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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프레너 Oct 24. 2023

<1교시> 셀프탐구: 내가 사용하는 물건의 개수(1)

슬기로운 퇴사생활

화장대 위의 노트북

아침에 눈을 떴다. 어제 자고 있던 침대와 베개, 이불이 느껴진다. 일단 침구를 정리하고 일어서 나온다. 발밑에는 요가매트가 깔려 있다. 옆에 요가매트가 있으면 일어나자마자 스트레칭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언제 해 보고 안 하는지 모르겠다. 일단 필요한 물품이다.


부엌으로 가서 정수기에 컵을 데고 물을 따른다. 컵은 유리컵, 머그컵, 텀블러가 다양하게 비치되어 있다. 컵 개수를 좀 줄여야지 생각했지만 정리는 아직 엄두가 나지 않아 외면하고 식탁의자에 앉아 컵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영양제와 처방약을 먹는다.(식탁 위에도 온갖 자질구레한 물건들 이를테면 냄비받침, 티슈, 어제 보다 만 책, 노트북 등이 굴러다니고, 정수기가 놓인 싱크대와 식탁 사이에 있는 아일랜드 식탁 및 수납장에는 온갖 물건들이 너저분하게 놓여있다. 그건 날 잡고 정리해도 일주일 각이다. 아무튼 오늘은 외면한다. 

일단 작업실은 안방에 있는 붙박이 화장대에서 하기로 했으니 노트북과 보던 책만 옮긴다.

어제 정리하다 만 화장대 위는 환장의 콜라보다. 있는 물건을 모두 쓸어 담아 봉지에 넣어 내려놨다. 화장대 위엔 주로 매일 쓰는 화장품, 메이크업 화장품 외에도 액세서리, 동전, 통장, 확대거울, 펜통, 메이크업 브러시통들이 올려져 있다. 그런데 살다 보면 가장 많은 물건이 길을 잃고 헤매는 곳이 화장대와 부엌 싱그대 위인 것 같다. (치워야지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오늘은 일단 내가 필요한 물건의 개수를 세는 일이 우선이다.)

어제 화장대를 치워야겠다고 생각하고 모든 물건을 세 개의 봉지에 나눠 담아 내려놨다. 그래서 침대에서 화장실로 가는 통로가 좀 막혀있긴 했지만 아무튼...

가장 자주 쓰이는 물건을 담아놓은 봉지를 화장대 위에 쏟아본다. 좀 많다. 화장대 정리에 앞서 화장실에 간다. 세수를 하고(여기에 폼 클렌저가 필요하다) 손을 씻는다(손 씻을 때는 핸드클랜저를 사용한다.) 세수를 하고 수건을 얼굴을 닦는다. 화장실에는 쌓아놓은 수건이 스무 개쯤 되는데 일주일정도 쓰면 다 쓰는 것 같다. 머리를 감고(샴푸, 콘디셔너, 헤어팩) 샤워를 하고(바디클렌저, 샤워타월) -여기에 샤워부스는 집에 달려있으니 필요한 물품에서는 제외하고-다시 수건을 사용해 닦는다. 화장대로 나와 머리에 헤어에센스 스프레이를 뿌리고 머리를 말린다.(드라이어-전엔 그냥 큰 드라이어기 하나면 되었는데 최근 다이슨 드라이기를 사는 바람에 세 개의 헤드를 바꿔가며 써서 좀 더 복잡하다) 

화장을 시작하면 더 많은 물건이 필요하다. 일단 얼굴에 토너를 솜에 듬뿍 묻혀(화장솜과 토너) 얼굴 전체를 닦아준다. 에센스와 수분크림을 바르고 선크림을 바른다. 메이크업 베이스를 얼굴에 골고루 발라주고 파운데이션을 바른다. 화장솔과 퍼프를 사용해서 파우더를 두드려주면 피부는 얼추 된 것 같다. 

그다음은 가을이 되어 부쩍 쳐지고 부은 듯한 얼굴에 명암을 주어 좀 더 슬림하고 입체감 있게 표현하는 블로셔와 아이쉐도우가 필요한 순간이다. 눈썹은 아이브로우 펜슬로 살짝 그려주고 눈두덩이에는 아이쉐도우에서 기본색으로 베이스를 발라준다. (주로 베이지, 핑크, 옅은 갈색이 쓰이는데 나는 이런 색깔 모두를 두세 개씩 가지고 있다. 발라보면 큰 차이도 없어 보이는데 화장품 매장에 가면 왜 아이쉐도우 색깔이 예쁘고 다채로워 보이는지, 내 눈은 변함이 없건만 다른 아이쉐도우를 바르면 텔레이전에 나오는 우아한 여배우처럼 크고 또렷하고 그윽한 눈매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포인트 색상은 짙은 갈색, 보라색, 파란색, 검은색, 회색 등을 쓴다. 포인트 색깔을 쌍꺼풀 안 라인에다 쳐발쳐발 바르는 이유는 아마 눈이 더 커 보였으면 좋겠다는 이유 때문이리라. 그다음 필요한 것은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이것도 다양하게 몇 개씩 사 들이는 제품이긴 하지만 내 취향과 메이크업 실력에 맞는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는 제품을 정해 놓아서 이것저것 사 들이지 않으니 개중 다행이지만 이런 경우 같은 제품을 2+1 정도의 세일기간에 몇 개씩 사들이는 바람에 유통기한이 지나 굳어버린 제품을 정리하며 발견하는 가슴 아픈 일들이 발생하곤 한다.) 그리고 립스틱(최근엔 워터틴트를 쓰지만)을 바르고 나면 기본적인 얼굴화장이 끝난다.

사실 간단하게 한 제품씩만 있으면 화장대가 이렇게 복잡해질 이유가 없으련만 홈쇼핑과 길거리 로드숍을 돌아다디거나 백화점에 가면 내 늙어가는 피부를 위해 뭔가 하나씩 사 온다. 어떨 때는 영양크림, 페이스오프 타입의 얼굴팩, 다른 기능이 들어가 있는 파운데이션이나 쿠션, 기분이 꿀꿀하다는 이유로 하나씩 사 모으거나 누군가 가볍게 선물해 주는 립스틱, 얼굴 노화를 방지해 준다는 오일, 좀 다른 기능이 있다는 메이크업베이스, 핸드크림, 잘 뿌리지 않는 향수, 바디로션, 바디왁스 등등 이런 제품들을 사서 모으다 보면 어느새 화장대는 꽉 차서 더 이상 무언가를 놓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러면 화장대를 정리하겠다고 물건들을 거울 뒤 수납장에 차곡차곡 쌓놓으면 언제 이런 물건을 샀는지조차 잊어버리고 만다. 

휴우 이제 아침 화장이 끝났을 뿐이다. 지금까지 나열한 물건들은 내가 어디 다른 곳에 가더라도 꼭 필요한 필수품들이다. 

여분이나 몇 개씩 사놓은 것을 제외하고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내 손길이 닿은 물건만 서른 가지다. 이 중 립스틱과 아이쉐도우는 한 개씩 쳤다.(아이쉐도우는 한 색깔씩 파는 제품도 많지만 팔레트처럼 베이스와 포인트 색상을 한데 담아놓고 판매하는 경우도 많고, 립스틱의 경우 컨테이너에 담기는 9가지만 화장대 위에 올리고 나머지는 서랍 속으로 들어가 몇 개인지 셀 수도 없을 정도기 때문에 이를테면 개수를 세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화장까지 끝내고 노트북을 꺼내 이 글을 쓰려니 다시 노트북, 마우스, 스마트폰이 필요하다. 이 글을 다 쓴 시간은 오전 9시 40분. 나는 잠에서 깨서 아직 아침식사도 안 하고 화장대 정리와 글을 썼을 뿐인데 33가지의 물건을 사용했다. 오늘은 스마트폰을 카메라 용도로 사용됐다. 그나마 스마트폰이 있어서 다행이지 스마트폰이 없었더라면 카메라, MP3, 메모장, 볼펜, 녹음기 등 셀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모두 들고 다녀야 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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