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책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본능적으로 어깨 근육이 긴장됨을 느낀다.
한자의 어원을 찾아도 그리 유쾌한 구석은 없다.
꾸짖을 책(責)에 맡길 임(任).
누군가에게 추궁당할 것을 전제로 무거운 짐을 짊어진 듯하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책임이란 보이지 않기에 피할 수 없는 숙제 같은 단어였다.
잘 해내야 본전이고, 못하면 오롯이 내 탓이 되는 아픈 무게였다.
직장 생활을 하며 이른바 '맨땅에 헤딩'하듯 일을 배우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나에게 책임은 '보고'와 '경계'라는 이름의 구속이었다.
내가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는지, 어디서부터 선을 넘는 것인지
매번 살피고 물어야 했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비슷했다.
부모라는 책임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끊임없이 동의를 구하고 조율해야 하는
인내의 과정이었다.
그때는 그 과정들이 나를 옭아매는 사슬처럼 느껴져 답답했다.
그런데 최근 이 단어를 가만히 들여보다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책임이란 어쩌면 무거운 짐이 아니라,
내가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자유의 반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게 바라보니, 나를 가두는 벽이 아니라
내가 안전하게 서 있을 수 있는 '내 영토'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내가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 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그 경계 안에서만큼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뜻대로 움직여도 좋다는 뜻이기도 했다.
책임은 나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발을 딛고 선 지면의 단단함을 확인시켜 준다.
맨바닥에 헤딩을 하더라도, 그것이 내 책임 하에 있는 일이라면
적어도 그 판의 그림만큼은 내 마음대로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아주 작은 범위일지라도 말이다.
물론, 여전히 책임이라는 단어는 쉽지 않다.
예상치 못한 결과 앞에 서야 할 때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이 두려움을 조금 다르게 해석하려고 한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세상이 나에게 "당신은 이 정도를 감당할 능력이 있다"라고 믿어준다는 뜻이며,
나 또한 자신을 그만큼 신뢰한다는 증거일 테니까.
결국 책임을 진다는 것은 거창한 희생이 아니라,
내 삶의 영토를 하나씩 확인해 나가는 담담한 모험이다.
오늘 내가 짊어진 무게는 나를 짓누르는 짐이 아니라,
거센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는 중심추일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을 짚어본다.
그리고 이만큼이 내 땅이구나 이 안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도 되겠구나라며
책임은 그렇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나에게 자유를 허락하고 있었다.
[이 편이 남기는 정리]
책임이란 나를 짓누르는 '짐'이 아니라,
내가 주인으로서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영토'를 확인하는 일이다.
[이 편이 남기는 질문]
오늘 당신의 어깨를 누르는 그 무게는,
사실 당신이 이만큼이나 단단한 땅을 가졌다는 증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