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수모 아저씨의 칭찬 모음집
다정한 수영인이 되고 싶어 : 초록수모 아저씨의 칭찬 모음집
“그럴듯하게 하네~”
나의 수력(수영 경력) 겨우 2개월 차, 초록 수모 아저씨와의 첫 대화였다. 당연히 킥판을 잡고 있던 때이고, 팔 돌리기가 무서워서 겨우겨우 하던 실력인데도 초록 수모 아저씨는 그럴듯하다며 치켜세워주셨다. 내가 두 달 동안 매일 출석하는 것도 알고 계신 듯했다. “매일 연습하더구먼 그럴듯하네~”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존재가 들킨 것에 흠칫 놀랐지만, 인정을 받는 일은 기뻤다. 하지만 조금 창피한 마음도 있어서 그 후로 며칠은 성인풀에 안 가고 다시금 유아풀로 가 연습을 하는 등 살짝 피해 다니기도 했다.
“열심히 하더니 잘하네~” “시간 지나면 괜찮아져~”
유아풀을 마침내 졸업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나의 자신감은 가득이었다. 그래서 초록수모 아저씨가 말을 걸어도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성인풀에서 연습을 시작하자 초록수모 아저씨는 또다시 칭찬을 해주셨다. 나는 내 실력이 저번보다 더 나아지지 않았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초록수모 아저씨는 내가 이렇게 능청스러운 사람인지 예상을 못하셨는지 조금 놀라신 눈치였다. 받아치실 말을 못 찾고 계셨는데 나는 아저씨가 나와 더 대화하고 싶어 한다고 오해했다. 그래서 나는 나름의 고민을 내놓았다. 젊은이들이 고민 털어놓는 거 어른들은 좋아하니까. 저는 자꾸만 오른쪽으로 붙어요. 나는 아저씨가 이 수영장의 고인 물답게 뭔가 그럴듯한 답변을 주실 줄 알았다. “그것도 시간 지나면 괜찮아져~” 생각보다 알맹이 없던 조언에 놀라 나 역시 다시 받아치지 못했다.
“완전히 노력파야!” “자유형은 흠잡을 데가 없어!”
나는 노력파다. 요샌 노력도 재능의 영역으로 쳐주지만, 내가 자라올 땐 노력보다는 재능이 최고라는 인식이 컸다. 노력이라는 단어는 ‘애쓴다’의 뉘앙스였다. 내게 천재적인 재능이 무언가 있기를 바랐지만 그렇지 못했다. 뭔가를 잘하게 되기까지 엄청나게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나 자신이 너무 안타까웠다. 학생일 때는 이런 자기 연민이 엄청 심했다. 노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뭉클-, 눈물이 핑-, 나 너무 불쌍해-의 3단 콤보였다. 하지만 이런 모난 마음도 나이가 들며 점점 둥글게 변했다. 사실 어떠어떠한 파(~~ 파)라는 단어로 묶이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다. 이도저도 아닌 것보단 어느 파에 속해 있는 게 소속감이 들지 않나? 큭큭. 어쨌든 초록수모 아저씨의 이러한 칭찬은 내가 ‘노력’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얼마나 마음 가짐이 달라졌는지 알게 된 계기였다. 그러나 “자유형은 흠잡을 데가 없어”라는 문장에서 굳이 또 ‘저의 배영과 평영은 별로인가요?’ 생각하며 또 쭈구리가 되었지 뭐예요?
“많이 늘었어~” “배영도 잘하네~”
“처음에 비하면 많이 늘었어~”
“중급이에요? 아니에요? 그런데 이렇게 잘해요?”
“많이 늘었어요!”
수영 실력이 지지부진하던 때였다. 아마도 나의 첫 번째 수태기(수영+권태기)였던 것 같다. 빨리 실력이 늘길 바랐던 조급함도, 이 고난이 끝나면 실력이 엄청 늘 거라는 희망 갖기도 모두 내려놓고 포기했던 때였다. 그냥 노는 수영을 하러 가자고 마음먹은 날, 초록 수모 아저씨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에게 칭찬 폭격을 맞았다. 아아-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다정하신 분들이군요. 하지만 당시엔 쭈구리 모드가 너무 강해서 실력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그냥 격려나 응원의 마음 아닐까 의심했었다. 으휴! 못났었다 정말!
“일취월장이구먼!” “선수 같아~! 상급반 가겠어!”
어느덧 중급반으로 진급하게 되었다. 중급반에 가게 된 것도 무한의 박수를 받았는데, 이젠 상급반을 곧 올라가겠단 칭찬을 받다니.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초록수모 아저씨가 나를 칭찬하는 와중에 냉철한 우리 빨간 수모아저씨는 “그 정도 아니에요.” 하셨다. 흥~!
“선수야 선수” “더할 나위 없다”
수영을 시작한 지 1년을 채워가던 12월의 어느 날. 초록 수모 아저씨한테 칭찬을 맡겨놓은 사람이 되었다. 한 바퀴 돌고 레인 끝에서 아저씨를 만나면 어느새 내 눈은 반짝인다. 어서 빨리 칭찬을 하시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래놓고 초록 수모 아저씨의 칭찬을 걸러 듣는다. 진짜 선수급은 아닐 것이다, 더할 나위 없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조금 잘한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칭찬은 항상 고프니까. 칭찬은 다다익선이니까!
“고수라고 이젠 아주 마음대로 오네~” “물 찬 제비 같아”
어깨 부상으로 (엄밀히 말하면 부상은 아니고, 그냥 거북목 증상 때문에 심한 어깨통증이 있었다. 딱히 수영으로 얻은 부상은 아니다.) 수영을 한 달 쉬었다. 부상 이후론 수영에 대한 욕심을 많이 내려놨다. 원래도 지각은 밥먹듯이 일삼았다. 그래도 10분 지각하는 정도였는데, 그날은 30분 지각한 날이었다. 그러니까, 수영을 딱 20 분하러 간 셈. 전엔 이런 날엔 죄책감이 심했는데, 욕심을 내려놓으니 죄책감은커녕 ‘20분이라도 하러 온 게 어디야?’ 하며 당당해졌다. 나의 이런 당당함이 입수하러 가는 걸음걸이에서도 느껴졌던 걸까? 초록 수모 아저씨는 장난스럽게 ‘에잉쯧’하는 표정을 지으시며 타박을 주셨다. 하지만 와중에도 나를 ‘고수’라고 치켜세워주시다니.
접영을 할 땐 호흡하러 수면 위로 몸을 올릴 때 허리에 부하가 많이 걸려 무호흡으로 수영을 한다. 무호흡 접영은 고수의 영역인 걸까? 어쨌든 나의 접영을 보시곤 ‘물 찬 제비’ 같다고 하셨다. 자주 듣던 표현은 아니라 무슨 뜻인지 단번에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초록수모 아저씨가 하신 말씀이니 당연히 칭찬일 거라고 여겼다. 이젠 초록 수모 아저씨가 뭔 말을 하시든 다 칭찬으로 듣는 경지. 집에 와 검색하니 ‘동작이 민첩하고 깔끔하여 보기 좋은 행동을 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음, 역시. 반전은 없다. 역시 칭찬 폭격기.
나는 남의 수영엔 크게 관심이 없다. 하지만 초록 수모 아저씨의 이러한 다정한 모먼트는 닮고 싶다. 이런 작은 칭찬이 수영을 지속하는데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되는지 내가 경험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다른 분들의 영법을 볼 기회가 가끔 찾아오면 조심스레 ‘엄지 척’을 날린다. 아니라고 손을 내저으시지만 입가에 살짝 스치는 수줍은 미소를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