이 늘 제자리걸음인 것처럼 보여도 꾸준히, 안전하게 이 운동을 오래오래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 다치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책을 덮고서 핸드폰에 저장된 클라이밍 영상을 찾아봤다. 1월부터 12월까지. 시간의 흐름 순으로 살펴보고 나서야 속상한 마음,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게 됐다. 내 실력은 항상 제자리걸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상 속의 나는 차근차근 성장하고 있었다. 1월은 대부분의 자세가 엉거주춤하고 불안정했는데, 5월엔 볼더링 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나아졌다(비록 초급 부문이지만). 10월은 리드 클라이밍에 도전하며 높이의 두려움을 극복한 모습이 엿보였다.


처음 시작할 땐 엄두도 못낸 ‘싸이퍼’, ‘힐훅’도 곧잘 해내게 됐다


문득 부끄러워졌다. 다른 운동보다 클라이밍을 더욱 좋아하는 이유로 ‘벽에 붙을 때만큼은 온전히 내게 집중할 수 있어서’라고 했으면서. 어느 순간 타인의 잽싼 몸놀림과 멋진 동작을 좇고 있었다. 십수 년간, 수십 시간 그들이 쌓은 것을 단기간에 가지려는 욕심을 부렸다. 욕심은 아침저녁으로 무리하게 운동하는 과정을 거치게 했고, 결국 부상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다이어리를 펼쳤다. 연말에 적어둔 운동 버킷리스트를 볼펜으로 죽죽 그어 지웠다. 그 밑에 책의 문장을 써 내려갔다. 그다음에 새로운 버킷리스트를 적었다. 새해에는 타인과 나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보다 작년의 나 - 올해의 나를 두고, 객관적으로 보며 성장을 위해 골몰하길 바라면서.


1. 클라이밍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기

2. 작년보다 더 나아지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무리하지 말고 꾸준히만 하기

3. 정말로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기. 2022년 연말의 일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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