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태어나서 처음 내뱉은 말이 완벽한 문장이었던 사람은 없다.
처음 뗀 발걸음이 흔들림이 없던 이가 세상에 존재할까?
우리는 모두 수만 번의 엉덩방아와 뭉개진 발음을 '데이터'로 쌓으며 오늘에 도착했다.
생각해 보면 실패는 인간이 세상에 나와 가장 먼저 배운,
그리고 가장 능숙하게 구사했던 첫 번째 언어였다.
실패의 사전적 정의는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함'이다.
이 문장에는 감정이 없다. 그저 현상을 설명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 '그르쳤다'거나 '끝났다'는 해석을 덧씌우며 스스로를 주저앉힌다.
이제 나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브런치에서 첫 글을 쓴 지 522일이 지났다.
누군가에게 구독자 1,000명은 금방 넘어서는 고지일지 모르나,
나에게는 여전히 아득한 숫자다. 숫자로만 보면 나는 실패한 작가일지도 모른다.
이 사실을 마주할 때면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고,
며칠씩 글쓰기 창을 열지 못한 채 '일시 정지' 상태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몇 개월 간 글을 올리지 못한 채 그만두기를 고민하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질문 던져 본다.
그 숫자가 정말 '나'의 실패를 증명하는가?
지난 17개월 동안 나는 184편의 글을 썼다. 평균 3일에 한 편인 꼴이다.
내가 글을 쓴 목적은 매일 글을 올리는 화려한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해'와 '치유'였다.
180번이 넘는 시간 동안 나를 대면하고 내 안의 무언가를 글로 풀어낸 기록들.
이 밀도 높은 시간을 실패라는 단어 하나로 퉁치기엔,
내 손가락 밑에서 하얗게 벗겨진 자판의 글자들이 너무도 서럽다.
실패라는 한자의 의미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실(失)은 손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모습이고, 패(敗)는 솥이 깨지는 모습에서 왔다.
손에서 놓치고, 소중한 것이 깨지는 순간은 분명 아프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손을 비워야 새로운 것을 쥘 수 있고,
낡은 그릇이 깨져야 그 틀을 벗어난 더 큰 그릇을 빚을 수 있다.
알을 깨야 새가 태어나듯,
우리가 계획했던 '작은 성공'이 깨질 때 비로소 생각지도 못한 '큰 성장'의 공간이 생긴다.
시도해서 얻은 결과가 애초의 계획과 다르더라도,
그것이 목적지로 가는 경로를 수정해 주는 재료가 된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조정'이다.
나는 여전히 매일 실패한다.
다이어트 다짐을 허무하게 무너뜨리고, 사소한 일에 감정을 낭비한다.
실패는 몇 번을 겪어도 무덤덤해지지 않는다. 아픈 건 여전히 아픈 거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는 오늘도 깨진 조각들을 주워 담아 문장을 만든다.
성공이 '도착'이라면 실패는 '과정' 그 자체다.
17개월 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오늘도 기꺼이, 아주 정성스럽게 실패하는 중이다.
[ 이 편이 남기는 정리 ]
완성이라는 1에 닿지 못했더라도 그 사이를 메운 무수한 시도들이
결국 나라는 사람의 가장 단단한 밀도가 된다.
[ 이 편이 남기는 질 ]
숫자가 증명하지 못한 당신의 시간 속에는,
어떤 치열하고 아름다운 기록들이 숨겨져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