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복과 바디포지티브
내 몸이 오랜 시간 싫었다. 나는 어느 책 제목처럼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중학교 입학식 사진과 중학교 졸업식 사진의 나는 너무나도 딴사람이었다. 나는 작고 마른 아이였다. 그게 내 원래 상태라고 생각했다. 언제든 다시 돌아가야 하는 진짜 내 모습. 오직 14살의 나만이 진짜 나였기 때문에 점점 그 나이와 멀어질수록 괴로움은 커졌다. 금방 돌아가게 될 줄 알았는데, 하하 벌써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고로 나는 20년 동안 괴로웠다.
20대의 나는 많은 시간을 거울 앞에 서있었다.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며 요리조리 내 몸을 보정했다. 어떻게 해야 내 체형을 조금이라도 보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하루의 일과였다. 조금이라도 내 뱃살이 가려지길, 조금이라도 내 팔뚝이 눈에 띄지 않길, 튼살을 들키지 않기를 바라며 말이다.
그래서 수영을 시작할 때 가장 큰 고민은 수영복이었다. 이건 너무 내 몸 그 자체잖아. 수영복은 어떻게 해도 내 뱃살과 팔뚝과 튼살을 들키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나란 사람에게는 살짝 크롭 된 요가복 상의가 2벌 있는데 얘네는 오로지 홈트용이다. 절대 남들 앞에선 입지 않는다. 그런데 수영 때문에 이런 쫄쫄이를 입은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줘야 하다니...!
그나마 몸을 좀 가려보고 싶었다. 아무리 쫄쫄이라지만 눈에 보이는 살 면적이라도 줄여볼까 싶었다. 마침 언니가 수영복을 물려줬다. 우리 언니도 꼭 나 같은 사람이다. 언니가 물려준 수영복은 허벅지를 다 가리는 5부 수영복이었다. 아뿔싸! 5부 수영복은 초급에겐 너무 가혹한 수영복이었다. 허벅지에서 수영복 다리가 돌돌돌 말려 도무지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마치 혈압을 재기 위해 팔뚝에 고무줄을 매어놓은 모습이 내 허벅지에서 재연되고 있었다. 이래서 수영장 선배님들이 수영복에 그렇게 비누칠을 하시는 거구나. 왕초보가 무엇을 알았겠는가?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생겼다. 5부 수영복은 너무 안 예쁘단 것이다. 아아- 아무리 수영을 그저 기능성 운동이라고 간주해도 예쁘지 않은 옷은 입고 싶지 않단 말이야. 그리고 나는 그 후로 예쁜 수영복들을 너무 많이 발견했으므로, 내 옷장에는 점점 더 짧고 과감해진 수영복들이 늘어났다.
웃기는 건 수영을 하면 할수록 내 몸에 대한 어떤 생각도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이곳은 모두가 쫄쫄이를 입어야 한다. 만인에게 평등한 곳이다. 그 누구도 자신의 체형을 숨길 수 없었다. 게다가 수영은 반드시 샤워실을 거치고 가야 했으므로 나는 너무나도 다양한 몸을 볼 수 있었다. 내 몸도 다양한 몸의 모습 중 하나였다. 내가 모나게 봤던 내 두툼한 뱃살과 두툼한 팔뚝과 보기 싫은 튼살은 그냥 단지 뱃살, 팔뚝살, 튼살이었다.
게다가 수영장에 입장해선 거울을 볼 일도 없었다. 이건 수영이란 스포츠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내 자세를 내가 볼 수 없기 때문에 자세 교정을 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내 몸을 보지 못하는 게 좋았다. 오로지 헤엄치는 나만이 수영장에 존재했다. 수영은 내 몸을 보지 않아도 되는, 아니 볼 수 없는 스포츠이다. 복장만 보면 세상에 이런 노출이 어디 있나 싶은데 말이다.
특히 초급반에선 모두들 자기 동작하느라 바빠서 남들을 볼 겨를이 없다. 그러니 수영복 때문에 수영을 시작하기 두려운 사람들은 마음을 편히 먹으셔도 된다. 수영 실력이 늘수록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기긴 한다. 하지만 그쯤 되면 여러분도 내 몸이나 네 몸이나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될 것이다. 엉덩이를 다 드러내는 수영복을 입고도 뭐라는지 아시는가? “뒷사람에겐 미안하지만, 내 엉덩이 내가 보진 않으니 It’s okay.” 나는 강경 유교걸이라 동의할 순 없지만 저런 유쾌함은 배우고 싶다.