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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Dec 11. 2023

클라이밍하러 일본까지 간다고?

슬스레터 #17


지난 레터에서 [클라이밍 압수당하고 몰클하게 된 썰]을 보내고 친구에게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정말 역대급 스케일이긴 했다. 꼭 몰래 클라이밍을 하러 일본까지 가서 그런 건 아니고, 오직 취미를 위해 비행기를 타는 일 자체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이번 여행은 클라이밍을 빼면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수영도 있긴 했는데 크게 기대되는 일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영하러 다시 도쿄에 가고 싶을 만큼 좋았다. 클라이밍 레터니까 수영 후기는 생략하겠다.)


굳이 클라이밍을 하러 일본까지 간 이유는 단순하다. ‘B-PUMP 오기쿠보’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서울볼더스에서 강습을 들으며 강사님들로부터 “오기쿠보 문제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서볼 문제도 맛있기로는 여느 암장에 뒤처지지 않는데 일본은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어려워서 못 풀더라도 한 번쯤은 붙어보고 싶었다. 역대급 몰클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맥도날드 건물에 암장 있어요...!



오기쿠보 찾아가는 법

: 갑자기 분위기 맥도날드


사실 오기쿠보는 도쿄 중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데다가 관광지로 알려진 곳은 아니라서 아마도 클라이밍이 아니었더라면 방문하지 않았을 지역이었다. 그래도 숙소가 있는 신주쿠에서 10~20분 안에 갈 수 있어 부담스러운 거리는 아니었다. 우리는 도쿄 메트로 패스를 이용해 마루노우치선을 타고 오기쿠보역에 내렸다.


오기쿠보역 서쪽 출구로 나와 JR 역사를 통과해 나가니 맥도날드 건물이 바로 보였다. ‘갑.분.맥?’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바로 그 건물 3층에 B-PUMP 오기쿠보가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짧은 시간 동안 어찌나 설레던지. 한국이 아닌 나라에서 처음 해보는 클라이밍이었다. 두근두근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드디어 B-PUMP에 입성했다.



B-PUMP 오기쿠보 내



오기쿠보 즐기는 법 1

: 회원 등록비 본전 뽑기


일본 암장은 한국과 다르게 회원 등록비를 따로 받는다. 강습을 듣지 않아도 첫 방문 시에 꼭 등록비를 내야 하는데 B-PUMP는 부가세 포함 2,200엔이었다. 게다가 이용료는 별도여서,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한화로 대략 4만 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B-BUMP 오기쿠보 이용 요금 ⓒB-PUMP 오기쿠보 홈페이지



주섬주섬 동전을 꺼내면서 ‘일본 암장을 한 번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등록비가 아까워서라도 두 번은 경험해야겠다’로 바뀌었다. 회원 등록비를 받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재방문하게 만드는 고도의 마케팅인가 싶은 합리적 의심도 들었다.


한국 일일 이용료의 거의 2배를 냈더니 뜻밖의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평소에는 최대한 오래 루트파인딩 하고, 설렁설렁 문제 풀고, 다른 클라이머들 무브 감상만 해도 2~3시간이면 지치곤 했다. 그런데 이날은 ‘돈값 해야 한다’는 의지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모든 벽에 한 번씩은 다 붙어봐야겠다며 아득바득 문제를 풀었다. 혹시 클태기를 시름시름 앓고 있는 클라이머가 있다면 일본 암장에서 금융 치료를 받아보기를 권한다.



오기쿠보에서의 즐거운 클라이밍 타임



오기쿠보 즐기는 법 2

: 아쉬움 남기기


그래서 정말 B-PUMP 오기쿠보는 맛있었냐고? 그렇다. 분명히 루트파인딩 할 때는 쉽게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붙어보면 ‘어라?’ 싶은 문제도 있었고, 내가 가진 힘과 기술을 모두 써도 풀리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기본기가 없으면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게다가 미끄러운 홀드가 꽤 많았는데 아무리 초크 가루를 닦아내고, 스미어링*을 해도 발이 터졌다. 생각한 대로 되지 않으니 평소보다 더 집중력이 많이 필요했다. 그런데도 척척 풀어내는 저마다 다른 국적의 클라이머들을 보며 감탄하기도 했다.


*스미어링: 마찰력으로 밀착시키기 위해 발을 홀드나 벽에 문지르는 기술.



B-PUMP 회원 카드



풀 수 있는 난이도의 문제에는 다 한 번씩 붙어보고 난 뒤 발길을 돌리면서, 맛있는 문제를 차려줘도 떠먹지 못하는 나 자신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더 성장해서 또 오고 싶다는 열정도 커졌다. 나가는 길에 회원 카드가 발급돼 수령했는데, 무언가 알 수 없는 뿌듯함도 느꼈다. 클라이밍 버킷리스트를 하나 해결했기 때문일까?



아무튼 클라이밍을 마친 후 일정은 츠타야 다이칸야마에 가는 길에 ‘말차 아이스크림을 먹기’였는데, 깜빡하는 바람에 못 먹었다. 아무래도 여러모로 너무 아쉬워서 다시 도쿄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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