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기다림이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어쩌면'이라는 막연한 가능성이
'오늘'이라는 선명한 현실로 도착하기까지 소요되는 시차라고 정의하고 싶다.
우리가 살아가며 수많은 단어를 배우고 또 잊지만,
'기다림'이라는 단어만큼은 미련하게 쥐고 있다.
이 단어는 내게 양날의 검과도 같다.
특히나 서툴렀던, 나의 20대에게 기다림은 유일한 구원이었다.
그저 이 어두운 터널이 끝나기를,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웅크린 채 견뎠을 뿐이다.
그 시절 나를 지탱하게 한 것은 '얼마만큼의 시간'이라는 막연한 '어쩌면'이었다.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
나는 그 말이 무책임한 방관처럼 느껴졌다.
고통은 현재 진행 중인데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이라니...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년이 된 지금 돌아본 과거는 그 말이 맞았음을 깨닫는다.
날카로웠던 통증은 무뎌졌고 죽을 것 같던 슬픔도 결국 희미해져 사라졌다.
물론 그 '사라짐'이 다시 나를 슬프게 한다.
시간이 지나 괜찮아졌다는 말은,
결국 그 시간을 짜 맞추던 감정과 인연의 조각들까지 함께 마모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조각난 인연들 속에서 나라는 사람의 기억조차 온전치 못한 것을 발견할 때,
나는 기다림의 잔인함을 바라본다.
기다림은 상처를 치유하지만, 동시에 그 상처가 나의 뜨거웠던 순간을 앗아간다.
망각을 대가로 얻은 과거는 늘 쓸쓸한 뒷맛을 남긴다.
지금 우리는 기다림이 멸종된 시기를 지나고 있다.
손가락 하나로 짧은 숏츠를 넘기며 찰나의 자극에 빠지고,
인공지능은 질문을 다 하기도 전에 답을 내놓는다.
모든 것이 효율과 속도로 계산되는 세상에서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은 퇴화한 꼬리뼈처럼 취급받는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 보자.
세상의 모든 귀한 것들 중 기다림 없이 완성되는 것이 있던가.
갓 딴 과일의 떫은맛을 지워내고 깊은 풍미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어둠 속에서 묵묵히 익어가는 '숙성의 시간'이 필수적이다.
기다림은 단순히 멈춰있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치열한 내면의 동적인 시간이다.
그 인고의 시간이 생략된다면, 삶은 그저 인스턴트처럼 가볍고 얄팍해질 터.
20여 년 전 빛나던 나의 청춘이 잘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너무 빠른 속도에 익숙해진 나머지 삶을 충분히 숙성시키지 못하고
소비해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마다의 멋이 있는 계절 중에서 내가 유독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는
가을이야말로 '기다림의 본질'을 잘 행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가을은 화려했던 여름의 성장을 멈추고,
자신을 비워내며 겨울이라는 긴 기다림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잎을 떨어뜨리는 것은 포기가 아닌,
다음 봄이라는 '오늘'을 맞이하기 위한 전략적이고도 아름다운 인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린 데이터일 뿐이고,
미래는 아직 도착하지 않는 가설에 불과하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있는 곳은 오직 '오늘'이라는 현재뿐이다.
그리고 그 오늘을 온전한 나의 것으로 맞이하기 위해 기다림은 필연적이다.
씨앗을 심자마자 열매를 바라는 조급함은 오늘을 망치지만,
숙성의 시간을 믿는 마음은 오늘을 풍요롭게 만든다.
오늘 아침, 거울 앞에서 문득 사무치는 청춘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때 조금만 더 잘할 걸, 조금 더 용기 낼 걸 하는 후회와 미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제는 중년이 된 나이에 여전히 청춘을 그리워하면서도
거스를 수 없는 노화의 흔적이 하나 둘 드러난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그리움을 아이들의 얼굴에서 찾기로 했다.
내 무대와 다르게 나의 아이들이 맞이할 저마다의 청춘을 기꺼이 손뼉 쳐줄 차례다.
서툰 아이들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는
그 지루하고도 찬란한 기다림의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
그것은 지금 나에게 주어진 또 다른 숭고한 기다림이다.
나의 노년에는 떫은맛이 빠져나가고 오직 깊고 평온한 맛이 남기를.
모든 기다림에는 반드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그 기다림의 가치를 스스로 저버리지 않는다면,
그 소중한 희망을 조급함이라는 손길로 꺾어버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지금 나와 그대가 견디고 있는 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시차는.
사실 나와 그대라는 존재가 가장 깊은 맛을 내기 위해 꼭 필요한 숙성의 과정이다.
그 시간을 믿고 묵묵히 걸어간다면,
나와 그리고 그대가 간절히 바랐던 그 모든 '어쩌면'은
반드시 눈부시게 찬란한 '오늘'의 모습으로 당신 앞에 도착할 것이다.
우리 그저, 조금 너그럽게 잘 익어가자.
[이 편이 남기는 정리]
기다림의 가치를 꺾어버리지 않는다면, 모든 기다림은 반드시 찬란한 '오늘'로 보답받는다.
[이 편이 남기는 질문]
"오늘 당신의 손에 쥐어진 일상은,
과거의 당신이 그토록 간절히 기다렸던 어떤 '어쩌면'의 결과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