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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Aug 19. 2024

유교걸과 수영복

유교걸과 수영복

 

 

 먼저 죄송한 말씀 올린다. 지난 글에는 분명 바디포지티브 어쩌고 하며 수영을 할 땐 내 몸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썼다. 오늘의 내 글은 내 몸에 잔뜩 신경을 쓰는 내가 등장한다. 개인적으론 이 맥락도 내겐 맞는 맥락이지만, 읽는 이에 따라서 오늘의 내 글이 모순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수영을 할 때 자기 몸에 신경을 쓴다는 거야 안 쓴다는 거야 뭔 소리야? 하실 것이다. 네.. 뭔 소리냐고 질타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어째요. 이것도 나인걸.

 

 나는 유교걸이다. 나는 특히 ‘골’에 예민하다. 가슴골, 엉덩이골. 어머, 단어를 쓰면서도 부끄러워라. 그냥 신체의 일부라는 걸 알지만, 이런 것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나는 내 몸이 성적으로 소비될만한 무언가에 굉장히 예민하게 자란 것 같다. 내가 자라온 환경이 그랬나 보다. 가만, 다른 친구들은 별로 그렇지도 않은데... 그냥 내가 기질적으로 예민하거나, 아니면 우리 가족 환경이 그랬나 보다. 나도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다.

 

 하여간에 가슴골 하니 생각나는 수영복이 있다. 옅은 하늘색 배경에 딸기와 딸기꽃이 그려진 수영복이다. ‘리얼리굿스윔’이라는 브랜드에서 나온 수영복으로, 내가 정말 좋아했던 수영복이다. 전체적으로 쿨톤인 수영복이 웜톤인 내 피부에 너무 찰떡이었다. 머리에 체리를 얹은 쿼카가 그려진 수모를 쓰면 이보다 더 귀여울 순 없었다. 이 수영복은 애초부터 가슴선이 그렇게 안정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의 관리 태만으로 가슴선이 더 낮아져 버렸다. 물에 젖은 수영복은 세탁 후 몸통 부분을 반으로 접어 널었어야 했다. 나는 그냥 옷걸이에 걸 듯이 어깨끈을 걸었다. 수영복에 머금은 묵직한 물 무게를 얇디얇은 그 어깨끈이 다 감당하고 있었다. 그탓에 끈이 아주 많이 늘어났던 것 같다. 아주 오랜만에 그 수영복을 꺼내어 입었던 날이었다. 수영을 열심히 마치고 샤워장으로 들어섰는데. 나는 내가 레슬링 선수인 줄 알았다. 내 가슴이 제법 아래에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도 내 가슴이 그렇게 아래에 있는 줄 몰랐다. 그날 이후로 그 수영복은 안녕을 고했다.

 

 그래도 가슴골 분야에선 내가 정말 많이 서학걸이 되었다. (유교걸의 반대말을 서학걸이라고 한다.) 문제는 엉덩이이다. 정말... 엉덩이는 정말 문제다.

 

 엉덩이하면 단연코 이 수영복이다. 색감과 패턴을 기가 막히게 뽑아내기로 유명한 ‘풀타임’이라는 브랜드가 있다. 마침 내가 정말 갖고 싶던 패턴이 재오픈을 했었다. 운 좋게도 구매를 성공했다. 얼마나 악명 높은 경쟁률인가 하면 ‘풀케팅’이라는 말도 수영인들 사이에서 존재한다. 하여간에 나는 구매를 성공했고, 프리오더였기 때문에 꼬박 1달을 기다려 수영복을 받았다. 눈으로 보기에도 조금 작아 보였다. 게다가 기대했던 신축성보다 훨씬 뻑뻑했다. 그러나 수영복은 원래 좀 작게 입는다는 말이 있으므로 두근대는 마음을 붙잡고 입어보았다. 그런데 정말. 이건 아니었다. 이리보고 저리 봐도 이건 아니었다. 이건 할리우드에 가야만 입을 수 있는 수영복이었다. 엉덩이 살을 다 수납해주지 못하는 것은 정말 내가 오만번 양보한다고 쳤다. 양보하기 싫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엉덩이골은. 정말. 이게 뭔가 싶었다. 내가 수영장에서 조금이라도 웨이브를 탄다면 그 틈을 노리고 엉덩이살이 뽀옹뽀옹하고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신축성이 좋았다면 이렇게 저렇게 늘려서라도 입었을 텐데... 신축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너무 빡빡하여 입고 벗는 과정이 고문 같았다. 고문 같았을지라도 엉덩이만 잘 가려줬다면 품었을 텐데.. 하지만 거울 속 저 엉덩이는 정말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을 머금고 당근행이었다.

 

 나는 이후로 ‘영천 넉넉 사랑 협회’를 조직 었다. 뭐, 당연히 공식적인 단체인건 아니다. 하지만 제법 댓글도 달렸으므로 엉덩이 천이 간절한 수영인들이 많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수영복 브랜드들이(특히 풀타임이) 부디 엉덩이 부분에 조금만 더 천을 써줬으면 한다.

우리 협회는 오늘도 외친다. “영천 사수! (엉천 사수!) 엉덩이는! 네 쪽이 아니라! 두 쪽이다!(두 쪽이다! 두 쪽이다!) 엉덩이골은! 나만의 것!(나만의 것! 나만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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