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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Dec 19. 2023

내가 도망친 이유

4번의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시간만큼 흘러온 사회생활 속에서 정말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들을 만나며 악인열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거짓말만 하는 사람, 도덕심이 없는 사람, 아는 게 없는 사람, 책임지지 않는 사람, 떠넘기는 사람, 비겁한 사람, 야비한 사람, 강약약강인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중에서 으뜸을 찾자면 뭐니 뭐니 해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니 악행이 악행인지, 주접이 주접인지, 망신이 망신인지 모르고 그냥 막 내지르다 보니 피해 범위 예측은커녕 수습이란 개념도 없다. 그래서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모르고 추악한 모습을 신나게 보이고 다닌다. 부끄러움을 모르니 도덕도 없고, 양심도 없고, 반성도 없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 스스로에게 주문하는 것은 바로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되자는 것.


많은 퇴사의 변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나다웠다고 생각했던 퇴사, 회사로부터의 도망침은 부끄러움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이토록 부끄러움에 대한 앎을 갈구하게 한 것은 P 었다.


그간 내가 만난 여럿의 부끄러움 모르는 사람 가운데서도 으뜸은 P였다. 최고였다.


P는 모든 남자 직원을 '이성'으로 대했다. 상사, 동료, 부하, 협력사 가리지 않았다. 놀라웠다. 아무리 자신감도 매력이라지만 옆에서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할 정도로 공감을 받기 어려운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며 소싯적 연애 좀 해본 사람이면 거짓말임을 일언지하에 알 수 있는 개연성 부족한 연애 무용담을 기세등등하게 떠벌리던 P는 성희롱의 대가이기도 했는데, 상대는 성별을 가리지 않았다. 젠더갈등이란 애초에 P에게 존재하지 않는, 어쩌면 젠더의 벽을 뛰어 넘는 진정한 자유주의자이자 성평등자였다.


회사란 신성한 노동의 장이며, 무릇 회사란 옛날로 치면 논과 밭이거늘 같이 노동하는 일꾼끼리 무슨 추파를 던지고 연정을 품냐며 남사스럽다고 손사래 치던 나와 달리 P는 모던을 넘어 리버럴이었다.


P는 특히 돈문제에서 부끄러움이 없었는데, 출장 준비를 이유로 법인카드로 캐리어 구입 후, 혹여나 회사 내 공간이 부족할까 염려되어 본인의 집에 캐리어를 보관하기도 했다. 회사에 두었다가 그저 먼지만 쌓여 결국 비싼 돈 주고 사서 모셔만 놓게 될 것을 대비한 심히 사려 깊은 사람이기도 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회사 행사에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본인의 프리젠테이션 시간을 끼워넣더니, 행사날 입을 정장까지 직접 스타일링하여 명품 옷을 백화점에서 구입했다. 결제는 물론 법인카드였으며 섬세한 보관, 엄격한 관리를 위해 구입한 옷은 집으로 가져갔다. 스타일링부터, 구매, 후속 관리까지. 회사 돈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것이 골수까지 박혀 있는 나로서는 감히 범접 못할 호연지기였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P가 가장 두드러졌던 부분은 바로 진실을 찾을 수 없던, 허위와 부풀림으로 점철된 자기 브랜딩 분야였다. 함께 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본인의 전 회사 명함이라며 내민 그것은 너무나 조악한 인쇄가 인상적이었다. 현금보유가 어마어마한 것으로 유명한 그곳에서 저렇게 저품질 명함을 쓴다는 것이 믿기 어려웠는데, P를 만났던 회사를 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P의 전직장 재직자로부터 건네어 받은 명함은 완전히 다른 디자인과 재질의 것이었다. 보통 경력을 속이더라도 명함까지 제작해서 굳이 전 직장 명함이라며 보여줄 것 같지는 않은데 치밀하려다 만 그 얕은수에 혀를 내둘렀다. 완벽을 연기하지만 영민함의 부족으로 다 드러내 보이고 마는 인간미. 휴머니스트였다.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은 그 어떤 예상 가능한 망신에도 거뜬없는, 저돌적인 강인함이 되기도 한다. P는 본인을 언론보도로 띄워야겠다며 매체 인터뷰를 따올 것을 지시했고, 역량도 카리스마도 없는 P를 대체 어느 매체에 내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오래된 인연의 홍보대행사 담당자에게 거듭된 애걸과 복걸을 한 끝에 결국 꽤나 이름 있는 경제지의 인터뷰 진행 약속이 잡혔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기자의 방문은 일어나지 않았다.


절절매듯 부탁한 가운데 성사된 인터뷰인지라 연결해 준 홍보대행사 담당자에게 재촉할 수도 없는데 P에게 인터뷰가 잡혔다고 보고는 한 상황인지 어찌해야 하나 싶어 발을 동동 구르던 차에, 우연히 퇴근길에서 인터뷰를 성사시켜 준 담당자를 만났고 인사를 나누며 자연스레 물었다.


이번에 잡아준 인터뷰~ 나 엄청 기대하고 있잖아요. 잘 되가죠?

웃으며 편하게 던지듯 묻는 내 질문에 담당자의 표정이 굳었다.


인터뷰는 이미 물 건너간 것 같은데, 표정이 심상찮았다.


사실은.. 저도 물어 불게 있어요.


인터뷰를 진행하겠다고 한 기자에게 P의 프로필을 건네며 인터뷰 방향과 기대하는 바를 설명했고 기자도 긍정적으로, 나름 훈훈하게 커뮤니케이션이 되었는데 얼마 후 확인차 연락해 보니 대뜸 언짢아했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P 경력 진짜냐며, 다녔던 회사에 기자의 가까운 사람이 출입해서 간단히 레퍼런스 체크하니 그런 사람은 없었다고 하더라며, 다닌 것 맞냐며, 다녔으면 이 포지션은 맞냐며.


나 역시 함께 일하며 P가 경력에 비해 너무나 업무 지식이 전무해서 놀랄 때가 적잖이 있었지만, 이렇게 불시에 팩트체크를 난사하다니.


부끄러움은 정말 누구의 몫이란 말인가?


그렇게 P는 내게 부끄러움을 대형 쓰레기봉투에 담은 폐기물처럼 계속 내던졌고, 나는 그 폐기물 더미 속에서 점점 질식해 갔다.


P와의 이별을 위해 퇴사 의사를 밝힐 때 나는 그렇게 말했다.


'제가 뭘 하는지 모르겠어서요.'


나는 많이 부끄러웠다.


P의 무지, 무능력, 비열함, 부도덕.


그것에 서사를 부여하며 돈을 버는 나.


악취 그 자체의 것들에 옷을 입히고 향수를 뿌려 그럴싸하게 만들어 내는 반복의 노동 속에서 내가 이러려고 여태 아득바득 살아왔는가에 대한 근본적 번민에 휩싸였다.


그리고 꽤 긴 시간을 들여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서성이고 주저앉고 때로 침잠했다. 그러다 결국은 마주했다.


나는 그래도, 조금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었다. 앞으로도 부끄러움을 알며 살고 싶었다.


그래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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