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 스위머
수영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나조차 웃기긴 하지만, 정말 세상엔 미친 수영인들이 많고, 나는 그들에 비하면 그냥 수영 호소인쯤이다.
수영 계정에서 친해진 친구의 초대로 수영 동호회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당시의 나는 수영에 큰 재미도, 그렇다고 해서 빅 노잼도 아닌 어정쩡한 시기를 겪고 있었다. 사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에 모임에 초대된 점이 고마웠다. 하지만 수영이 좋았던 까닭이 혼자 하는 운동이라서였기 때문에 한편으론 고민되기도 했다. 게다가 수영 계정이라는 익명성 뒤에 숨어 사는 해방감을 즐기고 있었기에, 내 캐릭터가 아닌 내 실제 몸뚱이를 오프라인에 데려다 놓아야 한다는 점이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이 모임을 통해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이 또한 만화의 소재가 될 수 있겠단 프로 정신으로 용기를 내어 참석했다.
우리 센터에서는 나름대로 날고 길던 나였다. 원래도 칭찬밖에 하실 줄 모르던 초록수모 아저씨이긴 했지만 당시의 초록 수모 아저씨는 나에게 칭찬 폭격을 쏟으셨다. 레인 끝에서 만날 때마다 “아주 잘한다, 이젠 고칠 게 없다.” 심지어는 “너무 거만한 거 아니냐”는 얘기까지 하셨다. 게다가 칭찬에 인색하신 빨간 수모 아저씨조차 “이젠 상급반 가도 되겠어요.”라고 하셨기에 나는 정말 내가 하산해도 될 실력이라고 자만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미치도록 사랑하고 열정적인 사람을 보고 있자면 한없이 마음이 쭈굴쭈굴해진다. 어릴 적 들었던 어느 설교에선가 ‘미치면 crazy 미친다 reach.’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그냥 기록을 좋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고 단지 주제가 수영이었을 뿐, 진정한 크레이지 스위머는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날의 동호회 모임 주제는 스타트였다. 선수들이 하는 것처럼 스타트대에 서서 점프해 물속으로 들어가는 자세를 교정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 센터에서 스타트를 몇 번 연습하긴 했으나 그렇게까지 잘 하진 못했다. 하지만 수영에 대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때였고, 그저 배우면 된다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아아, 내가 운동 신경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이렇게 따로 시간 내어 스타트를 배울 만큼 엄청나게 수영에 진심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스타트대에 올라서면 설수록 나의 자신감은 떨어졌다. 당연히 자세도 갈수록 엉망이었다. 영상에 찍힌 내 몸도 창피했다. 다른 사람들은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익숙해 보였고 그래서 당당해 보였다. 카메라는 단지 자기 자신을 비춰보는 도구로 사용했다. 그 사람들은 하염없이 반짝 여보였다. 나는 마치 주인공을 쳐다보는 조연처럼 어두운 조명아래서 그들을 바라봤다. 어떤 순간순간엔 이렇게까지 속상한 마음으론 수영을 하고 싶지는 않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 이거 참, 최근 tv예능 ‘나는 솔로’에서 조연 타령하는 광수를 보며 왜 그러세 요했는데, 내가 그 청승을 떨고 있었구나.
허망한 결말이지만, 그 후로 나는 수영 모임에는 욕심을 내지 않고 있다. 어쩌면 아직 나의 때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시기’를 잘 아는 사람이고, 그 시기가 되면 나에게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나만의 ‘크레이지 스위머’ 면모를 뽐내지 않을까 싶다. 후후. 사실 부상을 겪은 이후론 꼭 뭔가에 미쳐있을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적당히 잘하고, 적당히 열심이고, 적당히 즐겁고, 적당히 건강하게 살면 그만이지. 아아, 너무 안일한 마음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