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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Sep 24. 2024

성실과 태만사이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수영에 매일 지각하게 된 것이. 분명 수영을 처음 시작하던 때만 해도 지나치게 일찍 센터에 도착한 바람에 문 앞에서 찬 바람을 쐬며 멍 때리던 게 생생한데 말이다. (5시 50분에 센터가 여는데, 5시 20분부터 앞에서 기다렸다. 수영 등록 이틀차라서 언제 문을 여는지 잘 몰랐다.)


우리 센터 할머니들은 7시 수업을 들으시면서 6시 20분에 이미 샤워를 시작하신다. 나는 6시 수업을 들으면서 6시 20분에 샤워를 마친다. 수업을 듣기 위해 40분 일찍 준비하는 자와, 수업을 30분이라도 듣겠다고 20분 지각하는 자의 간극은 얼마나 되려나. 인생을 더 오래 살게 되면 더 성실해지려나? 하긴, 사회 초년생 때를 돌아보면, 그때도 종종 지각을 했었다. 지금은 지각하는 일을 수치로 여길 정도이니, 수영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그래, 지각하는 것도 어쩌면 청춘의 한 지표..? 이런, 이건 너무 핑계가 과한 것 같다.


지각쟁이 수영러가 온전히 수영하는 시간은 고작 30분. 남들보다 덜 쉬고 거의 내내 뺑뺑이를 도니 운동량은 비슷할 수도 있겠다. 아아, 하지만 30분 초과 운동량부터 본격적으로 지방이 분해된다던데. 어쩐지 수영을 시작한 지 1년 반이 다 되어가는데도 몸무게가 줄지 않더라니.


그럼에도 거의 매일 출석을 하는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 걸까? 출석률은 좋으니 성실한 사람? 아니면 매일 지각하니까 태만한 사람? 수직선을 긋고 양 끝에 ‘성실’과 ‘태만’이라고 써놓는다면, 나는 내 이름이 써진 압정을 ‘태만’ 가까이 꽂을 것이다. 아 물론 알아요. 제 성실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을... 하지만 매일 지각하는데 이게 어떻게 성실입니까? 그리고.. 뭐랄까요? 성실한 듯 보이지만 은근히 태만한 제 모습이 제법 마음에 들거든요. 이를테면... 모범적인데, 반항적이야. 고런 반전 매력?


물론 지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적도 있다. 그리고 지각하지 않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 더 일찍 자는 것. 10시엔 침대에 눕는 것. 잠을 충분히 자는 것. 하지만 밤의 시간은 왠지 무한대의 시간 같아서 쉽게 눈이 감기지 않는다. 게다가 한동안 어깨통증 이슈를 겪은 뒤엔 잠에 대한 집착이 커졌다. 정말 선현들의 말씀처럼 그 어떤 약보다 잠이 보약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통증 이슈를 겪기 전엔 내가 잠을 적게 자는 것도 미련이 없었는데 말이다. 전엔 겨우 4시간 자놓고도 “수영은 가야 해!” 였다면, 지금은 수영을 가기 위해 4시간 자야 하는 거라면 미련 없이 수영을 포기한다. 그러니 이깟 지각쯤이야 대수겠는가?


새벽 수영을 하는 나, 하지만 매일 지각하는 나. 인간적이고 좋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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