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지 못해 미안해!
제대로 된 정규직 첫 직장이었던 마케팅 대행사는 2인 대표 체제였는데 한분은 맞춤법을 담당하고 계셨고 한분은 자연인 같은 외모의 소유자로 늘 오후 4시에 출근하면서도 신기하게 일거리를 만들어오는, 비즈니스를 한다는 게 일종의 기행처럼 보이는 분이었다.
나는 바른 국어사용의 자세를 강조하는 분과 일했는데 우연히 슬쩍 보게 된 그분의 노트북에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폴더가 있었다.
그 안에 대체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 혹여나 그 안의 항목으로 나중에 문제제기할까 싶어 근로자에게 계약서 1부를 주지 않던 분이었으니 남의 개인정보쯤은 개인 컴퓨터에 아무렇지 않게 저장해 두고 수시로 보며 이토록 위대한 본인과 일하는 엄청난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저주를 땔감 삼아 자의식 과잉의 발전기를 돌리지 않으셨을까 예상해 본다.
니는 그곳에서 3년 차 되던 해 퇴사했다.
고객사에서 나를 콕 집어 일을 맡기고 싶다고 하였다. 얼떨결에 원래 속해 있던 팀에서 독립하여 1인 팀이 되었고 기존 팀에서 하던 일은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출근하면 일베, 게드립닷컴, 디씨 등만 주야장천 보던 팀장이 맡게 되었는데, 이 계기로 특정 지역, 외모 하급, 술상무 노릇으로 비비는 능력만 있는 남자에 대한 확고한 편견이 생겨 버렸다. 인간이 어디까지 치졸해질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경험했다.
업무 하는 바로 내 옆에서 큰 소리로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냐며 버럭거리거나 직원들 식사하는 탕비실에서 이건 자기 일이 아니라며, 광광거리는 포효를 지치지도 않는지 참 잘했다.
그와 어울리던 떨거지들 역시도 더 이상 내게 말을 시키지 않으며 공식적 왕따가 됐는데 오히려 편했다.
더 이상 뒤치다꺼리도, 뭐 하나 건지는 것 없는 회의에 참여해 시답잖은 얘기나 하며 야근하지 않아도 되었고 친해질 마음도 없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지 않아도 되니, 왕따 시켜 주어 땡큐!!!
단발로 끝날 줄 알았던 프로젝트는 성과가 나쁘지 않아 한 번 더 진행됐고, 두 번째 프로젝트가 끝나는 날 퇴사했다.
맞춤법, 띄어쓰기 강조와 함께 대기업 고객사의 담당자는 너보다 우수할 확률이 매우 높으니 생각을 설득할 생각은 애초에 접으라며 자존심과 자존감 파괴가 담당 업무이던 대표와도 그렇게 굿바이.
그곳을 떠난 결정적 이유는 놀고먹으며 괴롭히던 팀장도, 맞춤법 하나 틀리면 초등학교는 나온 거냐며, 듣보잡 학교 출신인 거 티 내냐며 힐난하던 맞춤법 무한애정 사장도 아니었다.
철저한 을의 자세로 살아야 하는 대행사 생활은 애초 나의 피와 맞지 않았다.
고객사 미팅을 하며 이 마케팅 프로젝트로 얼마나 매출 기여되고 있는지를 물었다.
프로젝트는 정말 흥하고 있지만 아직 매출에는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고객사 답이 있었고 미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맞춤법 사장이 말했다.
그딴 질문 하지 말 것.
고객사가 망하든 말든 우리 알바 아니고
우리는 주어진 일 돈 받고 하면 다임.
주제넘은 소리쳐하지 말고
시키는 거나 하면 됨.
주제파악 하고 꼴값 떨지 말 것.
대기업 공채의 문턱을 넘지 못해 이런 대우받는 곳에 제 발로 걸어왔지만 어쨌든 마케터이긴 한데,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영향을 끼쳐 무슨 성과를 가져오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까지는 못 가도 관심과 질문을 갖고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는 기본의 순수가 난 있었다.
내 손을 거쳐간 브랜드가 망하는 건 나랑 상관이 없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하는 일이란 나의 청춘이, 나의 열정이, 나의 생각이 쏟아부어져 만들어진 내 인생의 기록이자 역사이기도 했다.
내게 마케팅이란 간절한 밥벌이이기도 했지만 내가 투영되는 것이었으나 맞춤법사장에게는 청년 노동자를 갈퀴 삼아 돈을 그어 모으는, 소득 파이프의 하나였다.
그게 달라 나는 나왔다.
그래서 내가 여전히 이 모양 이 꼴로, 돈만 받으면 장땡의 자세로 살지 못해 최선을 다해버리고 또 내던져진다.
새치가 거슬리기 시작한 나이가 됐는데도, 여전히 쥐뿔도 없이 바락 거리던 마케터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이러고 산다. 앞으로도 그렇겠지.
애초 그런 인간이니 나를 너무 미워하지 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