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밤양갱
30대가 되면 잃고, 떠나보내는 일이 많아진다.
죽고 못 살던 친구가 있었다. 연애부터 가족사까지 일상의 사소한 모든 걸 공유해왔다. 모든 대화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연락을 나누는 빈도가 줄었다. 당연히 사소한 일상도 더는 공유하지 않게 됐다. 너는 잘 살고 있니? 일이 하도 무료하니 거의 비슷하지 뭐... 라는 도돌이표 같은 대화가 한두달 사이로 뜨문뜨문 늘어졌다.
멀어질 계기가 없으니 멀어졌다고 말하기 뭐 한 사이. 여전히 마주하면 대화는 자연스럽고, 나눌 말도 많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난다는 것. 일상의 상당 부분을 '일'이 채우면 체력과 정신이 소진되고, 빈 틈은 살기 위한 운동 혹은 휴식으로 채우다 보니, 제3자와의 관계 형성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리게 되는 게 현실이다.
인생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별개의 부분. 살다 보면 가족에게도, 연인에게도 털어놓지 못 할 이야기가 있다. 예컨대 직장 생활 동기나 상사에 대한 하소연 같은 것들 말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알 사람은 알 것이다. 저런 '사소한' 대인관계 갈등이 정신 건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다만 가족이나 연인에게 털어놓기에는 대개 이런 갈등들은 너무 사소하며, 그들에게 스트레스를 전가시키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해결책이랍시고 주는 게 해결책이 되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다) .
직장에선 직장 상사, 후배의 말을 하는 건 금기에 가까운 사안.
이럴 때는 역시 가볍게 수다를 떨며 옷의 먼지 털어내듯 나의 감정적 잔여물을 함께 툭툭 허공 위로 날려보낼 수다 메이트, 친밀한 친구를 찾게 되는데, 꼭 필요하면서도 잘 보이진 않는 이 부분이 똑 떨어져나가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외롭다고 하는 걸까, 30대란 건.
전문직이나 사업가는 아니지만 30대가 되니 확실히 삶은 조금 여유로워진다. 몇십만 원짜리 옷을 (턱턱은 아니라도) 살 수 있는 여력이 생기고, 조금 비싼 식당에서 밥을 사먹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윳돈을 갖춘다.
삶을 뜨개질해나가는 실이 예전보다 조금 굵어져서, 보다 수월하게 뜨개를 해나갈 수 있는 느낌. 다만 그래서 그 굵은 실이 빈 구멍, 잔실로 촘촘히 삶을 일궈나갈 때 미처 보지 못했던 작고 사소한 관계들이 때때로 가슴을 파고 들어와 찬바람으로 스쳐지나가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모두 자연스럽다. 다만 자연스럽다 해서, 노력으로 극복되지 못 하는 거라고는 단정해 말하고싶진 않다.
일상에 치이는 30대 문턱의 초반, 쉴 시간조차 없어 허덕이는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당연히 여기지 않는다는 건 꽤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먼저 연락을 보내고 부끄러운 일상을 토로하고 약속을 잡는 건 모두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그 시간은 나의 소중한 '휴식'에서 떼어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마음에 뚫린 허한 구멍을 메워줄 수 있는 이들은, 그 시간을 투자해 만들어낸 나의 20대 시절을 빛내준 사람들이라는 것.
서로가 당연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진 못 하더라도, 적어도 우리들끼리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일부러라도 약속을 잡고, 서로를 위한 작은 선물을 준비해 나누는 경험들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
축의금을 서로 얼마를 주고 받았느니로 마음이 상하는 게 당연한, 관계마저 물질로 치환되어버리는 세상에서, 날실 사이 잔실로 작은 매듭을 추가로 엮어내 나의 삶을 보다 풍성하게 채우고 싶어지는 날이다.
떠나는 길에 네가 내게 말했지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잠깐이라도 널 안 바라보면
머리에 불이 나버린다니까
나는 흐르려는 눈물을 참고
하려던 얘길 어렵게 누르고
그래, 미안해라는 한 마디로
너랑 나눈 날들 마무리했었지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
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이야
떠나는 길에 네가 내게 말했지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아냐, 내가 늘 바란 건 하나야
한 개뿐이야, 달디단, 밤양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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